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말하려는 건 방학에도 불쌍히 방과후 탓에 학교 가서 뜨거운 뙤약볕을 쬐고 기진맥진하게 돌아오는 몇 주 전 나의 이야기다.

 누가 들으면 시시콜콜하고 재미없을 수도 있다. 어차피 반응이 어떨지는 따지지 않았으니, 그리고 내 말투가 좀 그런건 아싸라서 그러니 이해해주길 바란다.


 1시를 넘기기 직전, 본래는 책을 읽겠지만 하필 책을 놓고 와서, E-Book은 없는지라 무슨 책 살까 고민하며 휴대폰을 기웃거리던 점심시간이었다. 친구는 별로 없어서 나 스스로 외로움을 달리는 일종의 파적놀음과 다름없는데, 우연히 친구가 뒤에서 슬그머니 나타났다.

 말만 친구지, 난 그 녀석을 친구라고 본 적은 사실상 없다. 한국에선 개나 소나 친구니 얌전히 친구라 부르는 것이지 여기가 미국이었으면 입 대신 총으로 부를 놈이다. 내가 그를 싫어하는 건 그의 잘난 척, 그 뿐이다. 근데 그게 너무 거해서 문제지. 분명 큰 코 다칠 날이 오리라, 했는데 그날이 그때였다

 뭐하고 있냐는 무심하듯 내 뱉는 말에 구매할 책 고른다라는 짧을 대답을 해주었지만 그는 내 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너가 한 번 골라봐라."

 대뜸 묻는 말에 문학은 거들어보지도 않는 놈이 뭔가 안다는 듯 술술 화면을 내리는 게 배알이 꼴릴 지경이었다. 저 손가락에 무엇이 걸릴까하고 예상하기 몇 초도 지나지 않아 한 책을 지목했다. ㅅㅂ 그게 하필이면 롤리타였다. 대단하게도 몇 안되는 함정 중 그걸 골랐다. 왜 추천했냐고 물자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었다.

 "이걸 몰라?, 와-" 하며 작가 한 번 쑥 훑다가 "블라드미르 나브코프가 러시아에서 쓴 걸작인데?"

 미국인데?

 목소리 한 번 가다듬고 얼빠진 내 얼굴보고 씩 웃는다.

 난 그가 어디까지 갈지 홀로 내기하며 어느 정도 호응해 주었다.

 "그래? 읽어봤어? 재밌어?"

 단 번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곤 이 책이 얼마나 재밌는 책인지를 설명해 준다.

 이 책을 읽어보고는 자기는 주인공이 너무나 마음이 든다, 주인공이 너무 간지난다, 스토리도 너무나 아름답다, 홀리, 경탄할 지경의 감상문을 들으니 웃음 참느라 애 좀 썼다.

 "취향이 대단한데?"

 얼씨구, 좋아하네?

 "그럼 나의 투쟁은?"

 한 술 더 떴다.

 "음? 작가 글 솜씨가 대단하던데?"

 웃음을 참고 "오, 대단하다. 그럼, 데카메론은?"

 "그거? 나 초등학교때 봄. 엄마가 추천해줌."

 이런 호로자식을 봤나.

 이제 사실을 알려주려는 찰나 종이 쳤고 그 놈은 간다라는 단출한 인사만 성의없이 남기고 반을 나가버렸다. 그 놈이 재미있는 녀석이라는 걸 새삼 느끼며 수업에 임할 준비를 했다. 마스크 아래에 조커처럼 실실 웃는 그 모습은 거울이 없어도 상상이 같다. 

 독붕이들도 이런 경험 있지 않나? 한 번쯤 있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