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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아쿠타가와 상 수상 작품 타카세 준코(高瀬準子)의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도록(おいしいごはんが食べられますように)>

어느 나라의 젊작상과는 다르게 항상 믿고 보는 상이기에 아무 조사 없이 일단 페이지를 펼쳤다.

타카세 준코라는 이 여성작가는 정말 멋있는 사람인데,

10년동안 회사에 다니며 낮에는 회삿일, 밤에는 소설을 쓰다가 2019년, 서른 한살의 나이로 스바루 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작가더라.

결혼도 한 사람이니 가정생활까지 같이 했을텐데 대단하는 생각만 든다.

일단 이 책을 갓 다 읽은 지금 드는 생각은

대학을 졸업하고 OL로서 사회생활을 경험한 저자가,

사회 생활을 하는 누구나 생각을 하지만,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불편한 진실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써낸 책이라는 생각.

이야기는 아시카와(芦川)를 바라보는 두 명의 회사 동료, 니타니(二谷)와 오시오(押尾)의 시선이 중심이 된다.

이 아시카와라는 여성은, 작품 내내 약자임이 강조되는 여성으로 일도 잘 못하고 몸도 약해 툭하면 조기퇴근을 하는 탓에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다.

그녀가 전 직장에서 괴롭힘(ハラスメント)을 당하고 인사이동을 한 탓에, 상사인 후지(藤) 등은 그녀를 배려하기만 한다.

사실, 이 배려는 단순히 약자를 위한 배려인 것이 아니고 아시카와가 귀엽고 젊은 여성이라는 것도 원인이 된다.

이를 보여주듯, 후지는 작품 내내 그녀를 향한 음흉한 말과 행동을 보인다.

아시카와가 하지 못하는 일은 동기인 여성직원 오시오에게 모두 맡겨지고, 당연하게도 아시카와에게 은근한 불만을 품는다.

니타니는 인사이동 후 아시카와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받지만, 무능한 그녀를 경멸하면서도 '귀엽다'고 생각하게 된다.

할머니의 '증손주를 보고 싶다'라는 말이 머릿 속에 떠오른 니타니는, 아시카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자연스레 연인관계가 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음식', '먹는다는 행위' 또한 계속해서 서술의 중심이 된다.

이 음식 또는 먹는 행위에 대한 생각(태도?)가 아시카와+나이든 직원/오시오+니타니로 극명하게 갈린다.

전자의 그룹은 다른 이들과 같이 먹는 것,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중시하고, 후자는 먹는 것을 성가신 일로 여기면서, 건강한 음식, 음식에 대한 윤리관에 반감을 품는다.

여기서부터는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다.

나는 이 '먹는 행위'가 꼭 사회에서 보편적인 가치관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현대사회가 알고리즘의 발달로 로우 컨텍스트의 사회가 되고 있다고들 하지만, 사회적인 맥락은 분명히 남아 있으니까.

후지, 지점장, 하라다(原田) 등의 나이든 직원들은 관습의 혜택을 제대로 받고 있는 전형적인 기득권이다.

분위기의 힘으로, 부하들이 항상 자신들에게 맞춰주길 바라는 그런 이들이다.

아시카와는 이런 기득권에 편승한 약자이다.

항상 모든 일에 '나는 약하니까 못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자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로 어떻게든 기득권에 편승하려고 노력한다.

일은 전혀 하지 못하면서, 회식에 항상 따라다니며 상사들의 비위를 맞춰주고, 집에서 손수 간식을 만들어 와 오후 시간에 동료 직원들에게 제공한다.

(그 간식 마저도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완벽히 만들 수 있는 것만 가져오는 점에서, 그녀의 속성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이러한 행동들을 통해 나이든 직원들에게 '젊고 가녀린 귀여운 여성'으로서 충분한 비호를 받는다.

이런 아시카와에 대해, 니타니는 모순적인 감정을 품는다.

그는 그녀의 입버릇인 '건강한 식사'와 날마다 해오는 간식, 약하다는 이유로 일에서 열외되는 것 등을 경멸한다.

그러면서도 그녀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품어 의도적으로 접근한 후, 연인관계가 된다.

