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독서는 감상이지만, 철학 독서는 연구이기 때문임.
2차문헌도 그럼. 과학은 경험가능한 것이고 실험에 의한 것이라 과학 독서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지만
하나의 철학사상은 경험의 한계를 넘어가 있고, 추상적인 개념들이고 생소한, 다시 말해서 철학은 '초감성적 개념들의 한 체계'이기 때문에, 철학은 입문서조차도 하나의 연구일 수밖에 없음.
철학책을 읽을 때(철학 독서에서) 논증 구조와 전개, 어떻게 이 개념에 이르는가 등등에 대해 숙고하며 읽는 것이 아니면 그건 철학 독서(철학책을 읽는 것)가 아니라 글자 읽기임. 철학책읽기의 근본적인 방법론은 '이성을 통한 숙고' 하나뿐이고, 비판적 읽기나 해석학적 독해는 여기서 흘러나오는 것일 뿐임.
순수이성비판을 1개월 만에 읽었다는 사람에게, 칸트 이성비판에서 현상과 물자체의 구별이 어떻게 타당한지, 초월적 연역의 의미는 무엇인지, 초월적 통각은 경험적 자기의식과 무엇이 다른지, 이론이성에서 실천이성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이율배반론에 대해서 등등을 설명할 수 있는지 물어보라. 그들은 잘 답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들에게 숙고가 부족한 것 때문이리라.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를 3달에 걸쳐 읽었음에도 아직도 명료한 설명을 하기 힘들다. 그것은 내가 4번대 명제부터 글자만 읽었기 때문임. 정말로 나는 4번부터는 그냥 글자만 읽고 '응 그렇지 그렇지' 이런 식으로 엉성하게 이해하고 넘겼음.
그러나 1년 반 걸려서 완독한 순수이성비판은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음. 물론 이율배반론은 아직도 명료하게는 모르겠다.
철학 뽕 거하게 들이키신듯
비판을 할거면 논리적으로 주장을 해야 하지 않나...
디시에서 논리적인 주장을 바라는 것은 글쓴이의 숙고가 부족한 것이리라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기점이 바뀌는 때가 왔음.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우리나라는 아니어도 영어로는 번역하는 데 있어 권위자가 있음. 에드윈 컬리라는 사람인데, 1부 신에 대한 증명에서 정리12 부분에 한 부분이 너무 이상해서 스피노자가 실수했다고 보고 자기가 직접 수정했대.
그리고 예전 스피노자 학자들도 비슷하게 따랐는데, 진짜 90년대 들어서 몇몇 학자들이 "자기 원인"을 스피노자 자신의 독특한 개념으로 생각했던 거고 사실 오타가 아니라는 입장을 폈고, 이거도 꽤나 설득력이 있다 함. 생각을 하게 만들지. 아니 에티카 그 짧은 책에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논쟁을 진행한다고? 그것도 오타 문제로?
에드윈 컬리의 그 스피노자 번역은 1985년인데 90년대 어느정도 유명 철학자인 네그리가 와서 "님아 능력이랑 역능이랑 다름" 하고 나중에 능력을 Power로 하고 역능을 power로 수정하고 그럼. 이게 아직도 진행중임. 전문가가 그러는 상황에서 우리가 진짜 어떤 책을 다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역능은 헤겔에서 나오는 Potenz를 말하는 거임?
내 생각에는 가다머의 말처럼 이해가 점근적이고, 절대 그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일은 없을 거라 봄. 그렇다면 마치 1단계-2단계-3단계... 처럼 계속 나아가는 거라고 보고, 애초에 오독은 필연적인 거라고 가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음. 완전 논리 수학으로 꽉 찬 분석철학자들도 정말 이상한 데에서 논쟁하는 게 난무한데, 이렇게 생각을 한번쯤 해보잔 거지.
포텐시아랑 포텐시아스인가 뭔가고 네그리는 에티카 3부에서 주석 하나를 들여 스피노자가 둘을 구분했는데 전문가들 다 생깠다 주장했음. 논쟁은 현재진행형인데 네그리의 주장이 우세하다 함
에티카 번역 문제는 논제를 보편화하기에는 특수한듯. 사람들 사이에 완벽한 합의는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개인 단위에서 이해를 의심하는건 쓸데없는 문제만 일으킨다고 봄
뭔가 필요를 느끼고 니즈가 생기면 더 읽겠지.
그래 열심히 해라 ㅇㅇ;; 난 나중에 그냥 슬렁슬렁 읽어볼랜다
다르게말하면 그래서 사실 연구자가 아니면 원전독파는 효율이 극악인 행위임ㅋㅋ
아 그리고 하이데거의 칸트 비판도 한번 봐봐. 굉장히 논리적인 편임. 순수이성비판에서 시간과 공간 개념의 역할을 구분하려 했지만 결국 둘은 제대로 구별되지 않았고 이게 내 철학에 쓰일 수 있다 어쩌구 저쩌구인데 보면 정말 철학자들은 이렇게도 지랄맞게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듬
평소에 책과 유사한 생각을 오랫동안 진행해온게 아니라면, 같이 걸어가는 독서의 측면에서 오래 걸리는게 맞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