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을 까. 솧직하게 고민을 진지하게했다. 나는 이슬람을 존나게 싫어하지만 구르나의 소설은 존나잘썼가고 생각하고 흑인들 존나 미개하고 다뒤졌으면 하지만 아프리카 난민 문학 여성주의자들은 모조히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성주의 문학은 잘만읽는다. 게이소설은 솔직하게 섹스묘사가 너무 좆같아서 안읽었다고 생각했는데 후장섹스 하기 전까지는 잘만 쳐읽은게 몇편인가 된다. 문제는 해외작가 작품만 이렇고 한국인이 쓴 pc, 게이소설, 난민, 여성주의 소설은 도저희 이런 감정이들지않고 뭐 이딴 개좆밥 작품을 썼어 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는 구조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소설은 3가지 갈등이있어야한한다.
1. 나와 타인의 갈등이있다.
2. 나와 세상의 갈등이있다.
3. 나와 나의 갈등이있다.
이세가지가 성립하지않으면 어떤 소재로 글을 써도 의미가 없다. 실헌을 하던 뭘 하던 저 3가지가 기본이다. 예를 들어 실수로 어떤 가방에 들어가서 탈출하려고 하지만 탈출하지못하고 죽게된 사람이야기를 한다고 해보자. 가방에 대체 왜들어갔을까부터 시작해야한다.
이때 호기심이라고 말하면 필연적으로 나는 나를 욕해야한다. 하지만 나와 타인의 갈등을 나타낼수는 없다. 곧이어 부인,남편과의 갈등 상황이라도 보여줘야한다. 개같이 욕하면서 나가면 이혼한다 하다가 결국 그러지말걸 그랬어로 결말나는 식으로 전개하는 것도 좋고 끝까지 욕하고 증오 하다 끝나도 된다. 보통 후자를 추천한다.
나와 세상의 갈등은 결국 가방에서 탈출 하려고 하는 나와 열어주지않을 려는 가방과의 사투다. 나는 나가려고 하는데 가방은 못나가게 한다 . 그러다 죽는것이다. 나는 이렇게썼지만 다른사람들은 탈충해서 사는 이야기를 써도된다. 크게 상관은 없다.
Pc, 게이, 연대, 여성주의 흑인 등등의 소설들도 이세가지를 다가지고있으며 고민하지않아도 배운사람이라먄 이세가지를 능히 다만들어낼수가 있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이런 글을 쓰는 것이다. 물론 쉽다고 쓰는 건 아니다. 그것이 내소설의 주인공의 민족,국가,인종,성별 을 주요물로 내세울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갈등일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면 현대여성이 결혼을 한다고 치자.
그럼 필연적으로 임신에대한 문제 그리고 직장에대한 문제 , 남편 가족에 정착해야한다는 것에대한 문제, 정체성에대한 문제(뭐 개같이 어거지 써서 인정해드림. 내가볼때이건 더이상 딴남자새끼랑 섹스를 못하기되니까 오는 정체성적 충격이라고 생각한다.
임신이라도 하면 더 딴놈하고 섹스를 못하게된다. 그러니 산후 우울증과 연계가 크게된다. 애보는 게 힘들어서 다 산후우울증 걸리면 옛날 사람들은 다죽었다. ) 가 떠오른다. 이를 비평적으로 볼때 여성주의 소설이라고 부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떤내용이냐는 또 문제지만 보통 저렇게 다루면 여성주의 소설 비평을 받게된다. 거기다 주인공이 흑인, 아시아의 잡다한 민족들이라면 탈식민지주의니 뭐니 하는 비평까지 받게되어서 평가는 높게올라간다. 읽는 사람의 재미도 재미있다고 느끼게될 소재가 많다. 이국의 경치? 풍습에대한 묘사 그리고 나는 백인이라는것애서 오는 안도감과 그들을 구원해줘야한다는 사명감 죄책감 이국의 문화풍습에대한 손쉽게할수있는 분노들.
백인이 주인공이고 주요 테마라면 사실 그렇게 높게 평가받기가 힘들다. 백인이 백인에게 강간당한다? 걍 평범한 스릴러다. 대신 백인이 흑인에게 강간당했는데 그흑인은 백인여자의 경찰아빠가 한 인종 차별을 당해 감옥에 4년간 산 흑인이고 그복수로 그경찰의 딸을 강간했다. 이걸알게된 백인여자가 울면서 흑인에게 사과하고 어쩌고 한다 정도는 해야한다. 하지만 아니라면 그냥 그런 소설이되는 것이다.
이점이 한국에서 pc문학을 노잼으로 만드는 원리와 같다.
