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마치 심리학자가 된 것처럼 인간의 이성보다 인간이 가지는 몇몇 기분이 인간을 더 지배한다고 말함.
그 기분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근본기분"이라 함.
근본기분은 인간이 존재를 이해하는 가장 광범위한 경우를 뜻함.
존재 앞에서 무엇을 느끼는지에 대한 설명이었어.

고대 그리스 사람은 존재 앞에서 그것을 경이 혹은 경악으로 봤다 함.
이것이 어떻게 이렇게 되는지, 왜 이렇게 된건지, 왜 이렇게 거대한지를 생각했겠지.
이성은 그 뒤에야 쌓여진 것이라 함.

전기 하이데거엔 근본기분을 불안으로 생각함.
과학기술이 놀랄 정도로 발전했고,
기술은 고대 그리스의 포에시스란 말처럼 존재를 더 잘 드러내주기보다는, 몰아세우는, 그래서 어떻게든 기계화하려고 했고,
인간도 마찬가지로 몰아세워져서 시간과 그 죽음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고, 그래서 이게 현대 사회의 모습이라고 봤지.


그런데 난 이런 생각이 들었음.
정말 시간인지 죽음인지가 별 문제가 되는 걸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
보통 문학은 늙음의 문제로 해결했음. 걸리버 여행기에서 평생 살지만 나중에 늙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

하지만 난 이것이 논점을 비켜난 거라고 생각했거든.
시간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게끔 인간의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어찌되는가?
노화의 문제도 해결하고, 병도 걸리지 않고, 그냥 평생 건강하고 충분히 얻을 걸 얻으며 생활한다면 어떨까?
하이데거의 죽음 타령은 대체 뭔 쓸모가 있을까?


난 이 질문의 해답을 은하철도 999에서 얻었음.
"장례의 별"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그 별의 사람들은 마치 광적인 종교인처럼 장례식이란 행위를 깊이 받아들이고, 장례식 뒤에는 장례식을 더 치르기 위해 전쟁을 일으켜 다른 사람을 죽인 뒤 다시 그 사람에 대한 장례를 치른다고 함.

왜 이런가?
장례의 별은 예전에는 골프나 치면서 정말 천국 같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함. 그런데 어떤 비행선이 급히 이 별로 우회하여 도착함. 애인 관계인 남자와 여자가 있었는데, 여자가 급성으로 위험한 병에 걸려 치료를 필요로 했던 상태였음.
그러나 장례의 별엔 병원이 없었음. 누구도 병에 안 걸리기 때문. 결국 그녀는 죽었음. 그는 그 장례의 별에서 정말 낯선 의식, 장례식을 진행하고, 마음속 깊이 오열하며 그녀를 떠나 보냈다 함.

여기서, 그 장례의 별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형용할 수 없는 어떤 급격하고 초월적인 어떠한 감정을 느꼈고, 그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그 감정에 심취한 나머지 남자마저 죽인 후 장례를 치렀음. 그리고 그 감정을 위해 장례식을 매일같이 전쟁을 해가며 펼치는 일이 일어났다 하는 것임.


초기 하이데거 직후 그는 점점 존재를 설명하는 데 있어 "시간성"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음. 점점 존재의 근본기분을 더 탐구하다가, 불안 대신 다른 개념을 찾아냄.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에서 그 말을 하지.

그렇게 나온 세번째 존재의 근본기분은, "권태"임.
우리는 우리 스스로 존재에 대해 지루해하고 있다는 것임.

존재 자체가 너무 이해가 안 되어서 계속 이해 관계를 가졌던 고대 그리스와는 달리,
이젠 존재가 너무 당연해졌고, 세상이 의미없이 너무 지루해졌고, 존재가 "말을 건네는 것", 그러니까 존재를 이해해보는 것이 오히려 신기해졌다는 것임.

릭 앤 모티에서 릭은 그 어떤 세계도 탐험하고, 어떤 것이 실현된 세계도 실현되지 않은 세계도 갈 수 있었지.
그러나 그는 친구를 가지게 됨. 그의 친구인 버드퍼슨과 함께 그 세계 안의 권위에 대해 전쟁을 하지.
전쟁이 끝난 후 버드퍼슨은 이렇게 물어봐. "대체 너는 왜 나와 같이 있느냐? 너는 내 투쟁이 성공한 세계도 실패한 세계도 갈 수 있지 않느냐. 대체 왜 날 도와주는가?"
릭은 이렇게 말해. "그렇다. 이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 세상과 다른 모든 세상도 의미가 없다. 그러나 나에게 너는 의미가 있다."

우리 세상을 사는 방법은 존재에의 권태에 대한 하나의 투쟁, 하나의 의미 세우기라고 할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