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카잔차키스라는 작가가 궁금해졌다.

카잔차키스의 붓다를 사기 위해 각종 인터넷 서점을 뒤졌지만, 해당 작품을 판매하는 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최후의 유혹은 예수를 다뤘고 붓다에서는 부처를 다뤘다고 하여 둘 다 읽어보고 싶었는데 왜 하필 붓다만 절판인 것인가!

좀처럼 가지고 싶은게 없는 나지만 (어느 순간 물질적 무욕덩어리로 전락해버렸다.) 오랜만에 물욕이 생겼다

아쉬운 맘에 뭐라도 사고 싶었다붓다를 건지지 못했으니 불교에 관련한 어떤 책이라도.. 


하지만 고전과 명서만을 선별하여 읽는 고급 취향을 지닌 스노비즘 독붕이가 어찌 아무것이나 사겠는가?

여기저기 뒤져보다 보니 아마존에서 고평가를 받은 책을 고르기로 했다

국내 인터넷 평점과는 달리 아마존 평점은 믿을만하다는 독갤 댓글을 봤던게 기억났다.

그래서 고른 책이 틱낫한의 붓다처럼이다. 이 책은 아마존에서 100명 중 92점이 만점을 줬댄다. 얼핏 환산해봐도 4.5가 훌쩍 넘는다.

(최악의 수치를 계산한 환산식 92 x 5 + 8 x 0 = 4.6 이 책은 최소 별점 4.6 이상이다.)

보통은 한 권의 책만 구입해 그 책으로부터 시작해 마음에 들면 그 작가의 모든 책을 사서 읽어보는 타입이지만, 좀처럼 생긴 물욕을 쉽게 거스르지 못했다.

그리고 기존의 습관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어느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꿈꾸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만 불쑥 튀어나오는 자유의 권리의식이 원망스럽다

아무튼 그래서 틱낫한 명상도 구매하게 됐다.




틱낫한? 아마존 평점이 아무리 높다한들 나는 처음 들어보는데? 유명한가 싶어서 독갤에 틱낫한으로 검색을 갈겨본다.

아무것도 안나온다. 듣보잡인가? 아뿔싸, 탁닛한으로 검색을 했구나. 틱낫한으로 다시 해보자. 많이 나오지 않는다.

힙스터 기질답게 메뉴 선정에 성공한 건가? 좋다, 독갤러라면 타고난 힙스터기질에 걸맞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힙스터인 내가 읽기 부족함이 없는 책이구나.

붓다처럼은 너무 두꺼웠다. 최근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의 분량에 허우적거린 경험이 있었기에

(무려 비슷비슷한 테마를 1300 페이지동안 반복한다. 그 자체가 하나의 영원회귀인 셈이다.)

그리고 먼저 읽고 싶은 책이 있었기에 이 벽돌은 피하고 싶었다. (언젠가는 읽을 것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렇다면 머리도 식힐 겸 문고본 사이즈와 비슷해보이는 틱낫한 명상을 펼쳐본다.



오 마음챙김이라고? 안그래도 저번주에 직장동료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자기는 요즘 마음챙김에 관한 도서를 읽고 마음챙김을 한다고 했다. 그게 뭐지?

뭔가 불교용어스럽긴한데 사실 혜민스님을 좋아하던 동료라 별로 크게 궁금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마음챙김을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결국 나는 마음챙김이 무엇인지 알 수 밖에 없는 운명이였구나.




현재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 인식하고 깨어있는 상태, 그리고 최선의 결과를 내는 것. 그것이 마음챙김이란다.

엥 생각보단 별거 아닌데? 하지만 베이직이 제일 어려운 법이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알파벳도 a부터 시작하고 색소폰도 소리를 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 상태를 명확히 의식적으로 붙잡고 있어야 한다.

명상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상태를 지향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발생하는 생각들을 붙잡고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였다.

그리고 이 훈련이 되면 비로소 관찰의 대상인 것 같은 내 마음과 관찰자로 느껴지던 내 마음을 지켜보는 마음이 하나가 된다고 한다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눈을 감고 허리를 곧게 펴고 굽은 어깨와 등을 날아가기 위해 날개를 펼친 나비처럼 활짝 편다.

나는 과거의 족쇄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운 명상의 세계로 날아갈 것이기 때문에 내 자신이 한 마리 나비가 된 기분이였다.

왠진 모르겠지만 의식의 흐름일까 호접지몽이란 말이 생각났다. 눈을 감는 이 순간 지금 나라 생각하는 물체는 나임과 동시에 나비이고 또 동시에 장자다.

불교에 상호의존성이란 개념에 따르면

(개념을 체계화하는 것이 수행에 부적절하다고 한다만 어쩔 수 없이 머릿속에 넣으려면 체계화해보는 수밖에는 없다.)

우주만물은 무상하다. 그리고 나는 우주 속에 있는 존재이므로 역시 무상하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무상한 것이며, 서로 미치는 어떤 원인으로 인하여 서로 영향을 받아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호의존적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나와 너와 우주와 다람쥐와 내 눈 앞에 보이는 나이키 모자와 덤벨과 이케아 전등은 모두 하나다.

서로 상호의존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고 어디선가 얼핏 본 거 같은 생각이 스쳐간다.

신이 사람에게 이성을 부여했고

이성을 부여받은 모든 사람은 마음 속에 같은 이성을 가진 존재기 때문에 사실은 서로 같은 자들이며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종교는 하나의 가르침을 서로 다른 말로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위아더원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다. 우리는 상호의존적이다.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으니 혹시 불잘알이 있으면 교정해주시면 감사드리겠다.)



다시 명상을 해본다. 가부좌를 틀라는데 원체 뻣뻣하여 초딩때부터 좌전굴이 불가능했던 몸이라 가부좌가 안된다. 반가부좌도 겨우 가능했다.

호흡에 집중하고 나를 스쳐가는 뜨내기 생각부터, 내 인생의 커다란 사상까지 별의 별 생각이 다 난다.

하지만, 억지로 떨치진 말자. 내 마음 상태를 알고 생각을 알아야 내 마음을 알 수 있고, 내 마음을 아는 것으로부터 세계는 시작된다.



그리고 갑자기 혜민스님을 좋아하던 직장동료의 말을 무시했던 게 생각났다. 나는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혜민스님을 좋아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리고 혜민스님과 나는 또 하나다.

아니, 그래도 이건 좀 아닌거 같은데..

역시 가르침을 깨닫는데는 오래걸리는구나..

불교 가르침을 깨닫는데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직장동료에 대한 관계적 부분에 있어 혜민스님으로 말미암은 일정 부분의 거부감이 수그러들었다.

내일은 그녀가 좋아하던 카페에 같이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