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온 통신사는 학문적인 것을 주장하기 때문에 상당히 재주가 있는 사람을 뽑아서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행차 정에 먹는 각 객사에서 유학자들이 시문을 증답하고 필담하는 일이 많다. 우리나라의 많은 유학자 중에서 학문 수준이 낮은 자도 있고, 별로 신통찮은 자도 간혹 있어 딱한 노릇이다. 그들은 그렇다 치고 교토, 도쿄, 오사카 등의 대도시에서는 평민들까지도 기회만 닿으면 객사에 들어가 증답하지만, 관에서 금지하지 않으므로 신중하지 못한 무리들이 앞을 다투어 찾아가기 때문에, 객사에 사람이 붐벼 시장바닥처럼 되었다. 그들은 엉성한 문장과 조악한 시를 가지고 사신들을 접촉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완전한 초보자이들이 백일 전부터 시 한 수를 지어 꺼내 보인 뒤 화답시를 한 수를 얻어서 평생의 영광으로 여기며 남에게 자랑하기도 하니, 가소로운 일이다. 이러한 지경이 되고 보니, 조선 통신사들은 사람달을 멸시하여 수십 편의 시랄 앞에 쌓아놓고 붓 가는 대로 그 화답시를 쓰는데, 그중에는 음률이 틀린 것도 있고 운자가 틀린 것도 있다. 때로는 먹물이 튀어 더럽혀진 채로 팽개치듯 던져주는 것을 무릎걸음으로 엉금엉금 기어가서 그것을 줍고는 가슴 속에 품고 물러나는 광경이 벌어지는 등 보기에 딱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또 그들이 화답 시를 쓸 때는 문진 대신 무릎을 앞으로 내밀어 발꾸치로 종이를 누르는 등 어지럽기 짝이 없는데도, 감사하게 그 글씨를 받들고 있으니 일본의 큰 수치라 아니할 수 없다.
책 '한국의 위기와 선택'에서 발췌
일부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기괴한 마인드를 이해하려면
이런 뒷배경을 알아야함
자국사를 돌아보면 이런게 고대부터 근대 이전까지 자꾸 나오니까
기분 드러워서 더 히스테리부리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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