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쓴 글에서 잘린 부분은
후금이 요동을 먹으면서 생산기반이 상당히 파괴됐고 그걸 복구하고 개간하는데 애를 먹으면서 후금도 얻은 교훈이 있었을 것이다
또 마지막으로
사르후 전투 이전 상황에서 후금이 명, 조선 둘 다 본진을 털고 명을 복속시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어려운 임무고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명과 조선의 정치상황을 봐야 되고 후금이 그걸 어떻게 활용했는지에서 찾을 수 있고 담에 쓰겠다
대충 뭐 이런 얘기였음
그리고 내 글은 "아무튼 남한산성의 감상.."이지만 감상탭의 취지엔 맞지 않고
민족관=판타지라는 생각을 피력했기 때문에 내 관점은 판타지가 아니란 것도 공평하진 않고
때문에 정보탭에도 맞지 않는 글이라 생각함
뭔가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조금이라도 더 있을거 같은 일반탭에 생각을 남기고 싶음
자유의 권리를 누린 대신 피드백의 의무를 할 테니
지우지만 말아 주이소..
어제 누가 혹시 정묘호란의 발발 원인을 경제적인 이유에서 찾는다는 얘기를 하려면
모 교수님이 논파한 적 있다고 논문을 찾아보라고 하길래 봤는데
정묘호란의 화친협정에 경제적인 내용이 없다는 것으로 논증한다고 하셨는데
글쎄..판단할 근거가 오직 그것뿐이라도 딱 그만큼만 유효한 생각 아닐까?
근데 근거가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유효하다는 것도 상당히 좀..
아니 화친조약 내용을 보고 전쟁 발발원인을 알 수 있으려면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는 게 설명까지 필요할까?
어제 글에서도 말했듯이 교역이 끊긴 입장에서 후금 정예병력은 전략 게임으로 치자면 자원 줄 마른 한타 병력이나 마찬가지임
그런 나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후금 병영에 천연두 창궐하고 장기전에 경험이 많은 조선이 인조랑 세자를 후방이랑 섬에 감추고 버티기에 들어갔던 건 사실이잖아
후금이 반도에 머물면서 장기전에 돌입하기 싫어서 두루뭉술하게 명 후금 사이에 중립을 의미하는 형제국 선포를 조건으로
화약을 맺었다고 후금의 목적에 경제적인 이유는 없다는 건 말이 안됨
화약의 내용으로 전쟁 발발 원인을 추측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만
그 추측의 범위도 합리적이어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닐까?
전쟁 발발 3달 만에 맺어진 정묘 화약에 돈 얘기 직접 없는 것에 대한 해석이
후금에 풀고 싶은 경제적인 문제가 있고 전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했다는 논거와 논리를
안 들어도 미리 논파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ㅋ
그리고 다른 결정적인 근거들이 있잖아 후금이 식량 공급부족으로 애를 많이 먹었고 조선에서 답을 구한바 있다는게 엄연한 사실이고
심지어 조약내용의 해석을 두고 조선이랑 후금이 다툰것도 사실이고 조약을 빌미로도 많은것들을 꾸준하게 요구한것도 사실임
결국 10년을 못 채우고 2차전에 들어갔는데...
그러니까 이런 거임
인조반정-정묘호란
이 두 사건에 연관성이 있다고 의심한다면
광해와 인조의 대후금정책이나 후금의 처지에서 보는 광해와 인조의 차이를 볼 것이고
거기에 전쟁의 원인이 될만한 차이를 발견한다면 그 차이와 정묘호란 사이에 인과가 있다고 말할 것임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는 주장이 있고
그 주장의 논거에 경제적인 부분도 있음
그걸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누르하치-홍타이지라는 후금 리더의 교체를 더 주목한다?
그 주장 자체는 동의하는 부분이고 후금 입장의 다른 목적을 말하더라도 ㅇㅋ
근데 그게 그 자체로 전자의 반이 되냐 이 말임
나도 애초에 정묘호란,병자호란 모두 홍타이지 입장에서의 정치적 이벤트라는 맥락을 말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이벤트의 목적과 수단에 대해서 이해를 하려면 조선의 정치,경제,외교 상황과 그게 후금의 정치,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반응의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를 당연하게 느끼고 또 설명할 요소들이 실제로 많다고도 생각했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고 전쟁의 원인이 조선 후금 양쪽 모두에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고
(그냥 약해서 맞은 거라도 하필 그때 맞을 만큼 약한 것도 이유임)
어쨌든 최소한 두 주장이 양립할 수 없이 근본적으로 충돌하는 건 전혀 아닌데
전자의 논리와 논거를 듣기도 전에 아주 제한적인 논거로 제한적인 생각을 한 걸 들먹이면서 미리 논파 됐다고 한다?