나는 아무리 봐도 이 인물이 그저 감탄고토하는, 기득권 예비군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인물의 먹는 것에 대한 가치관만 봐도, "먹는다는 행위가 혐오스럽다"에서, "먹는 것에 대한 감상을 내리는 것이 귀찮다"가 되었다가 "먹는 사람의 얼굴을 생각하며 만든 음식이 싫다"까지 계속해서 변화한다.

인수인계를 맡은 아시카와가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한심하게 생각하면서도, "귀엽다"라는 감정을 느끼며 애정을 품고,

그녀가 손수 만든 간식을 짓밟으며 희열을 느끼면서도, 그 누명을 오시오가 썼을 때 끝까지 부인한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 니타니의 이직 송별회때 이 이중적인 모습은 정점을 찍는다.

송별회를 위해 아시카와가 손수 만든 케잌에 혐오를 품으면서, 평소에 그렇게 싫어하던 요리를 결혼 후에 매일 만들겠다는 아시카와의 말을 들으면서 하는 생각이

"행복해 보이는 그 얼굴은, 무자비하게 귀엽다.(幸福そうなその顔は、容赦なくかわいい。)"

라니..

이런 니타니와 반대되는 인물이 오시오이다.

오시오는 아시카와에게 불만을 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만일 뿐 니타니와 같은 혐오나 경멸을 품지는 않는다.

그저 그녀는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지만, 그런 사람만 있으면 회사가 돌아가질 않으니까. 그러면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거고, 할수 있는 사람만 하게 되고.(できない人がいて、でも誰かがしなきゃ会社はまわらないし。そしたらできる人がするし、できる人ばっかりする。)"

라고 말할 뿐이다.

작고 가녀린 한 명의 여성이라는 묘사가 꾸준히 나오는 점에서, 작가는 오시오 역시 약자에 속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시카와와 다른 점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선을 긋지 않는다는 것.

둘이 외근길에 큰 구덩이에 빠진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을 때, 아시카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남자'를 데려오자고 하는 한편, 오시오는 비를 맞아가며 고양이를 구해내는 장면은, 이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오시오라는 인물이 아시카와와 대조 뿐만 아니라, 니타니의 이중성을 짚어 내는 장치로도 사용되었다고 생각한다.

오시오는 관계를 하러 찾아간 니타니의 집의 창가에 꽂혀있는 문고본과 관계 시에 너무나도 상냥해지는 니타니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고 나서, 다시는 관계를 갖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니타니는 문학부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벌이가 안 된다고 생각해 경제학부에 진학한 인물인데,

자신의 그런 판단을 옳다고 끊임없이 되뇌이면서, 문학부를 졸업하고 입사한 직원들에게 혐오감을 느끼는 이중성에대한 설명이, 오시오가 떠난 후 덧붙여진다.

모순이 가득한 니타니의 성질을 그 때 알아차린 건 아니었을까.

아쿠타카와상 수상작 중, 이렇게 충실하게 메타포로 가득 찬 작품을 읽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정말 훨씬 더 많은 내용이 있는데, 이걸 다 쓰면 감상이 아니라 줄거리 요약에 더 가까워 질 것 같아 정말 많이 줄이고 줄였다.

해석할 여지도 많고, 관점에 따라서 그 해석도 바뀔 여지가 충분한, 그러면서도 그 해석이 어렵지 않은 소설이었다.

한마디로 재미있는 소설이었다는 거.

하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인데도 감정적으로 힘들어서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힘들었다.

작품 내내 나오는 아사카와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사람이 저렇게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강박적으로 구분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을까.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간식 제공"이라는 수를 짜내기 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그런 아사카와에게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 준 남자는 속으로 그녀의 애정과 노력을 경멸하며, 행동으로 큰 상처를 입히고..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해봤자 군대/알바 정도인 이 얄팍한 사회생활에서 겪은 몇 안되는 경험 때문에 그 경멸을 약간은 이해하게 되는 내가 있었다.

그런 점이 나를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레이와에 들어서 수상작이 나올 때마다 말이 많던 아쿠타가와 상이지만, 이번에는 정말 이견이 없는 작품을 뽑은 것 같다.

(뭐 2022 상반기 후보작을 하나도 못 읽어보긴 했지만)

일본 문학의 날씨는 아직 맑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