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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하면 가장 먼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첫 번째 그림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군국주의이다. 프로이센의 군대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과 7년 전쟁을 시작으로 나폴레옹 전쟁,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제1차 세계대전 등을 거쳐 유럽인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특히 기계처럼 명령에 즉각적으로 움직이는 병사들과 효율의 극대화로 전선을 지휘하는 장교진, 그리고 영토 확장은 프로이센의 이미지를 더 군국주의 방향으로 각인시켰다.
그러나 이런 '프로이센 정신'은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20세기에 사람들은 유난히 프로이센의 그런 점만을 부각시켰다. 나치는 전체주의를 위해 그러했고 서방 세계는 프로이센에 대한 반감과 멸시 때문에 그러했다. 우리가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해보면 프로이센은 결코 그런 면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단히 몇 가지만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17세기: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프로이센 왕국의 전신)은 제대로 된 군대도 없이 오스트리아, 스웨덴, 프랑스에 휘둘리던 약소국이었다. 비록 이 시기 대선제후로 칭송받는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활동하긴 했으나 그 처량한 신세를 면하지는 못 했다.
18세기: 프로이센 왕국은 타국보다 검열이나 종교탄압이 약했으며 화려한 궁정 문화와 학문 연구, 토론 문화가 꽃 피웠고 '계몽 군주' 프리드리히 대왕과 철학자 칸트가 등장했다.
19세기 전반기: 나폴레옹 전쟁 이후 보수-반동적인 분위기에서도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및 그 외 다양한 사상이 나타났고 정치적 운동이 활발했다(헤겔과 마르크스는 프로이센 출신이다). 또한 슈타인과 하르덴베르크 같은 계몽주의 정치인들은 봉건적인 제도를 타파하고 근대적인 제도를 도입하고자 했다.
19세기 후반기: 1848년 혁명 이후 보수 온건파와 자유주의 우파가 연합해 정국을 주도하는 가운데 비스마르크가 수상으로 임명됐다. 그는 특별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고 자신의 목표에 적절한 것이라면 어느 정파의 정책이든 채용했다. 대표적으로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던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한 것, 보수-반동주의자들이 원하던 것처럼 의회를 계속 무시하고 가톨릭을 탄압한 것(실제로는 별 효과가 없었다), 독일 통일에 민족주의를 활용한 것('프로이센' 민족주의가 아니라 '독일' 민족주의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등이 있다. 한편 그는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와의 전쟁을 주도한 정치인이자 군복 차림으로 기억되지만 역설적으로 군대와 전쟁을 지독히 싫어했다.
20세기 전반기: 독일 지역은 역사적으로 지방의 정치적 힘이 강했다. 이는 프로이센도 마찬가지였는데 당시 독일 영토와 인구의 60% 이상은 프로이센 주(州)에 속했다. 제정 붕괴 이후 새로 들어선 바이마르 공화국은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했지만 프로이센 주 정부는 온건 좌파인 사회민주당이 계속 집권해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1933년 나치와 보수 정치인들의 야합으로 히틀러가 수상에 임명되면서 독일 전체가 전체주의 사회로 변하기 시작했다.
위 사례들을 포함해 역사적으로 보면 프로이센이 특별히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서 군대가 사회를 잠식할 정도로 비대했다고 주장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18세기 프로이센이 다른 국가보다 징병률이 높은 것도 아니었고(군인의 1/3은 외국인이었다), 19세기 본격적인 징병제가 실시되면서 동네마다 군인 모임이 생기긴 했지만 이는 다른 유럽 국가도 마찬가지였으며 그 수도 유난히 많은 것이 아니었다. 군주나 관료들이 군복을 입는 것도 그 시기 유럽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프로이센의 군국주의 신화는 어디에서 유래했는가?
저자는 군부가 의회에 의해 지배받은 적이 결코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프로이센군은 프로이센 왕의 군대였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승리한 1871년 이후 독일 제국이 들어섰을 때에도 그 강력한 프로이센군은 제국의 여러 군주들 가운데 '독일 황제 겸 프로이센 왕'의 군대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상황은 꼬인다. 전쟁 말기에 이르자 황제 빌헬름 2세와 수상 베트만홀베크는 군부를 지도할 능력이 없음이 드러났고 오히려 힌덴부르크 장군과 루덴도르프 장군이 주도권을 잡는다.
전후 군부는 공화정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1928년 군 최고 지도자인 한스 폰 제크트 장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은 국가의 존립에서 상당한 지분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흔히 알려져 있다시피 군부 내에는 엘베강 동쪽의 귀족 지주 계층인 융커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보수적인 융커들의 세계관은 저자에 의하면 2개이다. 하나는 "시골 귀족의 프로테스탄트적인 프로이센"이고 다른 하나는 "비인격적이고 초역사적인 변화의 도구로서" 국가이자 "귀족의 자의적이고 개인화된 정권을 대신하여 점점 합리적인 질서를 전개하면서 융성"하는 국가이다. 이는 매우 헤겔적으로 들리나 사실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 시절 푸펜도르프의 논문,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의 슈타인과 하르덴베르크 시대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제정 붕괴로 군주가 사라지면서 전자의 세계는 무너졌지만 후자의 세계는 남게 됐다. 나는 제크트 장군의 말이 은연중에 나타내는 것처럼 융커들은 자신들이 후자의 세계를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마침 통수권자이자 대통령은 융커 출신이자 대전쟁의 '영웅(영웅 아님)'인 힌덴부르크였다. 힌덴부르크와 파펜, 슐라이허 등의 보수파는 나치와 히틀러의 인기를 이용하여 이득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실패했다. 이후 '융커 계층이 나치에 협력했는가, 아닌가'는 아직 연구가 미진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로 정반대인 사례들을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군부는 대체로 나치에 협력했고 나치는 프로이센의 군사적 면모만 과장해 홍보에 이용했으며 이는 독일인은 물론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상이 아마도 사람들로 하여금 프로이센을 군국주의 국가로 생각하게 만든 원인일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프로이센 정신'은 지극히 위험한 것으로 치부되어 나치가 패망한 다음 연합국에 의해 철저히 지워지는 작업에 들어간다. 본 책의 훌륭한 점은 '프로이센 정신'이란 낡은 틀에서 벗어나 프로이센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조망한 것이다. 저자가 주장한 '프로이센 정신'의 말로를 인용하면서 글을 마친다.
'프로이센 정신'은 너무도 추상적이고 너무도 빛이 바랜, 그리하여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변했다. 그것은 이제 정체성도 아니고 기억의 대상도 아니다. 이제 그것은 구체성을 상실한 신화적 속성들의 목록일 뿐이었다. 그 역사적이고 윤리적 의미는 논쟁거리로 남았다. (p. 890)
글 퀄리티가 상당하네요 ㄷㄷ 매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