전자를 반박하고 부정한다는 후자의 입장은 두 관점이 상충하는 지점을 찾는 게 아니라
이미 후자를 생각하기도 전에 전자의 입장을 먼저 불편해한다는 의심이 간다 이거임
그건 전자의 입장이 필연적으로
광해와 인조를 능동적인 존재로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봄
그렇다면 광해가 왜?를 생각해야 하고 그럼 인조는 왜? 생각해야 하고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결과를 받은 건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소위 "민족관"에 상당히 불경한 이야기들이 나올 수가 있고 그게 불편한 게 아닌가 짐작함
그냥 어차피 후금에 의해서
홍타이지에 의해서 일어날 일이었다 이거면 불편할게 없겠지
아니면 미안하고요
정묘호란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 더 자세히 하고
지금부터는 정치적인 상황에 관한 이야기라
추측이 난무하겠지만, 의도적으로 사료를 빠트리거나 왜곡하진 않고
내 수준에서 최대한 합리적인 추측을 한 거니 빠진 사료나 논리에 결함이 있는 걸 지적하는 건 환영함
민족관에 대한 이야기를 한 김에
광해를 시작으로 이어가야 할 거 같음
광해는 복잡한 당파싸움이 치열하고 옥사가 난무하던 시기를 보낸 조선의 임금이고
이 위기상황에서조차 벌어진 당파싸움에 대해서도 한국의 민족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난 그것도 다 헛소리고 판타지고 종교라고 봄
조선 조정의 그런 분열은 아직도 전쟁의 후유증이 있고 또 일어날 수 있는 전쟁의 위협과 불안이 팽배한데
그걸 겪는 조선이라는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십의 정통성이 사라졌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면서 따라갈 수가 없고
또한 군주가 이순신 같은 명장은 물론이고 자기 아들의 전쟁 공적도 인정을 못 해줄 정도로 지지기반을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현상이라고 봄
불안,공포,의심,불만에 찬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가 경쟁하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니겠음
뭉치고 분열하고 핍박하고 시기 질투하고 음해하고
근데
광해 즉위-인조반정-호란-효종을 거치는 시기의
붕당을 보고 내가 이해가 가는 점이 또 있던데 유교관속의 조선인의 선택,그것이 변질해가는 경향들?
일단 동인과 서인이 왕권이냐 신권이냐는 선택을 놓고 분당한 건 건설적이라고 생각하고
그 맥락 안에서 외척에 대해 취하는 태도로 그 선택이 갈리는 것 역시 합리적이라고 봄
후계문제를 두고 선택이 갈리는 것도 세자 될 사람의 성격이나 능력 그 외척의 성향이나 세력의 크기들을 고려해서
동,서인이 각자의 이데올로기에 조금이라도 더 맞는 후계를 미는 것도 이해 가능한데
그 다른 선택의 상대를 너무 죽이고 짓밟다 보니까
이데올로기에 따른 선택보다 복수와 생존에 급급한 선택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다는거임
그럼 그런 경향 속에서 현재 집권하고 있는 세력이
그러니까 우선 선택권을 가진 쪽에서 어떤 전략을 짜는 게 유리할까?
