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중 교도소에서 죄수들을 모아놓고 성체성사를 드리는 장면임


사제는 이러한 일들에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이것이 유일하고 진실된 신앙이라 배워왔다. 이전의 모든 성인들이 그렇게 믿어왔고, 교계敎界나 정계를 비롯한 사회의 모든 지도자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믿고 있었다. 빵이 정말로 예수의 살로 변했다고 믿는 것은 아니었다. 장황한 설교가 영혼에 유익하다고도, 자신이 먹은 것이 정말 예수의 살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를 믿을 사람은 없었다. 그가 믿는 것은 신앙 그 자체였다.
사제의 신앙심을 굳게 해준 것은, 지난 십팔 년간 종교의식을 주관하면서 벌어들인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아들을 중학교에, 딸을 신학교에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사는 이런 믿음을 사제보다 더 강하게 갖고 있었다. 그는 이 신앙의 본질적 가르침은 완전히 잊어버린 채, 추도식에 얼마, 미사에 얼마, 일반 기도에 얼마, 찬송 기도에는 또 얼마, 이렇게 일정액의 헌금이 측정되어 있어, 신실한 교인이라면 기꺼이 그 돈을 지불한다는 사실만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가 때에 맞춰 “불쌍히 여기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부르짖고 노래하고 독송하는 것도 장작이나 밀가루, 감자를 파는 장사꾼들처럼 이 일의 필요성을 확신하기 때문이었다.

소장이나 간수들은 이 신앙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성당에서 행해지는 의식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도, 알려고 해본 적도 없었다. 그저 장관들과 황제가 믿으니 자기도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들은, 이유를 설명할 순 없지만, 막연하게나마 이 신앙이 자신들의 잔인한 직무를 정당화시켜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신앙마저 없었다면 그들이 지금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사람을 괴롭히는 데 온 힘을 쏟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소장도 천성은 착한 사람이라, 이 신앙의 힘이 아니었다면 분명 이런 생활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꼼짝도 않고 꼿꼿이 서 있다가 진심으로 절하고 성호를 그은 것도, <지품천사와 함께>라는 찬송가가 울려퍼지자 어떤 감상에 빠져든 것도, 그리고 아이들이 성체를 받기 시작했을 때 앞으로 나아가 아이들을 안아올려줬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부활 1 |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백승무 옮김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