한국은 다민족 국가가아니기때문에 흑인도없고 아시아인도 없다. 우리는 아시아인이지만 한국에서 우리는 최강의 주류민족이다. 타민족 따위의 영향은 한국에서 존재하지를 않는다. 그래서 이주노동자 소설이나 겨우 나오는 것이다. 이것도 환률차이로 때돈을 벌어간다는 게 너무나 명백하고 다들 몇년일하다 돌아가기때문에 그렇게 반향을 끌지못한다. 정착한 사람이너무나 적다.
여성이 약자라고 항변할수 있겠지만 아프리카처럼 여성할례를 한다거나 여자라면 사창가에 팔려간다거나 군벌들에게 강간당한다거나 하는 상황은 없다. 거기다 주류민족이라 인종 차별도 당하지않는다.
한국 소설가들은 카페에모여서 커피를 열심히때리며 어떻게해야하나 고민을 때린다. 그러자 드는 생각 여자가 한국사회애서 얼마나 약자인지를 보여주자. 한국사회에서 여자가 흑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자 땅땅땅. 그래서 나온게 82년생 김지영이다....오바다 82년생 김지영은 총판 판본 버전 같은 것이고 그안의 요소들은 90년대 부터 혹은 70년대 부터 쓰여지기 시작했다.
시집살이와 일과가정양립에대한 커리어우먼에대한 문제들 명문대 나온여자들이 왜 살림이나 해야하고 자식성은 왜남편성만 물여줘야하고 추석 설에는 왜 남편집 에 먼저가야하고 일은 여자가 다하는지에대한 의문재기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부부양쪽이 일하는 비율은 1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절반에 도달했다. 거기다 양육에대한 문제도 양놈등 보다 수월한게 친정엄마가있다. 서양이라면 상상도못한다. 거기다 양육지원도 생각보다 빵빵하다. 전일제 유치원? 서양이라면 상상도못한다
한창 육아 정책이 나오고 일하면서 애키우 기 힘드니 나라가 도와줘라 부인성도 자식에게 물려줄수있어야 한다고 난리가 나던 00년대때는 고작 10프로에서 20프로 수준이었다. 참고로 미국이나 스웨겐 덴마크 노르웨이에서는 90년대에 이르면 고전적의미의 가정주부란 말은 대도시기준으로 꿈에서나 나오는 말이된다.
고로 한국에서 여성주의 소설을 쓰자면 작위적 설정을 많이 해야한다.
이는 판타지 소설을 쓰는 것과같다. 하지만 이러면 개별성만 획득하지 보편성은 획득하지못한다. 보편성을 획득하지못하는데 보편적인것 처럼 주장하게되면 반감이생기고 이는 소설에 이입하지못하게한다. 그과정에서 평가는 더욱더 떨어진다.
이것이 주류민족이 소설을 쓸때의 어려움이다.
한국 게이 소설의 문제점은 개별성에만 치중해 보편성을 가지기 힘들다. 보편적 공감을 딱딱 쳐줘아하는데 한국에서는 그 걸 만들기가 너무나 힘들다. 서양에서는 60년대까지 게이는 불법이라 진짜나라의 탄압을 받고 처벌을 받았다. 특히 영국놈들은 60년대까지도 유지를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러한 일이없었다.
미국은 에이지를 방치해서 게이들을 죽게만들었는데 그시절 한국에서는 게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고 에이즈는 뭔나라 이야기다. 거기다 에이즈 환자에게 엄청나게 지원을 해주고있다. 홍석천도 결국은 복권되었다. 거기다 홍석천이말하기를 한국게이들은 홍석천이 커밍아웃 한 덕분에 이미지망가졌다고 뒷담이나 했다고 한다. 연대 지들도 안한다는 소리다.
이러니 게이 소설 어디 쓰겠나. 그러니 커밍아웃시 가족 문제 게이였던 옛연인이 여자 혹은 남자랑 결혼하는등의 시시한 문제만 건드릴수밖에없다. 아. 동성 결혼 문제도 있는데 사실 결혼제도 폐지를 주장하는게 더 용기있는행동이고 동성결혼 합법화는 존나 보수적 태도라 높게 평가받기가 힘들다. 거기다 한국은 기독교 사회도 아니라 기독교 vs 동성애 구도도 쓰기힘들고 쓰면 작위적이게 보일뿐더러 공감도 크게해주기 힘들다.
난민 소설은 더 쓰기힘들더 일단 한국에 난민이 별로없다. 그중에서도 탈북자들이 많고 탈북자는 한국인이다. 적어도 한민족이다. 어땠든 애네도 결국 주류 민족의 일원이다. 조선족도 있다 애네도 주류 민족의 일원이다. 미국처럼 동유럽계백인 영국계백인 으로 갈리기라도 했음 좋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러니 힘을 얻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분들이 한국에서 소설을 쓰지도 않는다. 그리고 공산주의를 비판해야하기때문에 서양이나 여기나 주목받기도 힘들다.
