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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초-중학생때 필독서로 다 읽었다는데, 나는 방학을 맞은 고삐리가 돼서야 읽었다.
한국의 40년대와 50년대를 말하자면 한 마디로 혼란의 시대. 2차 대전이 한창이던 일제시대가 끝나자마자 좌 우익의 대립이 시작되었고, 서로를 테러하다가 결국 축지법을 쓴다는 혹부리 장군이 쳐들어와 쑥대밭이 되어버린, 20세기 한국의 가장 아팠던 암흑기.
책에서 묘사되는 한국의 40년대는 정말 인간적이다. 하나뿐인 손녀딸을 엄청 아끼는 할아버지, 아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고자 고향을 떠나 서울에 홀로 가는 어머니, 나쁜 친구와 어울려 형무소 앞 계단에서 미끄럼틀 놀이를 하다 엄마한테 혼나는 이야기, 몰래 엄마 돈을 훔쳐 사탕을 사먹다가 진열장을 부숴 온가족이 모욕을 받는 이야기, 결핵에 걸린 여자를 사랑해 결혼까지 했다가 끝내 아내와 사별한 오빠, 자식도 있는데 불륜하는 삼촌, 초등학교때부터 친했다가 다른 고등학교에 가게 되어 이별한 친구. 일제시대라고 하면 무시무시한 식민지배를 떠오르겠지만 적어도 전쟁이나 좌익 우익은 없던 시대이니 나름 평화로웠나보다.
붕괴 후 혼란기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삼촌이 노무부장이었다는 이유로 친일파로 몰려 청년들에게 집이 박살나는거로부터 시작하는 해방 후 파트는 말 그대로 혼란이다. 오빠는 좌익운동에 빠져 이상한 소리나 하고, 38선을 헷갈려 박완서 작가의 집인 개성에 미군이 왔다가 소련군이 왔다가 하며 마을의 분위기도 그때마다 달라진다. 서울로 온가족이 돌아오고 전쟁이 터진 후엔 피난가지 못하고 북한군이 들이닥쳐 하루아침에 서울의 풍경이 달라져버린다. 대학교는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곳이 되어버리고 반동분자를 색출하여 아무나 처형하는 짓이 일어나다가 한국군이 서울을 수복하자 원상복구 되지만, 이번엔 거꾸로 빨갱이를 색출하여 아무나 처형하는 짓이 일어난다. 삼촌도 결국 아무 이유없이 처형당한다.
오빠가 북한에 의용군으로 잡혀갔었다는 사실이 인정되고, 박완서도 빨갱이가 아님이 증명되자 시민증을 받고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도 오래가진 않았다. 중공군이 쳐들어오고 1.4 후퇴로 서울을 떠나야 하는 일이 일어나자 박완서 가족은 서울을 떠나지 않기로 한다. 상경하여 처음 살았던 곳인 서대문구 현저동에 숨어 모두들 피난가느라 집에 두고간 쌀을 먹고 연명하며 서울이 다시 수복되길 기약하는 것으로 책은 막을 내린다.
사실 책에서 해방 이후의 파트는 그리 길지 않다. 2/3 가량이 향토적이고 인간적인 일제강점기 파트이다. 실제로 해방 이후 전쟁이 일어나기까지 5년밖에 안 걸렸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급발진이라 부를 수 있을정도로 해방 이후 박완서 가족의 몰락은 매우 빠르게 이루어진다.
그런 특징에서 나는 한가지 궁금증이 생겨난다. 이 책은 희극일까, 비극일까. 혼란의 시대에서도 가족애와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희극인가, 아름다운 일상이 전쟁의 군홧발에 짓밟히며 한민족이 겪었을 아픔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비극인가.
이 책을 비롯하여 권정생의 몽실언니, 최인훈의 광장 등등 한국 문학에서 시대적 배경으로 가장 많이 등장했을 40년대와 50년대는 현대에 이르러 사람들에게서 망각되고 있다. 당장 박완서와 같은 30년대에 태어나 4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분들은 올해로 80살을 훌쩍 넘긴 고령의 분들이시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일제시대와 6.25 전쟁을 먼 옛날 이야기로 여긴다. 얼마 안 가 역사책 속으로 들어가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잊힌다 한들 그것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이라는 것은 본디 활자와 사진과 음성을 타고 수백년 뒤의 사람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옛 사람들이 남긴 감정은 영원히 남아 우리의 가슴 한켠을 아리게 할 것이다.
노노 고딩때봐도 충분히 일찍 보신 것... 후기 좋네요 이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보십니까?
당근 봐야죠
이거 보니까 나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