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문명권 이야기지만 <백 년동안의 고독>의 모티브가 상당하다. 마술적 리얼리즘을 물리적으로 생생하게 그리면서 한편으로는 탈무드 같은 내화를 여럿 액자로 추가하여 입체감을 살렸다. 소설이 하나의 문을 왔다 갔다 하는 공간의 역할을 한다. 내세와 과거는 불변한다는 운명론적인 우주론의 세계.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연금술의 문을 크게 악용하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낱 인부들도 모두 순애보였다. 또 순애가 사라졌음에도 지리멸렬함에도 나름대로 신실하게 살았다. 내화를 안은 주인공의 일화마저 신실함과 교훈, 깨달음과 통찰력이 돋보였다. 실수는 은총인양 미끄러진 주인공의 인생에 깨달음의 등불이 되어준다.
그래서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는 전부 하나의 신화 같이 느껴진다.
+ 덧붙여서 20년 뒤로 가서 로맨스를 실현하려는 <여름으로 가는 문> 생각도 많이 났다.
백년의 고독이 모티브라기보다는 둘 다 천일야화 영향을 많이 받아서 비슷하게 느껴지는 듯
현재의 내가 과거의 어린 아내를 야스 조교하는 이야기 아니던가? ㅎㅎ
어린 남편을 야스 조교하는 미시물인데영
그랬었나? 암튼 테드창 꼴잘알임
자유의지와 운명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란 이야기가 아주 예전부터 있었던 거 보면, 적어도 중세 기독교 신학자들보다 똑똑한 인류는 꽤 많았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