흑인 문학은 한국어를 잘하는데도 소설까지 쓰는 한국계 흑인 은 간달프다.
1. 나와 타인의 갈등이있다.
2. 나와 세상의 갈등이있다.
3. 나와 나의 갈등이있다.
이세가지가 성립하지않으면 어떤 소재로 글을 써도 의미가 없다. 실헌을 하던 뭘 하던 저 3가지가 기본이다. 예를 들어 실수로 어떤 가방에 들어가서 탈출하려고 하지만 탈출하지못하고 죽게된 사람이야기를 한다고 해보자. 가방에 대체 왜들어갔을까부터 시작해야한다.
이때 호기심이라고 말하면 필연적으로 나는 나를 욕해야한다. 하지만 나와 타인의 갈등을 나타낼수는 없다. 곧이어 부인,남편과의 갈등 상황이라도 보여줘야한다. 개같이 욕하면서 나가면 이혼한다 하다가 결국 그러지말걸 그랬어로 결말나는 식으로 전개하는 것도 좋고 끝까지 욕하고 증오 하다 끝나도 된다. 보통 후자를 추천한다.
나와 세상의 갈등은 결국 가방에서 탈출 하려고 하는 나와 열어주지않을 려는 가방과의 사투다. 나는 나가려고 하는데 가방은 못나가게 한다 . 그러다 죽는것이다. 나는 이렇게썼지만 다른사람들은 탈충해서 사는 이야기를 써도된다. 크게 상관은 없다.
Pc, 게이, 연대, 여성주의 흑인 등등의 소설들도 이세가지를 다가지고있으며 고민하지않아도 배운사람이라먄 이세가지를 능히 다만들어낼수가 있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이런 글을 쓰는 것이다. 물론 쉽다고 쓰는 건 아니다. 그것이 내소설의 주인공의 민족,국가,인종,성별 을 주요물로 내세울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갈등일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면 현대여성이 결혼을 한다고 치자.
그럼 필연적으로 임신에대한 문제 그리고 직장에대한 문제 , 남편 가족에 정착해야한다는 것에대한 문제, 정체성에대한 문제(뭐 개같이 어거지 써서 인정해드림. 내가볼때이건 더이상 딴남자새끼랑 섹스를 못하기되니까 오는 정체성적 충격이라고 생각한다.
임신이라도 하면 더 딴놈하고 섹스를 못하게된다. 그러니 산후 우울증과 연계가 크게된다. 애보는 게 힘들어서 다 산후우울증 걸리면 옛날 사람들은 다죽었다. ) 가 떠오른다. 이를 비평적으로 볼때 여성주의 소설이라고 부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떤내용이냐는 또 문제지만 보통 저렇게 다루면 여성주의 소설 비평을 받게된다. 거기다 주인공이 흑인, 아시아의 잡다한 민족들이라면 탈식민지주의니 뭐니 하는 비평까지 받게되어서 평가는 높게올라간다. 읽는 사람의 재미도 재미있다고 느끼게될 소재가 많다. 이국의 경치? 풍습에대한 묘사 그리고 나는 백인이라는것애서 오는 안도감과 그들을 구원해줘야한다는 사명감 죄책감 이국의 문화풍습에대한 손쉽게할수있는 분노들.
백인이 주인공이고 주요 테마라면 사실 그렇게 높게 평가받기가 힘들다. 백인이 백인에게 강간당한다? 걍 평범한 스릴러다. 대신 백인이 흑인에게 강간당했는데 그흑인은 백인여자의 경찰아빠가 한 인종 차별을 당해 감옥에 4년간 산 흑인이고 그복수로 그경찰의 딸을 강간했다. 이걸알게된 백인여자가 울면서 흑인에게 사과하고 어쩌고 한다 정도는 해야한다. 하지만 아니라면 그냥 그런 소설이되는 것이다.
이점이 한국에서 pc문학을 노잼으로 만드는 원리와 같다.
한국은 다민족 국가가아니기때문에 흑인도없고 아시아인도 없다. 우리는 아시아인이지만 한국에서 우리는 최강의 주류민족이다. 타민족 따위의 영향은 한국에서 존재하지를 않는다. 그래서 이주노동자 소설이나 겨우 나오는 것이다. 이것도 환률차이로 때돈을 벌어간다는 게 너무나 명백하고 다들 몇년일하다 돌아가기때문에 그렇게 반향을 끌지못한다. 정착한 사람이너무나 적다.
