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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훈적인 소설은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다. <롤리타> 속에는 어떠한 도덕적 교훈도 없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한 말이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롤리타>는 소아성애라는 간판을 달았을 뿐인 나보코프의 놀이터 같은 작품이라고 확답할 수 있다.
놀이터라는 말처럼, 이 작품의 문장은 나보코프의 장난질로 가득하다. 아름다운 문체 속에서 춤을 추고 있는 수많은 말장난들을 읽고 있노라면, 나보코프의 모국어는 영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소름끼칠 정도로 놀랍게 다가오면서도 그런 말장난들에 피식 웃어버리며 기분 좋은 짜증이 난다.
<롤리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충격적인 소재보다도 이처럼 뛰어난 문학적 기교가 아닌가 한다. 물론 소아성애자의 범죄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험버트가 사랑이라고 포장한 역겨운 범죄들은 한없이 어린 아이일 뿐이었던 롤리타에게 엄청난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혔을 것임이 틀림없다.
험버트는 롤리타를 강간하고, 억제하고, 유도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님펫의 유혹에 넘어갔을 뿐이라며 끝없이 자위한다. 주체성을 지닌 한 존재를 님펫이라는 이름으로 대상화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어린 아이의 장난스런 성장 연습을 유혹이라고 자위하며 이용하려고 드는 역겨운 이 모습!
하지만 이 역겨움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답다. 그렇기에 더욱 역겹다. 험버트가 자신의 범죄를 숭고한 사랑이라는 둥 아름답게 포장한만큼, 나는 포장을 조금씩 풀어해쳐가며 그 안에 숨겨진 행적들을 혐오하고 조소했다. 따라서 <롤리타>는 소아성애를 미화하지 않는 작품이라고 확신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에는 어떠한 교훈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작품 속에 든 것은 역겨움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 혹은 아름다움 속에서 피어나는 역겨움일 것이다. 이를 마음대로 갖고 논 것만으로도 충분히 <롤리타>는 걸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녀에게 말하리라.
Dolores Heiji, a dolorous hazy girl.
롤리타 존나 천재 같음
저게 천재로 느껴질정도면 얼마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롤리타 안읽어본 유동 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