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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논문은 이화여대 철학과의 2008년 박사논문이다.


서론에서는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해 마테오 리치를 비롯한 예수회 선교사들이 유교적 변용을 통해 이를 중국 지식인들에게 이해시키고 중국 전도를 위한 초석으로 삼고자 하며, 이를 중국과 조선 지식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저자는 이 같은 중국과 조선 지식인들의 수용 방식을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의 유교적 변용에 대응한 유교적 유신론이라 칭한다. (6) 이어서 그동안의 연구사를 정리하며 (10~12) 논문의 구성을 설명하고 있다.

 

2부는 예수회의 중국 전교 방식과 해외 문화의 이해를 중심으로 교리서의 집필에 대한 내용이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신학 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 뛰어났고, 따라서 중국의 지식인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31~33) 또한 명 말의 이지 초횡 등의 등장으로 여러 논의가 이루어지던 때였다. (37~ 41)

마테오 리치는 기존의 교리서적 성격의 천주실록보다 이성의 빛을 강조하고 천주교 자체를 설명하는 천주실의를 저술하였다. 천주실의는 이성적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리치가 고대 유학과 불교, 신유학 이론들에 대한 대응과 변용은 중국인과 조선인에게 디르면서도 같은학문 체계를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다고 저자는 평한다. (56~57)

결국 천주실의는 천주교에 대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나, 실제로 개종자는 많지 않았다. 예수회의 선교 방식은 대중적이기보다는 학문적이고, 실존적이기보다는 객관적이며, 신학적이며, 철학적이라고 평가받는다. (61)

리치는 중국 전교를 위해 자기 전통과 중국 전통 양자를 통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담론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신유학을 배제하고자 하는 전략이 결합하게 되면, 이성과 논리를 강조하게 되는 사변적 풍토가 버다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61~62)

 

3부는 리치가 기독교적 세계관을 어떻게 유교적으로 변용시켰는지에 관한 내용이다. 리치는 중국인들의 천() 사상을 이용하여 천주라는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냈다. 물론 천주라는 용어가 중국인들에게 새롭게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높고, 유대, 기독교적 의미의 신 개념을 이식하기 위해 만든 신조어인 만큼 오랜 세월 형성된 그들의 필터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67) 그래서 예수회원들은 유일한 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중국의 정치 상황을 비유적으로 묘사해 유일한 주재자가 존재함을 각인시켰다. (68)

마테오 리치는 고대 유학 경전에서 상제라는 개념을 찾아 기독교의 신 개념과 대응하여 설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신유학자들은 우주적 원리의 인격적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천리의 다양성 중 하나로 보았다. (71~72) 저자는 리치가 상제라는 표현을 기독교적 신을 대응하는 표현으로 쓴 것에 대담하다고 평가한다. 상제는 만물의 형이상학적 근원에 일반적이고 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중국 전통 내에서 확고부동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고유한 존재에 대한 전통적 명칭이기 때문이다. (73) 그라나 많은 중국인들이 이를 유대, 기독교적 신이 아니라 중국적 맥락에서 상제의 의미, 즉 우주 만물의 생명과 질서에 관계되는 모종의 힘으로 이해했단 것이다. (75)

결국 이는 중국과 조선 유학자들의 인식을 불러왔는데, 이는 보편적 존재인 하늘을 섬긴다고 해도 그 동기가 어디 있는지에 따라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였다. 대부분의 유학자들은 공()과 사()의 기준을 통해 유학과 천주교를 구분하고 이를 천주교 배척의 논거로 삼았다. (78~79) 물론 이치조나 양정균처럼 유교적 천주교의 유교적 변용에 호의적인 경우도 있었지만, 안정복은 이를 비판하였다.

