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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론에 대한 부분보다는 저자의 의견이 보이는 부분을 발췌했고, 문장을 좀 다듬었음
30 최초의 독영 대역본은 비트겐슈타인과의 서신 교환을 통해 교정을 거쳤으며, 까다롭기로 소문난 비트겐슈타인이 승인한 유일한 영어 번역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 전공자들은 2종류의 영역본 둘 다 볼 거 같음
58 『논고』는 독창적이면서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명백한 사상적 맹아를 몇몇 철학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철학적 탐구』는 그 선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독창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60 분류는 어디까지나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전모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나 분류법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두 개의 비트겐슈타인인가, 아니면 세 개의 비트겐슈타인인가 하는 새로운 문제가 등장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역시 이러한 분류 자체가 인위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크게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단, 이러한 분류를 통하여 한 철학자의 사상적 발전이 어떤 과정과 변화를 겪었는지 읽어낼 수 있는 안목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61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처음 접할 때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 중 하나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묘하게 끌리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61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해석을 시도하는 사람의 수만큼 여러 다른 해석들이 가능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61 해석자들 대부분이 공유하는 부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입문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어렵다. 하나의 정설이 아니라 여러 이설들을 함께 소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61 뒤집어서 말하면 해석이 분분하다는 것은 그만큼 당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논의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며, 또 앞으로도 얼마든지 재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것이다.
62 훌륭한 고전은 시대를 넘어 꾸준히 재해석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안목과 지혜의 길잡이가 된다. 좀 성급한 판단일 수 있겠으나 비트겐슈타인은 미래를 위한 고전을 남기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 '훌륭한'이라는 수식어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 같음
→ 애매모호한 것이지 훌륭한 건 아니다?
63 정확히 말하면, 비트겐슈타인은 하나의 공책에 일기도 적고 철학적 사유의 결과물도 적었는데, 철학적 사유도 마치 일기와 같이 날짜를 적으며 기록했기 때문에 하나의 독립된 철학 저술로 보는 것보다는 한 인간의 일기의 철학적 확장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저술 방식은 후에 저작 편집을 맡은 제자들에게 완전히 사적인 일기의 내용과 철학적 내용을 구별해야 하는 고충을 안겨주었다.
69 비트겐슈타인의 독일어 문체는 장황하게 늘어지는 일부 독일 철학자들의 독일어에 대한 변증법적 반정립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아이러니는 독일 철학자들의 글이 늘어지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어렵다면, 반대 극단에 있는 비트겐슈타인의 글은 너무 짧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 이 책에서 이론 제외하고 가장 인상적이였던 부분
75 비트겐슈타인을 예수와 흥미롭게 비교할 수 있게 해준다. 예수는 12명의 가까운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남겼다. 마찬가지로 비트겐슈타인에게는 총애하는 제자들이 여럿 있었다. 이들이 직접 가르침을 받은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그들을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지는 않다.
80 철학사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칸트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128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칸트와 유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인지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179 비트겐슈타인 스스로 『탐구』를 『논고』와 합본으로 출판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논고』를 완전한 실패작을 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논고』는 『탐구』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삼을 수 있다고 보았다. 『논고』에서 나타났던 언어와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237 일부에서는 『논고』는 모더니즘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탐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색채를 띤 저작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까지 등장했다.
239 데닛이 진단한 것처럼 아직 철학사에 있어서 비트겐슈타인의 위치를 평가하기는 이를 것이다. 어떤 철학자들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그것이 지닌 가치 이상으로 과대평가되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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