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26a9c336eac02cb523ed86e74481736e87e9e137b23cd37c99723bd395b22b94a15c5a09cd323f63321ca30e88a68e91e2b3




숨 / 테드 창 / 엘리
읽은기간 8/8~8/16
평점 3.5/5



나는 초등학생때 SF 소설을 정말 좋아했다. 특히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과 해저2만리를 정말 좋아했던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어느순간부터 SF가 유치하게 느껴졌고, 다른 장르의 소설들을 더 자주 읽으며 SF와 거리가 멀어지게 됐다. 그러다가 SF를 다시 읽기 시작한건 군입대 이후였다. 군생활을 하다보면 현실에서 도피하는 상상을 종종 하는데 그러다보니 SF소설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그렇게 찾은 책이 바로 테드 창의 '숨'이다.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기에 호기심에 집어서 앞부분만 읽었는데 첫 단편인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의 매력에 빠져서 그대로 쭉 읽게 되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도 가장 재밌게 읽었던 단편이 바빌론의 탑 이었는데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도 비슷한 중동배경에 몽환적이며 흡입력있는 묘사가 닮아서 너무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전략은 지평선을 향해 걸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전진하고 있다는 환상을 주기는 하지만 목적지에 실제로 가까워지는 일은 결코 없다 -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229p'

그 다음으로 재미있었던 단편은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였다. 사실, 150p분량이어서 단편이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긴 소설이지만 흥미진진한 전개에 금방 읽을 수 있었다. 2022년 지금의 우리가 떠올리는 Ai는 인간을 쉽게 능가하고 효율적으로 최선의 일처리를 하는 존재일텐데 이 단편에 나온 Ai는 귀여운 동물모양의 디지언트라 불리는 존재다. 단편을 읽는 사람은 Ai와 인간사이의 정서적 유대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주여 어쩌면 당신은 제 기도를 듣지 않으시겠지요. 하지만 지금껏 기도를 드리며 그것이 당신의 행함에 영향을 끼치리라 기대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영향을 끼치고 싶었던 것은 저 자신의 행함입니다. 그래서 두 달만에 처음으로 이렇게 기도를 올립니다. 설령 당신이 이 기도를 듣지 않는다고 해도 저에게는 이 기도가 가져다주는 사고의 명확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 옴팔로스 388p'

가장 재미있고,몰입해서 읽은건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이지만 가장 읽고나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된 단편은 옴팔로스이다. 나는 무교이지만 어릴때부터 주변의 많은 기독교인들의 영향을 받으며 신의 존재에 대해 토론하기도 하고 고민하기도 하며 자랐다. 옴팔로스는 내가 궁금했고, 내가 생각하던 부분들을 그대로 소설화한 책이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세계적 흐름과 달리 장로회가 주된 종파이고 이들 대다수는 시대착오적 성서무오론에 빠져있다. 이들은 과학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과학을 부정하거나 왜곡한다. 옴팔로스의 주인공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지만 성서무오론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과학적 증거들을 발견하고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해온 기도라는 행위가 신을 위함이 아닌 자기위로적 행위였음을 시인한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옴팔로스만큼은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주인공처럼 생각에 잠길 수 있겠지만 어쩌면 자신의 신앙을 더 확고히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테드 창의 '숨'은 info-dump(설명 축약적) 하드 SF소설이다. 실존하지 않거나, 복잡한 과학적용어들에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그런갑다하고 넘겨 읽으며 책의 주된 철학적 주제에 집중하여 읽으면 '숨'의 매력에 흠뿍 빠질 수 있을 것이다.

SF와 철학(자유의지)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