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번역이 다 그렇겠지만, 그래도 내가 제일 많이 읽고 쓰는 인문학의 분야의 경우에
번역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충실한 번역'과 '잘 읽히는 번역'중 무엇을 추천해야하는가?
영어, 독어는 대조가 가능하지만 대조하면서 읽은 책이 손에 꼽기 때문에 사실 '충실한 번역'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도 명확하지는 않기 때문에,
번역자의 권위와 평판을 근거로 하여 대충 이정도 되는 사람이면 '충실하겠구나' 하고 넘어가는데,
반면 '잘 읽히는 번역'의 경우는 대중적인 호평에 불구하고, 원문과 문장이 상당히 다른 경우가 많음.
원문과의 정합성과 의미의 전달 중 선택해야 하는 문제인데,
원문의 정합성을 우선시 둘 경우 원문의 비문 또한 비문으로 번역해야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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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로자 블로그에서 퍼옴
일본은 개항 이후 외국에서 문물을 일방적으로 수입하면서 원문 중심주의와 딱딱한 직역투를 용인했지만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들어 일본 경제가 확실히 도약하고 자국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자신감이 커지면서 번역자, 출판사, 독자가 모두 원문에 충실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일본어로 가독성을 높이는 번역을 선호하는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느 것이 번역문이고 어느 것이 창작문인지 일반이이 구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가 되었습니다."란 지적은 음미해볼 만하다. 직역/의역의 문제가 경제적/문화적 자신감과 연동돼 있다는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아직도 '어륀지' 사대주의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우리의 처지를 보라!). 한갓 취향이나 이론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로 저자가 들고 있는 것은 일본의 <정신현상학> 번역이다. 1998년에 어려운 단어를 거의 쓰지 않고 쉬운 말로만 번역한 하세가와 히로시의 번역본이 나오자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네 사정이 달라진 건 또 아니다. 해서 "난해하기로 소문한 헤겔의 저서를 (...) 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유려하고 명쾌한 일본어로 번역하여 일본 독자들에게 충격과 감격을 주었"다는 건 여전히 남의 나라 얘기다. 때문에 드는 생각은 <헤겔 사전>(도서출판b, 2009)이 그렇듯이 자체적인 역량으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한국어본 <정신현상학>을 기다리기보다는 하세가와의 일역본을 중역하는 게 더 낫지/빠르지 않을까 싶다.
일역본을 다시 우리말로 옮긴 것이지만 하세가와의 솜씨를 감상해보면, 그는 "자연적 의식은 자신이 지(知)의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서 실재적 지는 아니라는 사실을 자증(自證)할 것이다."란 옛날 번역을 "자연 그대로의 의식은, 지(知)는 이런 것이라고 머리에 떠올릴 뿐이지, 실제로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옮겼다. 또 "즉자적이며 대자적으로"란 표현은 "완결무결한 모습으로"라고 옮겼다. 명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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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정신> 에 대한 번역서 추천이 있어서
현대지성에서 나온 박문재 번역을 훑어봤는데, 어쨌거나 소위 말해 '읽히는' 번역이기도 하고, 사실상 의역에 가까운 면이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교양수준에서라면 (다소 원문과의 정합성이 많이 떨어지더라도) 좋은 번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읽는 목적에 따라 '좋음'의 기준이 다를 수 밖에 없음.
그건 허울좋은 말에 불과하고, 번역을 하는 입장에서도, 추천해주는 입장에서도 정합성과 가독성은 선결되야하는 문제라는거임
가독성 위주인지 직역 위주인지 표기해줬으면 하는데 어렵겠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