같은 진영을 쪼개고 두 트랙으로 가는 게 최선일 것임 상대에게 기회를 안 주고
세력 내부에서 갈라져서 극단적인 보복을 원천 방지하는 형태로 가는 거지
그런 맥락을 보면 같은 계열의 분파가 국가의 대사를 놓고 다투는 것보다
다른 계열의 분파가 좀 사소해 보이는 문제에서 명분을 억지로 발굴해서 기회를 잡은 듯이 죽자고 싸우고 들고 그걸 존나 진지하게
같이 죽자고 방어해야되는
그 권력투쟁의 작동 논리를 이해는 할 수 있을 거 같다 이거임
그런 경향이 외교의 상황에서도 드러나고 있다고 보는데
광해가 명과 청 사이에서의 두 트랙을 한 거라던가, 인조조선의 모순된 외교적 행동들의 수면 아래
인조반정을 일으킨 서인 세력에서 척화와 주화를 동시에 역할 분담하고 주장하는 등이 그 예라고 봄
뭐 모든 선택이 예외 없이 그것만 의도적으로 의식하고 이뤄졌다는 건 당연히 아님
그런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거지
암튼 뒤에 구체적인 사안과 연관된 더 자세한 얘기를 할 수 있을 거 같고
그런 상황에서 선조를 이어받은 광해 역시 권력의 지반이 부실하니
광해가 계속 왕을 하고 싶고 권력을 공고히 하고 싶으면
일단 당면한 전쟁발발 위기를 넘어야 하니 전쟁 후유증을 복구하고 군사를 키워 전쟁억지력을 만들어야 하고
추가로 가시적인 것으로 왕실의 권위를 다시 세워야만 하는 거였음
그 맥락에서 보면 광해가 궁궐을 짓는 거에 집착하던 게 나름 합리적인 행동이었던거임
세법 고치고 행정체계 정비도 하고 전쟁준비도 나름대로 좀 하고 이런 거랑 광해에겐 크게 다르지 않은 이성적인 일이었던 거지
다만 궁궐을 아무리 기깔나게 지어도 효용에 한계가 있는 법이고
농자천하지대본도 조선의 주요한 정체성인데 농번기고 뭐고 가리지 않고
해마다 주야장천 짓고 다 말리는데도 또 짓고 또 짓고 짓다 말고 또 지으라 하던 게 문제였지
근데 딴 거 잘한 거도 좀 있으니까 그 불신이 팽배한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인간적인 이해는 감
그 뒤인 인조는 그냥 답이 없기도 하고..
(그리고 그의 폐위에 대해서도 드는 강한 의문이 있긴 함)
암튼
일단 광해의 전후복구와 궁궐 무새짓 때문에 돈이 많이 필요한 처지에 있었다는거임
조-왜 무역재개 상황에서 그 광해의 처지를 생각하면
비로소 설명되는 조선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들이 있음
돈이 필요하다 한들
논밭 저수시설 농기구 다 불타고 망가지고 사람이 다 죽어나가서 이미 박살 난 세수가 세법 고치고 행정 정비한다고 거기서 뭐 얼마나 더 나오겠음?
그냥 복구한다는 차원이지 대규모 사업할 정도의 규모로 돈 나오는 구멍은 왜뿐이었고 더 많은 돈을 위해서는 더 많은 명나라 물건이 필요했고
더 많은 명나라 물건을 주기적으로 안정적으로 공급받기에는 명의 수군 이상 가는 게 없음
그리고 이건 사르후 전투 이후 후금이 요동을 점령하고 명과 조선 사이의 육로와 요동의 상업 네트워크가 끊어진 상황
또 요동에서 물러나서 장벽안으로 들어간 명은 이전보다 좁아진 국경에 대한 더 쉬워진 관리의 문제의 해결책이기도 함
그런 맥락을 보면 광해가 왜 모문룡에게 그것도 섬을 기점으로 내주고 해마다 돈과 곡식을 주고 조선반도에 머무르라고
명에게 공식적으로 요청한 것인지 투명해진다고 봄
왜 투명해지냐? 광해는 폐군이었기 때문에
인조정권은 그가 겉으로만 친명이었다는걸 증명하는 게 자신의 정통성에 직결되는 문제라서 명명백백한 증거들이 사료로 남았음
명을 돕기 위해 파병한 것도
사르후 이전부터 광해가 후금이랑 붙어먹으려고 하던 의도의 일환인 걸 밝혔고
주둔비용을 지급하고 붙잡아놓은 모문룡의 이적행위에 대해서도 아주 상세하게 남았고
그걸 따라가 보면 그가 애초에 조선에 그냥 들어온 게 아니란 걸 충분히 심증을 가질 수 있고
그 상황을 후금도 이해하고 있다는것도 추측할 수 있음
그리고
원숭환이 모문룡 처형의 죄목으로 오랑캐와 교역하고 사사로이 시장을 열었다는 걸 분명하게 명시하면서 더 이상 심증이 아닌거임
또 그건 원숭환이 명의 조정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니라
인조조선으로부터 받은 민원일 수밖에 없는 거임
그 내용들의 자세한 의미와 처형의 후폭풍으로 알 수 있는것들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쓰겟음
역갤로
이제 고만 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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