여성이 약자라고 항변할수 있겠지만 아프리카처럼 여성할례를 한다거나 여자라면 사창가에 팔려간다거나 군벌들에게 강간당한다거나 하는 상황은 없다. 거기다 주류민족이라 인종 차별도 당하지않는다.
한국 소설가들은 카페에모여서 커피를 열심히때리며 어떻게해야하나 고민을 때린다. 그러자 드는 생각 여자가 한국사회애서 얼마나 약자인지를 보여주자. 한국사회에서 여자가 흑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자 땅땅땅. 그래서 나온게 82년생 김지영이다....오바다 82년생 김지영은 총판 판본 버전 같은 것이고 그안의 요소들은 90년대 부터 혹은 70년대 부터 쓰여지기 시작했다.
시집살이와 일과가정양립에대한 커리어우먼에대한 문제들 명문대 나온여자들이 왜 살림이나 해야하고 자식성은 왜남편성만 물여줘야하고 추석 설에는 왜 남편집 에 먼저가야하고 일은 여자가 다하는지에대한 의문재기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부부양쪽이 일하는 비율은 1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절반에 도달했다. 거기다 양육에대한 문제도 양놈등 보다 수월한게 친정엄마가있다. 서양이라면 상상도못한다. 거기다 양육지원도 생각보다 빵빵하다. 전일제 유치원? 서양이라면 상상도못한다
한창 육아 정책이 나오고 일하면서 애키우 기 힘드니 나라가 도와줘라 부인성도 자식에게 물려줄수있어야 한다고 난리가 나던 00년대때는 고작 10프로에서 20프로 수준이었다. 참고로 미국이나 스웨겐 덴마크 노르웨이에서는 90년대에 이르면 고전적의미의 가정주부란 말은 대도시기준으로 꿈에서나 나오는 말이된다.
고로 한국에서 여성주의 소설을 쓰자면 작위적 설정을 많이 해야한다.
이는 판타지 소설을 쓰는 것과같다. 하지만 이러면 개별성만 획득하지 보편성은 획득하지못한다. 보편성을 획득하지못하는데 보편적인것 처럼 주장하게되면 반감이생기고 이는 소설에 이입하지못하게한다. 그과정에서 평가는 더욱더 떨어진다.
이것이 주류민족이 소설을 쓸때의 어려움이다.
한국 게이 소설의 문제점은 개별성에만 치중해 보편성을 가지기 힘들다. 보편적 공감을 딱딱 쳐줘아하는데 한국에서는 그 걸 만들기가 너무나 힘들다. 서양에서는 60년대까지 게이는 불법이라 진짜나라의 탄압을 받고 처벌을 받았다. 특히 영국놈들은 60년대까지도 유지를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러한 일이없었다.
미국은 에이지를 방치해서 게이들을 죽게만들었는데 그시절 한국에서는 게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고 에이즈는 뭔나라 이야기다. 거기다 에이즈 환자에게 엄청나게 지원을 해주고있다. 홍석천도 결국은 복권되었다. 거기다 홍석천이말하기를 한국게이들은 홍석천이 커밍아웃 한 덕분에 이미지망가졌다고 뒷담이나 했다고 한다. 연대 지들도 안한다는 소리다.
이러니 게이 소설 어디 쓰겠나. 그러니 커밍아웃시 가족 문제 게이였던 옛연인이 여자 혹은 남자랑 결혼하는등의 시시한 문제만 건드릴수밖에없다. 아. 동성 결혼 문제도 있는데 사실 결혼제도 폐지를 주장하는게 더 용기있는행동이고 동성결혼 합법화는 존나 보수적 태도라 높게 평가받기가 힘들다. 거기다 한국은 기독교 사회도 아니라 기독교 vs 동성애 구도도 쓰기힘들고 쓰면 작위적이게 보일뿐더러 공감도 크게해주기 힘들다.
난민 소설은 더 쓰기힘들더 일단 한국에 난민이 별로없다. 그중에서도 탈북자들이 많고 탈북자는 한국인이다. 적어도 한민족이다. 어땠든 애네도 결국 주류 민족의 일원이다. 조선족도 있다 애네도 주류 민족의 일원이다. 미국처럼 동유럽계백인 영국계백인 으로 갈리기라도 했음 좋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러니 힘을 얻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분들이 한국에서 소설을 쓰지도 않는다. 그리고 공산주의를 비판해야하기때문에 서양이나 여기나 주목받기도 힘들다.
흑인 문학은 한국어를 잘하는데도 소설까지 쓰는 한국계 흑인 은 간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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