또한 예수회 선교사들은 신학대전의 신 존재 증명을 중국인들에게 소개하고자 하였고, 이는 천주실록에서부터 보였다. (88~89)

 

다음 장은 이러한 유교적 변용에 관한 성리학과의 충돌을 다루고 있다. 리치가 기반을 두었던 스콜라 철학은 창조자의 존재와 목적론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는 당시 성리학의 태극 개념과 이기론에 부합하지 않았고 따라서 마테오 리치는 이러한 성리학적 개념들에 대한 반박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리치를 비롯한 예수회원들은 신유학의 태극을 단순 질료로 파악했으며, 천주실의에서는 성리학의 개념에 대해 반박하기도 했다. (151~153) 동시에 신유학의 만물일체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대응으로 인하여 (154) 예수회의 선교 활동은 유학 및 신유학과 긴장 관계를 형성하면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165)

 

다음 장에서는 스콜라적 영혼론의 중국적 전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중국인에게 기독교적 세계관을 이해시키기 위해 영혼이라는 용어를 활용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로마 세계관과 달리 중국인들은 혼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혼과 백이 기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하였다. 따라서 예수회는 영혼 개념을 선교를 위해 반드시 인식시켜야 했다. (175~176)

처음 예수회가 선택한 용어는 영혼이 아닌 혼령이었다. 천주실록에서 등장한다. 예수회는 이를 영혼으로 고치고 영혼 개념을 중국인에게 이해시켜야 했다. 저자는 천주실의에서 영혼에 대하여 인간의 본성은 유형과 무형을 모두 겸하고 있고, 영혼은 정신적인 것이다.’ 라고 설명했다고 설명한다. (195) 두 번째로 영혼 불멸을 설명하기 위해 제사를 이용하고 있다. (196) 또한 리치는 신유학과 다르게 리와 인성을 구분한다.

영혼 개념의 설명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영언여작은 대표적인 여혼론에 관한 한역서학서로 책 전체에 영혼이라는 용어보다 아니마라는 음역어가 사용되고 있다. (207) 또한 영언여작에서는 중국 철학에 매개한 용어보다 음역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영언여작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을 기반으로 한 중세 심리 철학의 중국판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대해 학적 대상으로서의 영혼이라는 존재를 각인시켰을지 몰라도 신앙이나 구원이라는 내향적이며 은밀한 자기반성과 수양의 과정을 인식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216)

이어서 알레니의 저서인 성학추술에서도 드러난다. 알레니는 전략적으로 신유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성()을 인간의 본질 정도로 해석하면서 영혼을 대체하고자 했다. (217) 알레니는 이니마라는 용어 대신 인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조물주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218)

그러나 이러한 영혼론은 조선과 중국의 유학자들에게 있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신후담과 황정 등은 영혼론에 대해 신랄히 신랄히 비판하였다. (247~248) 결국 선교사들의 기독교적 담론의 유학적 변용은 중국 담론과의 대화를 통해 운신의 폭을 넓혔으나, 동시에 수용자에 따른 재해석이라는 한계를 낳기도 했다. 일부 유학자들은 유학의 밖을 나가지 않으면서도 당시 사회의 각질화된 주류 학문의 한계를 논파할 가능성으로 예규회원들의 논리에 반응했다. (251쪽 참고)

 

다음 장에서는 유교적 유신론의 대응에 대해 논한다. 리치를 비롯한 예수회 선교사들은 살펴본 것처럼 중국 선교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중국인에게 천주교 신앙은 제대로 전파되지 못했다. 특히 서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던 서광계와 이치조 등은 유학자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천주교에 귀의한 것이 아니라 유학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서교를 받아들인. 도날드 베이커의 정의를 따르자면 천주교를 받아들인 중국과 조선의 유학자들은 유교적 유신론자였던 것이다. (270~271)

 

그리고 저자는 정약용의 천주교에 대한 인식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정약용의 서학 인식에 대한 기존 연구를 비판한 후 (273~275) 정약용의 천주교 인식을 유교적 유신론혹은 유신론적 유교라고 정의한다. (276) 저자는 정약용이 천주실의에 접근한 이유에 대해 철학 속에서 초월자의 신앙을 찾음으로써 세계를 구원하고 신앙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주자학의 신앙을 신앙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저자는 논한다.결국 이는 정약용에게 있어 마음에 대한 문제로 귀결되었다. (275~280)

 

정약용은 예수회 선교사들의 욕구 의지-자유 의지 이론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 상제관을 표출하먀, 신유학에서 강조했던 저기 안의 완전성 대신 초월적 신에 대한 신앙이 강조되지만, 정약용이 신유학을 버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289~296쪽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