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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운동 존나 개같이 하는  70줄 되는 틀딱새끼주제에 담배는 엄청 피우고 인생 적당히 사는 년놈들에대한 소설이지만  양아치는 나오지않는  소설을 참으로 열심히쓴다. 거기다 감동도 주며 무언가 묵직한 느낌도 주는 별난 재주를 가진 작가다. 아마 영국 작가였으면 이렇게쓰지못했을 것이다. 오로지 아시아인이기에 혹은 70줄 넘게 먹은 개틀딱 작가이며 전공투 세대이자 아버지가 일본 제국군으로 근무한적 있는데다 재즈를 미친듯이 좋아하고 명문대를 나온 사람만이 이렇게쓸수있다고 생각한다.
퇴폐에대한 동경이있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리 하려고 해도 할수없기때문이다. 재즈 는 마약이다. 유명 재즈 연주자들은 대부분 마약에찌들어 죽었다. 버드 역시도 약물중독으로 죽어버렸다. 그러므로 재즈를 사랑하는 사람은 마약에대한 동경이있으며 하는 사람도 많다. 혹자는 마약을 안하면 재즈는 들으나 마나라고 한다. 재즈 연주자들은 연주전에 마약을 하고 하니까. 그감정과 감각을  느낄려면  무조건 마약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도아니고 영국도 아니고 프랑스도 아니고 일본 도쿄에서 마약을 구하기란 엄청나게 힘들다. 아무리 야쿠자가 판을 치는 동네라지만  연줄 없이 마약 구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길바닥에서 마약을 파는 흑인따위는 일본에 존재하지않는다. 도쿄길거리에는  샐러리맨 이나 갸루 밖에없다. 갸루도 마약은 팔지않는다.
특히나 하루키 처럼 상류층들이나 다니는 대학에 다니는 초모범생 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그래서 마약에 대한 판타지를 가질수밖에없다. 동경하는 재즈 뮤지션들은 죄다 마약으로 죽었는데 나는 마약을 구할수 조차 없다는 감각 그로인해 마약에 쩔은 재즈 걸래 년들과 섹스 할수 없다는 현실 상황이 퇴폐에대한 판타지를 심화시키고 결국 에는 글로써 쓸수 밖에없다.
이는 그의 소설에서도 몇장면 나온다  
양을 찾아떠나는 모험에서 처음부터 아무나 자주는 개걸레년이 나온다. 개걸레년이긴하지만 소설은 잘읽는 그런년이다. 음악도 잘안다.
(어느 동네 걸레년이 그러는지 모르겠다. 내가아는 걸레년들은 책따위는 안본다. 만화나 읽을 뿐이고 대학생 새끼들 한테는 관심도 없더라. )
이후 소설에서는 존나 쿨한 걸래년과 존나 쿨한 년들이 나온다. 오죽쿨하자면 대화한번에 섹스를 하러 온다.  
클럽 도 아니고 뭔 일하다 만난잘알지도 못하고 우연히만난 애들이 그렇다.  이것이야 말로 퇴폐 아닌가. 마치 재즈와 락스타들의 전설적 섹스 일화나 그냥 일화를 연상케한다.
이후 쓴 소설에서도  존나 쿵한 걸래년은 안나오더라도 존나  쿨한 년이나오거나 놈이 나온다.  그들의 행동은 마치 아시아인이 가지는 상상속의 미국인의 모습과닮아있다. 영화속 에나오는 미국인의 모습 말이다.  그래서 어떤일본인 틀딱 작가 새끼가 일본소설이아니라 서양소설 번역본 같다는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들었다. 아닐지고 모르고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신경쓰지않는다. 일본인 다운 맛이 하나도 없으니까.
이건 비단 하루키만의 문제가 아니다. 무라카미 류 에서도 느껴지며 하루키 세대 혹은 그 살짝 밑의 세대와 그에 영향을 받은  일부 소설가들에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다들 배경은 도쿄고 이름은 일본인인데 행동은 일본인이 아니라 서양 영화속에서 나온 인물들 같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물론 일본인이뭐냐고 물으면 할말은 없다. 나는 일본인이아니기때문이고 아마 일본인도 일본인에 대해 말할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서양영화 인물 같다는 감상은 말할수 있다. 현실속 인물이아니라 령화속에 나오는 가공된 판타지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사회가 세계화로 인해 상당히 분열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소위 서양 문화의 세례를 받고 그것들을 동경하거나 직접 하는 구성원들과 그런것에 관심없는 구성원들로 말이다.  이구분은 영어를 하냐 못하냐 프랑스어를 하냐 못하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서양문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동경을 하느냐 아니냐 즐기냐 아니냐의 문제다. 사고방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서양식으로 생각 하는 사람과 아닌사람은 분명 갈등을 할수밖에없다. 특히나 서양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인데 동양인이라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뿐만이 아니라 세상자체와 고독한 투쟁을 할수밖에없다. 거기다 동양에서 동양학교에서 교육 받았기 때문에 배운 가치관과 서양식 가치관의 충돌 까지 있다. 정체성에대한 문제를 자극한다. 한국소설가 누가 그랬다 조선놈은 아무리 일본 어를 배우고 일본에서 생활을 오래해도 일본인이 절대 될수가 없다. 이게 가장 큰 비극이다 라고 그랬다.
그럼 이도저도 되지못해 미치던가 아주 중립을 유지해 극단에 도달하지않게 갈등이 생기지않게 어정쩡한 감각을 유지하면서 외줄타기하기 하면서 갈등을 휘휘 넘겨 버리거나하는 선택지 밖에없게된다.  하루키는 언제나 후자를 택한다.  이는 일본 제국 멸망이후로 미국에 의해 재탄생 되어버린 조국의 현실을 은연중에 들어내는 지 모른다.
일단 하루키는 일본 좌파 사상에 영향을 크게 받은것은 확실하다. 이건 기사를 보면 된다.  우익 혐한들에게 개쳐럼 까이는 작가니까.  일본 좌파들은 자주 에대해 이야기하지않는다. 일본 좌파들의 모토는 일본제국 멸망이후 미국에 의해 성립된 현 일본을 수호하며 이것저것 하자는 입장이다. 그런 현실에서 미치는 걸 선택 할수는 없다. 오로지 서양과 동양이 어느정도 균형을 맞추는 세계밖에는 선택할 길이없다. 모순되지만 가장 현실 순응 적 작가가 무라카미다. 그럼으로 인해 죄책감에서 가장 멀어진다. 제국에대한 죄책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부에대한 죄책감 등등. 그래서 하루키 소설은 언제나 깔끔 함을 자랑한다. 한국 소설이 결말과 내용에서 언제나 사회변혁을 토로 하는 것과 다른 점이다.  쿨하게 소설 쓰려면 현실에 순응 하면된다.
  
  그래서 무라카미는 같은 상황에 쳐했던 일본제국의 작가들과 달리 오래살고 운동을 존나 하며 건강하게 사는 지도 모른다.
이쿠타쿠와는 결국 자살하고 싶다는 글을 발표하고 자살을 했고  다자이는 자살했으며 미시마도 자살을 했고 겐지도 자살을 했다.  다른 일본 제국 시절 수많은 작가들이 자살을했고 그외 학생들도 자살을 오지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