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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강연:


 소리 없는 암살자, 암은 의외로 인류사에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은 질병이다. 암 유전자 Ras를 처음으로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로버트 와인버그는 그의 저서 『세포의 반란』을 통해 암에 대한 학계의 꾸준하고도 집요한 접근과 사람들의 오해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암은 사람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인가, 외부에서 침범하는 것인가? 암이 사람의 내부에서 발생한다면 왜 특정 물질에 노출된 사람들에게서 더 높은 암 발병률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인가? 어떤 종류의 암은 왜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치료할 수 있고 또 어떤 종류의 암은 왜 치료하기 힘든 것인가? 등 『세포의 반란』은 암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암에 대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에 대해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한 책이다. 집필 시기가 다소 오래되어 최근의 암 연구 상황이 잘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단언컨대 상식 수준에서 암을 접하고자 한다면 『세포의 반란』 한 권으로 충분하다. 그만큼 충실하고 어렵지 않은 책이다.

 

 

 앞서 말했듯 『세포의 반란』은 암 문외한들에게 상당히 친절한 책이지만, 아무래도 글줄보다는 영상이 더 친숙하게 느껴지기 마련인지라 와인버그의 저서보다는 그의 EBS 강연을 접하는 게 암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세포의 반란』에도 삽화는 있지만 아무래도 움직이는 참고자료만 못하고, 또 일반 대중들을 강연 대상으로 삼은 것이 자명한 ‘EBS, 위대한 수업은 와인버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 논지들을 연거푸 되풀이하는 형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석학들의 강연들은 그들의 저서에 수록된 내용과 다소 동떨어진 주제를 다루거나 강연의 내용이 저서 여러 권의 내용을 아우르는 상황이 거의 대부분인지라 강연을 듣는 것만으로 책 한 권을 완전히 포괄한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번 와인버그의 강연은 『세포의 반란』을 전부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 전문적인 디테일함을 전부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교양 수준에서는 이만하면 충분하다.

 

 

 와인버그는 과학 혁명이 암에 대해 밝혀낸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암이 손상된 유전자에 의한 질환이라는 사실을 꼽았다. 이 사실은 왜 유전적으로 조금 더 암에 취약한 사람이 존재하는지와 왜 암이 노화로 인한 질병으로 꼽히는지를 동시에 설명해줄 수 있는 암 정체의 핵심이다. 생각보다는 매우 적은 비율이긴 하지만, 손상된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은 유전성 돌연변이 때문에 암 발생률이 조금 더 높은 편이며, 돌연변이는 유전 이외에 세포 분열 과정에서도 비롯되는 것인지라 오래 산 사람일수록 그만큼 돌연변이가 발생할 확률이 커진다. 암세포가 우리 몸에 문제를 일으키려면 DNA 복제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것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세포 증식을 종용하는 종양유전자의 과도한 활성화, 종양 억제 유전자의 비활성화 등 여러 난관을 동시에 통과해야만 하는데, 이는 낮은 확률을 논할 때 흔히 비견되는 복권 당첨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확률이다, 암세포 입장에서는 이 까다로운 난관들을 뚫는 데에만 대개 몇 십 년 이상의 긴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몸 안에 암 세포가 발생하더라도 암이 우리의 건강에 해악을 끼치는 등의 눈에 띄는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대체로 몇 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 역시 암이 노화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꼽히는 이유 중 하나이다. 암세포의 초기 발생 단계, 즉 암세포가 초기 발원지에서 한창 성장에만 집중하기 시작했을 시점에는 통증을 발생시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초기 암 환자들은 자기 자신이 암 발병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암세포의 입장에서는 발생과 성장 단계에서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대다수 사람들의 청장년 시절에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와인버그는 천연두가 그랬고, 소아마비가 그랬던 것처럼 암이 종식된 세계를 꿈꾼다. 여러 석학들의 피땀 어린 노력 덕분에, 암은 과거 불치병이라는 지위에서 난치병으로 격하되었다. 암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를 주제로 삼은 EBS 강연의 마지막 날에, 와인버그는 암을 난치병이라는 위치에서 더더욱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의사에게 암을 치료받는 것에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암을 예방하기 위해 생활 습관을 고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암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들로 꼽히는 식습관, 생활 방식, 환경 등을 교정하기만 하더라도 암 발생 확률을 유의미하게 떨어뜨릴 수 있다는 주장과 폐암 사망률이 요 몇 십 년간 극적으로 감소한 원인은 폐암 치료법이 개선되었다고 보는 관점보다는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는 인식이 사회에 퍼져 흡연율이 감소했다는 관점이 보다 적절하다는 구체적인 예시 역시 거론했다. 엄밀히 말해서 현재 암 연구에 쏠리는 관심과 투자는 결코 적다고 볼 수 없지만, 암이 노화의 질병인 만큼 사람들의 수명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암이라는 질병에 노출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와인버그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암에 더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말로 일주일간의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