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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도 밝혔지만 필자는 SF에 그리 관심이 많지 않은 편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종종 봤지만 그것도 이미 한번 걸러진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들뿐이었고

순전한 공상과학적 상상력, 소재에 매료돼서 본 건 아니었다.

SF '소설'은 아예 읽어본 적 자체가 없다.

<미키7>도 순전히 영화적인 관심(봉준호의 영화화)에서 읽은 것이다. 뒷면에 써진 시놉시스가 좀 꼴리기도 했고


소설의 앞부분, 설정을 조금만 설명하자면

배경은 대충 30세기 언저리의 미래

주인공 미키 반스는 도박 빚에서 도망치기 위해 니플하임이라는 신 개척지 탐사 임무에 지원한다.

키 160 따리에 역사를 조금 아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처참한 스펙이었기에

'익스펜더블'이라는, 정상인이라면 절대 지원하지 않을 보직에 지원하게 된다.

'익스펜더블'은 지원자의 신체를 컴퓨터에 업로드 시켜놓고 죽을 때마다 다시 찍어내는 

말 그대로 소모품 인간으로써, 해당 인원은 반드시 죽기 직전마다 개체의 기억을 업로드 해놔야한다.

소설은 7번째 미키, 미키7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도입부, 미키7은 아주 깊은 얼음 구덩이에 빠진 채 버려져 분명 죽었어야 했고, 동료들은 죽었다고 보고했지만

기이한 우연으로 죽지 않은 채 기지로 돌아와 자신의 침대에 앉아있는 미키8을 보게 된다.

하나 이상의 '익스펜더블'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인간 사회의 절대 금기로 여겨지고,

이를 매우 탐탁치 않게 여기는 사령관 아래서 두 사람은 위험천만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분명 두 명의 미키가 어떻게든 윗선의 눈길을 피해가며 목숨을 이어가려는,

촌각을 다투는 눈치게임이 이어질 거라고 기대하겠지만, 정작 400 페이지 가량 되는 이 소설에서 300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두 익스펜더블의 존재는 어떤 유의미한 갈등도 일으키지 않는다.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실망스러운 점이다.


소설의 대부분은 이전의 미키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인류의 외행성 개척 사업은 어떻게 시작됐고 전개되었는지를 설명하는데 할애된다.

<미키7>에서 실제로 전개되는 시간은 사흘 남짓인데, 작중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스케일은

미키가 계속해서 되짚어보는 가상 세계의 역사에 비하면 너무 하잘 것 없는 크기로 진행된다.


정작 미키 본인의 이야기는 누군가 사고를 침 - 사무실에 불려감 - 징계 - 누군가 사고를 침이라는 같은 루틴의 반복이다.

후반부에 반전이 있긴 하지만, 빈약한 복선과 파편적인 전개 때문에 그마저도 그닥 효과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테세우스의 배'를 필두로 내세운 관념들을 계속 언급하며

죽었다 살아나는 미키는 모두 같은 인간인지, 혹은 독립된 개체들인지,

정말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불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엇인지- 하는

실존적 물음들을 대입시키려고 하지만 정작 이에 답하기도 전에 이야기는 성급히 끝나버린다.


써놓고 보니 너무 나쁜 이야기들만 늘어놓은 것 같다.

'그래서 <미키7>이 재미가 없다는 거냐'라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고 답할 것 같다.

역사 이야기는 조금 줄이고, 주인공의 서사에 살을 붙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먼 미래 복제인간이 읊어주는 베드타임 스토리라고 생각하면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꽤 흥미롭게 들리기도 한다.

복잡한 설정딸이나 뇌절도 없고 글도 읽기 쉽게 써놨기 때문에...


요컨대 미래 개척지 노동자의 수기를 원한다면 나쁘지 않을 것이고,

외계 생명체와의 긴박한 총격전(있기는 함), 고도의 수 싸움(있었어야 함) 따위를 원한다면 아마 기대에 못 미칠 것이다.


듣기로는 봉준호도 <미키7>의 초고를 보고 판권을 구매했다고 하는데, 아마 전체적인 이야기보다는

'얼어붙은 땅 위의 두 명의 복제인간'이라는 독특한 설정에 관심을 뒀던 게 아닐까 싶다.

필자가 책을 덮은 후에 든 생각도 '재밌다'보다는 '어떻게 각색할 지 궁금하다'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