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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하반기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블랙박스(ブラックボックス)>..

작품 자체도 얘기가 많고 작가가 우크라 전쟁 의용군으로 참가한 상남자라 항상 관심은 있었는데


일본국제교류기금 도서관에 얼마 전 들어왔길래 바로 빌려서 읽었다

사실 이 책 초반은 좀 재미가 없었다

이야기가 바이크 메신저(자전거로 급한 배달을 해주는 직업)으로 일하는 주인공 사쿠마의 사고로 시작해서 템포를 좀 빠르게 가나 했는데

그 뒤로 좀 템포가 늘어지는 게 있었음

근데 중간 갑자기 배경이 형무소로 바뀌고 사쿠마가 빵에 들어가 있어서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이후로 정말 단숨에 독파해 버렸음..

그렇게 작품을 다 읽어버리고 나서 든 느낌은

다른 사람과 다른 탓에, 사회에서 드롭 아웃된 한 사람이 추락의 저점을 찍고 반등을 시작하는 이야기 같다

라는 느낌

대략적인 줄거리는 '주인공 사쿠마의 일이 끝도 없이 꼬이는 이야기'로 요약이 가능함

사쿠마는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는', '참을 줄 모르는' 성격 때문에 인생 내내 끊임없는 추락을 겪었다

중학교때는 같은 반 애를 괴롭히는 놈을 쥐어 팼다가 고생했고

자위대에 들어가서는 부조리를 강요하는 선임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싸움이 붙어 전역했고

들어간 회사에서는 사장 아들의 비위를 맞추지 못해 퇴사했고

메신저를 시작하고 나서는 관리직 직원에게 소신발언을 하다가 일거리가 끊겼으며

집에 찾아온 세금 징수원이 임신한 동거인을 보고 비웃자 피떡으로 만들어서 빵에 들어 가서도

한 죄수를 가석방 확률이 높다는 이유로 괴롭히는, 한 자식을 쥐어 팼다가 독방행

이렇게 끊임없이 인생을 꼬라 박아간다

난 이 작품을 읽고 나니까 자꾸 같은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편의점 인간>이 생각나더라

<블랙박스>의 사쿠마와 <편의점 인간>의 케이코는 다른 사람과 다른 사고체계를 가진 탓에, 스스로도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전형적인 이레귤러인 점에서 비슷함

그러나 이 사람들을 풀어가는 방식이 좀 다르더라

<편의점 인간>에서 케이코가 자신의 삶에 오는 변화를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 거부한 것도 있고, 그녀를 변화시키려는 외부가 상당히 부정적으로 그려진 것에 비해,

<블랙박스>에서 사쿠마는 '자신의 삶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고 여태 살면서 얻은 것도 없다'라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찾아오는 변화의 증거를 거부하며 도피하는 모습을 작품 전반에서 보이지만, 마지막 순간 깨닫고 그것들을 직시하여 지금이라도 반등하려는 다짐을 하니까..

어떻게 보면 젠더적인 관점에서도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레귤러들은 일본에서 잊을만 하면 한번씩 화제가 되는 거니까(최근에도 토요코 키즈가 화제가 된 적도 있고) 문학에서 이런 주제가 자주 다뤄지는 건 당연한 거지만

이걸 '소수자를 틀에 가두려고 하는 구조가 문제다' 특히, '여성을 젠더적 틀에 가두려고 하는 일본 사회가 문제다'라고 하는 게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인 거고

(난 남페미도 아니고 페미니즘 극혐하는 통베충임 그냥 책을 읽고 이런 인상을 받았다는 거니까 오해 ㄴㄴ)

그런 틀이라는 것 자체가 결국 개인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다라는 게 스나카와 분지의 <블랙박스>라는 느낌을 받음

다른 상황에 있는 서로 다른 젠더의 작가들이 같은 주제를 봤기 때문에 이런 접근 차이라 나오는 게 아닐까...

아님 말고

참 설왕설래가 많은 작품이지만 어쨌든 재밌게 읽었다

이런 것 말고도 사쿠마의 상남자스러운 심경묘사도 인상적이었고 회상의 탈을 씌워서 작품의 시간순서를 막 꼬아놓은 것도 재밌었음

원서 가능한 게이들은 함 읽어보고 아닌 게이들은 번역 나오면 꼭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