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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붕이가 추천해 준 우메자키 하루오의 작품은 <낡은 집의 봄가을> <버섯의 독백>이었는데
도서관에 있는 게 '소설'전집이라 수필인 <버섯의 독백>은 없고
대신 내 맘대로 다른 작품 두개를 골라 읽었음
<사쿠라지마>
독붕이에게 우메자키 하루오를 추천받아 알아봤을 때 가장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작품
사쿠라지마가 내 버킷리스트에 있는 관광지이기도 하고
후쿠오카 출신 작가가 쓴 규슈의 랜드마크 사쿠라지마 소설?
이건 못참거든
근데 막상 읽고 나니 다른 방향으로 인상이 깊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걸 찾기가 어려운 소설은 아니었음
"이렇게 희생을 바쳐서 일본이라는 나라가 도대체 무엇을 이루어 내었는가"
(此のように犠牲をはらって、日本という国が一体何をなしとげたのだろう。)
"멸망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滅亡が、何で美しくあり得よう)
이 두 문장에서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대놓고 나오니까..
전쟁 말기에 규슈섬 맨 끝에 미군의 상륙을 대비하기 위해 파견된 화자 눈에 보이는 건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는 병사들, 의미 없게 죽어나가는 특공대(소위 가미카제), 무기력에 빠진 병사들과 괴리되어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군조장, 점점 최악에 빠지는 전황..
특히 마지막 부분, 옥음방송이 방송상태 불량으로 제대로 수신되지 못한 후에 군조장이 미군 상륙에 대비해야 한다며 병사들을 꾸짖는 장면에서 그 부조리함이 절정에 달한다
이 장면을 통해, 이 군조장 역시 전쟁의 무의미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눈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 이야기를 더 슬프게 만드는 느낌이었음..
전쟁 최전선에 서있는 이들의 정서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돌제에서>
일단 난 이 돌제(突堤)라는 말을 처음 들었는데
바닷가에 가면 볼 수 있는 이런 구조물을 돌제라고 한다더라
이 이야기는 태평양전쟁 초기, 전쟁에 다양한 이유로 징집되지 못한 이들이 모여 소일거리로 낚시를 하던 어느 부두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
작품은 이곳에서 낚시를 하는 '단골(常連)'들의 묘사가 중심이 된다
이 단골들은
주말에 가끔 낚시를 하러오는 일반인들을 경계하고 자기들 사이에 잘 끼워주지도 않고,
이곳이 아니면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을 곳이 없으니까 자기들끼리 다툼이 생겨도 유야무야 다툼을 무마시키면서 자신들의 유대감을 지켜 나감
또 마지막 장면, '히노마루 아저씨'가 경찰들에게 영문도 모른채 끌려가자 그에대한 언급을 끊어버리고,
아저씨가 놓고간 낚시도구 마저 파도에 쓸려내려갈 때까지 방치해 버리는 모습에서
소외되는 주변인들의 가녀림이 느껴졌다
마지막에 끌려가는 히노마루 아저씨가 낚시도구만은 돌제에 놓고가겠다 하는 모습에서는, 이 사람들의 유일한 보금자리에 대한 애착이 보였음
이 돌제라는 뭍과 바다 경계선의 끝에서, 전쟁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주변인들을 보여주며,
소외되는 약자들의 쓸쓸한 모습을 잔잔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낡은 집의 봄가을>
앞의 두 작품과는 다르게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의 작품
물론 내용은 그런 분위기와 정 반대였다
소시민인 주인공은 우연찮은 계기로 알게 된 후와(不破)의 집에 세들어 살기로 결정하는데
그 후와라는 사람이 알고보니 상습 사기꾼이라, 보증금을 갖고 날라버림
거기서 카츠로(勝呂)라는 사람과 만나는데
또 이 사람은 후와에게 집을 사기로 한 사람으로, 후와가 계약금만 받고 명의이전도 없이 날라버려서 붕 떠버림
갈 곳이 없어진 주인공과 카츠로는 어쩔 수 없이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피해자의 동병상련으로 의기투합한 그들이었지만 사소한 일들로 사이가 틀어져,
서로를 증오하는 마음에 서로 괴롭히면서 살아감
사실 얘네들은 후와가 야반도주한 후에도 다양한 이들에게 사기를 당하는 처지임
서로 협력을 해도 모자랄 판에 서로를 향해 방해만을 반복하니까 결국 나란히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거지
사실 착하지는 않지만 순진한 카츠로와 주인공을 보여주면서
(독자들이라면 이들이 사기를 당할 때마다 느껴지는 상대방의 사짜 냄새를 손쉽게 알아낼 수 있으니까)
카츠로가 했던 말처럼 "신도 부처도 없는가"하는 분위기가 될 수도 있는 내용이었지만,
둘이 투닥거리는 모습을 마치 시트콤처럼 그려 내어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남을 속이는 이들만 배를 불리는, 이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남겨 주더라
작품 중에 스쳐 지나가듯이 전쟁 직후 있었던 일본의 돗지 불황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나오고
사기의 주체가 되는 인물들이 지갑이 영수증으로 가득한 후와부터 시작해
타이완에서 이민 온 외국인, 압박에 시달리는 말단 세금징수원이라는 점에서
약자들이 서로 잡아먹게 하는 환경을 만든 건 결국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메자키 하루오 추천해준 독붕아 고마워!
덕분에 재밌는 작품 읽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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