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2페이지만 30분째 보고있는데 이해가 안되네요
그래서 사르트르는 의식(대자)의 불완전성을 말하고 싶은 건가요?
실존은 본질이 앞선다는데 의식은 대자니까 실존일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요
사르트르가 말하고 싶은 바를 이해할 수가 없는 제 하찮은 지능이 너무 한스럽습니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의식(대자)의 불완전성을 말하고 싶은 건가요?
실존은 본질이 앞선다는데 의식은 대자니까 실존일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요
사르트르가 말하고 싶은 바를 이해할 수가 없는 제 하찮은 지능이 너무 한스럽습니다
즉자=인간을 제외한 모든 사물, 대자=인간.으로 환원해서 생각해봐. 그리고 대자의 불완전에서 불안이라는 개념이 나옴. 대자는 무이기 때문에 본질이 없어서 실존하는거
반대아닌가요? 무이면 실존일 수가 없잖아요. 이 전 페이지에서 비유로 칼을 들었는데 물건을 자른다라는 본질은 인간에 의해서 부여받았지만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기 때문에 본질은 없고 실존만 있다하더라고요. 같은 맥락에서 의식(대자)은 무이기때문에 실존만 하지 본질은 결핍된 거 아닌가요?
의식은 항상 무언가를 의식하고 있어야 함(후설 지향성 개념. 사르트르가 현상학 영향을 받았으니까) -> 따라서 의식의 상태는 1. 의식 자신을 의식 2. 의식이 아닌 다른 존재를 의식. -> 이때 의식 자체는 존재가 아니고 '무'임. -> 의식이 아닌 다른 존재를 의식은 즉자존재로서 의식. -> 사르트르는 의식과 신체를 분리함. 의식은 대자, 신체는 즉자(이를 메를로퐁티가 비판). -> 그렇다면 의식이 다른 의식을 의식하면? 이때 의식된 의식은 대자도 즉자도 아닌 대타존재로서 존재함.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실존(인간)의 의식은 무라서 정해진 본질이 없음 -> 미래로 기투하면서 자신의 본질을 끊임없이 만들어감(수정해감)
즉 자신의 의식에 따라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부분이 결단주의라며 비판받음
위에서 이어지는 건데 따라서 의식이 둘 이상 존재하고 서로를 의식하면 모두가 대자존재로서 있을 수는 없음 -> 타인은 지옥이다
오호 그럼 결국 사르트르형님은.. 본질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대자존재로서의 인간을 지향하고자 한 것인가요
살짝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인정이 생각나는 부분이네요
ㅇㅇ 둘 다 맞음 그 당시 프랑스에서 주인과 노예 변증법에 기초한 헤겔 해석이 유행함
답변 감사합니다
하이데거 대충보면 이해 하기 좋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