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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책 자체는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재미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무언가 찝찝함이 소설을 다 읽은 후에 머릿속에 남아 계속 휘저어 대는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다. 아래 감상문은 어투가 좀 공격적이므로 읽을 때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좀 핵심적인 얘기를 하기 전에 자잘한 것들을 몇 개 얘기 하자면 우선 이 책은 초반이 너무 지루하다. 내가 좀 피곤한 상태에서 읽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정말이지 독서를 시작하고 읽은 책 중에 제일 지루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책의 판형은 크고, 글자는 작아서 페이지 당 활자 수가 많고 덕분에 페이지 하나를 넘어가는 게 고역이었다. 물론 이 점은 100페이지 정도 지나자 큰 의미가 없어졌다. 등장인물들이 다 파악이 되고 나니 술술 읽혔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좀 읽는데 애 먹은 점이 너무 서술이 많다는 것이다. 굳이 이런 것까지 얘기해야하나 싶은 내용들을 읽고 있자니 책을 덮고 싶은 기분이 계속해서 들었다. 물론 이 점이 독자들에게 생생한 장면을 보여준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럼에도 서술이 너무 많다.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자한 것이 아님에도 부인이 편두통에 뒤척이는 장면을 몇 페이지에 걸쳐서 봐야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그 부인은 별로 맘에 드는 캐릭터도 아니다.


우선 여기까지는 별 의미 없는 내용이다. 다음부터 말하는 내용이 책에 대한 내 느낌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만한 브리오니라는 여자는 정말 개같다. 정말 개같다. 이 책전에 읽은 <치인의 사랑>의 나오미보다도 더 역겹다. 에필로그 전 까지는 그나마 괜찮은 마음이 있었지만 다 읽고 난 이후에는 정말이지 내가 책에서 본 때리고 싶은 캐릭터 3위에는 들것이다. 그녀가 하는 행동을 생각하면 스릴러물에서 꼭 소리 지르지 말라고 해도 꽥꽥거리다 옆에 사람을 휘말리게 해 같이 죽는 무개념 캐릭터를 보는 기분이다.


책의 제목을 속죄가 아니라 변명이라 지어야 할 정도로 브리오니의 행동은 분노를 일으킨다. 어린 시절 저지른 죄는 어린아이의 경박한 행태로 넘어가 준다 해도 59년간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 그리 그렇게 거지같다면 대체 누가 분노치 않을 수 있을까? 그녀는 처음부터 입을 열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가 일으킨 개념 없는 행동은 게임 상에서 부모님 안부를 묻는 요새 초딩들과 동등한 혹은 더 악질인 행태로 비춰진다.


누군가는 브리오니의 ‘속죄’를 긍정적으로 여길 것이다. 이해는 한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죄를 세상에 드러냈고 끝까지 죄의식을 갖고 살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녀를 좋게 평가하지 못하겠다. 브리오니는 죄를 저질렀고 피해를 입은 두 사람은 각자 최악의 형태로 끝을 맞이했으면 행복한 삶을 산 그녀는 뇌내망상으로 해피엔딩이나 그리다 결국 자신의 죄도 잊어버린 채 평온하게 죽을 것이다. 심지어 진정한 범인은 갑부로 살다가 죽고 말이다. 이것이 속죄인가? 59년 동안의 속죄는 무겁지만 세실리아와 로비의 비극에 비해 턱없이 가볍다. 차라리 죄를 잊지 않은 상태로 마지막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이 쓴 원고를 앞에 두고 자살하는 엔딩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속죄일 것이다.


읽고 나서 기분이 더럽긴 하지만 책 자체는 재밌었다. 위에서 서술이 너무 많다고 깠지만 풍부한 묘사 덕분에 머릿속에 그림 그려지듯이 소설 내용이 다가오고 등장인물들의 개성도 확실하고 여러 복선들이 엮이면서 만들어내는 스토리도 주목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던 장면은 2~3부에 걸쳐 묘사되는 전시 상황인데 전쟁이 가져오는 비극의 생생함에 압도당하는 기분으로 읽었던 것 같다. 누군가 읽는 다면 말리지는 않을 책이다. 그러나 읽은 후의 찝찝함과 불쾌함은 각자 판단에 따라서 받아들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