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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문학평론가이자 류쿠 독립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로도 유명한 미시마 유키오는, 한 번은 중국 베이징 대학에 초청 강연을 간 적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중국 유명 언론사와의 인터뷰 역시 가지게 되었으므로, 거기서 "중국 문학 작품 중에서는 무엇을 가장 좋아하느냐" 하는, 으레 받을 법한 질문을 받게 되었다.



여기서 미시마는 "요재지이"라고 답변하였는데(여기까진 그닥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에 기자가 그 중 무슨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묻자, "곽 수재의 어깨밟기 이야기를 가장 좋아합니다" 하고 답했다는 것 아닌가(여기서부터 이상하다).



이 곽 수재의 어깨밟기 이야기란, 국역본으로 종이 세 바닥이 간신히 넘는 미미한 분량에, 뭐가 뭔지 설명도 모호하고, 복선도 전혀 회수되지 않았으며, 이야기 자체에 다소 두서가 없는, 작가인 포송령조차도 관련한 정보의 부족을 한탄하며 이야기를 끝내고 있을 정도인, 한 마디로 얘기가 덜 된 얘기다. 



이런 반푼이 얘기를 미시마는, 어째서 가장 좋아하는 중국 책의, 가장 좋아하는 중국 이야기요, 하고 당당히 말하게 된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필자는, 수 개월 전, 미시마의 희귀한 문학평론집 "문화방위론"을 입수할 수 있게 되었으니, 곧 요재지이의 곽 수재의 어깨밟기의 이야기의 평론을 짤막하게나마 담고 있는 책을 입수했다는 것이다. 이하 내용은 그 짤막한 논평을, 필자의 조악한 류쿠어 실력을 통해 번역한 것이다.



먼저 이 이야기의 줄거리를 살펴보자면(그것은, 류쿠어 역본으로 종이 세 바닥이 간신히 넘는 미미한 분량에, 뭐가 뭔지 설명도 모호하고, 복선도 전혀 회수되지 않았으며, 이야기 자체에 다소 두서가 없는, 작가인 포송령조차도 관련한 정보의 부족을 한탄하며 이야기를 끝내고 있을 정도인, 한 마디로 얘기가 덜 된 얘기이기에, 개략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그닥 어렵지 않다), 다음과 같다:



한 수재라는 인물이 성이 곽 씨였는데, 어느 날 집 가는 길 산에서 왁자지껄 술판 소리를 듣게 되었다. 술판 소리를 따라 올라간 곽 수재는, 술판 벌이는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는데, 이들이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는지 금방 끼어 함께 먹자판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놈이 오늘 청 낭자인지 홍 낭자인지 무지개 낭자인지가 안 와 아쉽다고 말한다. 보통 같았으면 난중에 이 낭자란 가시나 하고 곽 수재가 한 판 봄 놀음을 벌였을 터이나, 이번 이야기에서는 이후 낭자인지 낭녀인지 낭부모님인지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또 곽 수재더러 청명절에 다시 오라고, 그때는 청 낭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당부를 놓는다. 



암튼 그러다 곽 수재가 저 멀리 소피를 보고 오는데, 돌아오다 장난기가 발동해 술판 양반들한테 평소 장기던 새소리 내기를 선보여 준 것이다. 당연히 놀라고 신기해하는 술판 사람들. 그러더니 자기들도 장기를 보여주겠다고 나서는데, 그것이 바로 "어깨밟기"다.



고게 뭔고 하니, 일단 사람이 서로 어깨를 타고 올라가 사다리처럼 타고 올라가 궁극에는 열 명이서 십 층 인간탑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 양반들이 그 상태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는데, 글쎄 그것이 갑자기 큰 길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수재가 벌벌 떨며 그 길을 밟고 가보니 끝에는 자기 집이 있었다.



청명절 날 곽 수재는 한 번 더 가볼까도 했지만, 주변 친구들이 뭔 일이 날 줄 알고 가냐고 말리는 탓에 결국 가지 않았고, 그렇게 진실은 영원히 묻혔다는 이야기.



자, 이 이야기는 여러모로 특이하다. 류쿠어 역본으로 종이 세 바닥이 간신히 넘는 미미한 분량에, 뭐가 뭔지 설명도 모호하고, 복선도 전혀 회수되지 않았으며, 이야기 자체에 다소 두서가 없는, 작가인 포송령조차도 관련한 정보의 부족을 한탄하며 이야기를 끝내고 있을 정도인, 한 마디로 얘기가 덜 된 얘기라는 점은 이미 말했다. 헌데 이 특이함이 왜 이 특이한 이야기를 특이하게 좋은 이야기로 만드는가.



먼저 이 점을 기억하자: 요재지이는 기록문학이다(강조는 번역자).



이것은 한 작가 포송령이 의도적으로 허구 이야기들을 지어내어 창작한 것이 아니니, 이 책은 한나라의 지괴 소설이나, 전기 소설 같은, 이데올로그에 부합하는 정규적인 역사 경험을 벗어난 주변부의 이야기로서, 그것으로서 사실과 환상의 경계선에 위치한 이 모호한 개념들을, 기(奇)자를 붙여 전(傳)하고 있는 기담(奇談)인 것이다.



따라서 그것의 핵심은 서사 문학에서 일반적으로 보여지는 완결된 이야기 구조가 아니다. 거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현실(엄밀히 말해 우리에게 익숙하고 상식화된 현실)과 허구(엄밀히 말해 우리에게 낯설고 이상화된 허구)의 모호한 만남이다. 그러므로 완결된 서사구조를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곳에서는 하나의 완결된 세계관이 아니고 두 세계의 "충돌"이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곽 수재 이야기는, 그러한 "충돌"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다. 



다른 이야기들의 기이 존재는 그나마 기존 신화나 종교 교설 등에서 유사성이나마 찾아볼 수라도 있지, 사람이 길이 된다는 것은 듣도보도 못하기 마련인 발상이다. 게다가 그들의 정체에 대한 대략적 설명마저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정말 그대로의 "기이함"으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이함이 현실의 압력으로 완전히 우리 세상에 밝혀지지 못하는 모습,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한 지식인 포송령이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요재지이의 아름다움의 핵을 잡고 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변두리에서, 번개석화와도 같이 나타났다 사라져버린, 낯설고 기이한 것들에 대한 민중의 바다 심해저를 떠도는 경험들, 그 경험들을 광적으로 수집하며, 이 미지의 세계에 대해 호기심도 갖고 동경도 갖고, 나름 논평 판단도 해보는, 세계를 견뎌내고자 하는 지식인의 모습. 이것이야말로 요재지이가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꿈꾸는 원동력이 되주었던, 요재지이의 미학(강조는 번역자) 그 자체가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