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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가 쓴 종교에 대한 고백이자 해석. 신이 세상사의 이론적인 깊이이고, 기반이라고 하고, 인격체로 나타난것은 윤리적인 롤모델이라고 한다. 신 자체보다는 신을 매개로 통하여 표현되는 교훈을 중시한다. 저자 말대로라면 종교보다는 철학에 가까워진다. 사실 종교와 철학은 다루는 분야가 많이 겹친다.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 종교는 정서적인 숭고한 감정을 야기하는 것이 주요 과제이고, 철학도 그런 미학적 원리를 규명하는 것이 중요한 분과학문이였다.
근데 왜 하필 동아시아 세계에서만 철학이 지배장치로 이용됐고, 서양은 종교가 지배하였는가? 고대에 세계관을 규정하던것은 이야기 형식의 신화였다. 중국에도 중국신화가 있고, 서양에도 서양신화가 있다. 근데 그것이 점차 유학이나 기독교로 변형되어 갔다. 원시적인 공동체에 있으면 소통이 이론적인 것보다는 이야깃거리가 자극적인 스캔들 경험담 가십 목격담 소문 이런거 경험과 직결되는 것. 그것을 통하여 미루어 추리 판단 작용을 거치는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 그자체를 뽑아서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론은 경험이라는 원석에서 가공한 정제물이고 경험은 원석 그자체라고 봐도 될것이다. 그래서 동서고금 세계관을 설명할 때 신화형태로 발전하였다.
거기서 숭배의 감정은 신을 만들어내던데, 왜 서양은 초자연적인 신이라는 개념을 고수했고, 동양은 버렸는가. 내가 보기엔 유럽 중동 인도에 이르기까지 고대에 서사시가 교육적 목표로 교재나 경전으로 채택 된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중국은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에 막혀서 서사시의 유행에 동참하지 못하였다. 문학이란게 동서양 양쪽에 중요한 교육교재였지만 서양은 서사적 장르가 발전하고 동양은 시 장르가 발전하였다. 서사적 매체가 막대한 문서량을 필요로 하고 종이와 인쇄술이 먼저 발병됐으나 유포하는데 막대한 수작업을 서양은 노예를 갈아넣어서 한것 같다.
사기가 24사중 첫번째 정사이고, 기전체라 전기이고 서사적 문학성이 있으나 그보다 더 권위 있고 오래된게 사서오경에 춘추이고 춘추는 편년체이다. 공자가 애초에 원칙을 술이부작으로 기록하되 창작하진 않는다라고 정했기 때문에 종교 같이 신화성이 다분한 매체가 퇴색하였다. 이슬람교 같은 경우는 마호메트가 언제 태어났는지도 정확히 모른다. 동양이 역사기록에 있어서는 꼼꼼하고 방대하게 기록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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