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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는 20세기 영문학을 통틀어도 획기적인 성과를 거둔 작품이다. 모더니즘의 절정임과 동시에 상업적으로도 5천만부는 넘게 팔렸으니까.


헌데 유의해야할 점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달리 13살 의붓딸 강간하는 씬은 거의 안나온다. 암시만 죽어라 할 뿐이지.


그래서 롤리타가 굉장히 유명함에도 거의 언급이 없는건 특유의 난해함도 있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 한번도 완독 못하고 갖다 버렸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작가는 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비난에 시달렸다고 한다. 


장 대표적인게 작가도 페도필리아 아니냐는 것이다. 흠, 그럼 토스트는 할머니 연쇄살인마인가보군. 




물론 험버트 험버트가 작가와 완전한 무관한 인물이라고 보는 것은 나보코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보기에도 무리다.


이름부터 벌써 "나는 나보코프요"라고 대놓고 선언하고 있다.(나비의 풀네임은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나보코프다.)


롤리타를 만나기 전까지의 경력은 부분적으로 작가와도 겹친다. 허나 등장인물이 작가 본인을 투영하는건 일상다반사 않은가.




이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롤리타가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의 고백록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있다. 


즉, 작중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페도새끼의 자기고백, 연민, 합리화의 연속으로 이루어져있다. 


주변 인물은 이에 대해서 주도적으로 반박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예를 들어 첫관계씬을 생각해보라, 나는 아저씨와 사랑을 나누고 싶어요. 이게 정말 성관계를 의미하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설사 그렇다치더라도 의붓아버지, 아니 망할 다 큰 어른이면 그 상황에서 떡치면 안된다는건 알고 있지 않은가. 


법적, 도덕적으로 이야기하는게 아니다. 겨우 13세인 돌로레스 헤이즈에게 성관계가 신체적, 정신적 휴유증이 남는건 당연지사 아닌가.


헌데 문제는 동물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 안한다. 첫관계 묘사 부분을 워프(아, 물론 설정상 검열했다는 판단도 가능할 것이다.)한다. 


그저 관계가 끝나고 롤리타가 충격받은 모습만 암시해줄 뿐이다. 




2부가 끝나갈 무렵, 본인은 한가지 느낌에 사로잡혔다. 과연 이 페도필리아는 님펫을 사랑하는 것일까?


물론 말로는 님펫을 영원히 사랑한다고 하지만 문제는 작중 내내 험버트는 돌로레스에 대한 시선을 육체적 관찰 이상으로 주지 않고 있다.


즉 그가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소유할뻔했지만 소유하지 못한 부분에 한정되어있다. 


그녀의 육체를 사랑할뿐 그녀가 어떤지는 관심을 가지지 못한다. 오히려 늙어가는(!!!!) 그녀를 대체할 방법을 세운다. 


어떤 방법인지는 차마 디시에서조차 말 못하니 나무위키를 치길 바란다. 


이는 파멸을 불러온다. 그리고 그는 그 파멸을 자처한다.  누군가는 이걸 반성이라고 하는데 글쎄요.....




작중 롤리타는 페도새끼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당연하지만 그녀는 '이것저것 사주는 아저씨'를 원하지 않는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자신을 존중해줄 사람을 원하는 것이지 풍요로운 물질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만의 모험을 실행한다.


이는 험버트 험버트가 되찾고자했던 것이 파산했음을 보여준다. 그 시절은 떠났고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


무엇인가에 집착한 결과 미국에서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았던 중산층 지식인은 사라지고 어느새 그 이름만이 남아버렸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는 원령이 되어 자신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수단, 복수를 실행한다.


이것은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모든 것이 없어진 그에게 있어 그것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끝난 직후 소설이 끝난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제 할 이야기는 다 했으니까 빠르게 끝내자는 것이다. 




혹자는 이게 반미소설 아니냐고 했다. 나보코프는 페도 의혹보다 더 싫어한다고 하지만 20% 정도는 맞는 말이다.


2부 초반부 곳곳에 묘사되는 미국은 실존하는 미국이 아니다. 작가도 간접적으로 시인하듯 상상하는 미국에 불과하다. 


이 또한 이중의 장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지만 그 미국이 어떤지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 


그런 의미에서 가명이라고 선언하는, 험버트 험버트가 어렸을때 잃어버렸던 무엇인가...... 


어쩌면 롤리타의 본명은 칼리나, 옥사나 라기보다는 러시아라고 보는 편도 괜찮지 않을까? 

(칼리나와 옥사나 모두 동슬라브권의 여성이름)




아마 험버트는, 그리고 블라디미르는 이 부분에 대해서 영원히 침묵하지 않을까싶다. 


결국 그렇게 우리도 또다른 롤리타를 떠내보내고 미래를 향해 떠내려갈 수 밖에 없는 처량한 운명을 타고 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