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90 이에요
근원적 무를 다루는 내용인데, 먼저 시간의 본질에 대해서 말하고 있어요
여기서 3) 시간은 지나가버리지도 멈춰 있지도 않다. 오히려 시간은 자신을 시간화 한다. 시간화는 운동의 근본현상이다
1. 그렇다면 시간은 자신을 시간화 함으로써 운동의 근본현상을 획득한다는거 아닌가요? 그럼 시간이 시간화하기 전에는 정지해 있는 상황으로 보이는데, 이러면 첫번째 문장과 모순이 생기는거 같아요.
2. 시간이 만일 스스로 시간화를 한다면, 시간은 자기 원인을 지니는게 맞지 않을까요? 만일 시간이 자기 원인이 아니라면 외적 원인으로 인해서 시간성이 생기는 건데, 이런 경우에는 외적 원인을 초래하는 것은 시간내부에 있지 않기에 a)정지함 b)시간을 초월함 이 두가지 경우 같아요. a는 불가능하고 그렇다면 b일 텐데, 문장에서는 시간은 자신을 시간화한다 라는 말로 b는 안되는거 같아요. 그렇다면 b가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2-1 시간은 자기원인을 지녀서 자신을 시간화한다면, 이는 스피노자가 말한 실체개념이 아닐까요? 하이데거는 p286에서 "나는 초월의 내적 가능성이 근원적인 시간성으로서 시간이라고 주장한다"고 말했는데, 스피노자의 철학과 비슷한 부분이 있을까요?
도와 줌매 ㅠㅠㅠㅠㅠㅠㅠ
- dc official App
대륙철학 쪽이 특히 더 그런데, 이렇게 특정 부분을 제시하고 "이렇게 해석을 할 수도 있지 않냐" "이것은 왜 안되냐", 아니 하물며 "이걸 모르겠다" 라는 질문을 주면 대답을 줄 사람이 극히 드물 거예요. 진짜 박사나 되어야...
그래도 여기에서 줄 사람이 있기는 할 거 같아요. 하지만 몇몇 부분에선 정말 그 질문을 남겨 두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하이데거 읽으면서 이렇게 질문했던 경험이 있어서 ㅠ
그런가요.... 나중을 위해서 기억해놔야 겠네요 답변 감사합니다! - dc App
근데 독갤에선 왠지 있긴 할 거예요. 이 질문에 대해 답해줄 사람도 있을 거예요. 단지 수학 교과서 질문처럼 모든 질문에서 답변이 나오길 기대하는 건 좀 멀리해두라는 거입니다.
넵! - dc App
시간이 탈자적이라는 거잖아. 그러니까 시간은 스스로를 벗어나있다는 말.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시간을 일상적으로 이해하면 그저 끝없이 흘러가는 시간, 누적되는 시간으로 이해되지만, 현존재라는 유한한 존재는 시간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단순히 누적되는 시간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본질(유한한 존재)을 깨닫게 해주는 절대적인
절대적인 계기로 이해하지. 그러니까 '시간' 안에는 '일상적인 시간 개념(누적되는 시간)'을 벗어나는 계기가 있는 거야. (당연히 이 모든 건 현존재와 관련해서임). 그래서 시간은 자기 자신을 시간화한다고 말하는 거.
그럼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이데거가 말하듯이 우리 자신이 정신의 통일로서 존재한다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아. 왜냐하면 시간은 결국 유한한 존재에게만 주어지는 거든. 신이나 천사는 시간에 속박되어 있지 않아. 신에게는 모든 것이 이미 일어나있어. 다만 우리의 눈에만 그것이 안 보일뿐이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정조화나 예표론 같은 게 이런 거야. 신의 눈에는 시간 같은 건 없어.
그래서 유한한 존재인 존재자와 현존재에게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지평 그 자체야. 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시간이라는 지평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스스로를 이해해.
타자와 더불어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 완전한 존재에게 타자란 건 없어. 오직 유한한 존재만 타자와 함께하지. 그래서 하이데거는 비현존재적 존재와 함께하는 걸 택해야 한다고 말해. 그래야만 '자기 자신으로 향해 있음'이 가능하니까. 자기 자신으로 향해 있음이란 결국 자신이 유한한 존재이고, 시간이라는 유한한 지평 속에서 살고 있으며, 그를 통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존재인 '현존재'가 된다는 걸 의미해.
너가 던진 질문들은 내가 보기엔 그냥 핀트가 많이 엇나간 질문들로 보여. 본문의 내용과는 별 관련이 없는 내용들 뿐. 하이데거는 물론 서구 사상의 한 중간에 있는 인물이지만, 독자적인 철학을 구축한만큼 그의 개념을 다른 철학자의 개념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해 보여.
시간을 시간화한다는 말을 조금만 더 풀이해보자. 누적되는 시간이라는 시간 개념은 굉장히 객관적 시간 개념이야. 이런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존재자란 데카르트가 펼쳐놓은 기하학처럼 동질적인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점과 같아.
그러니까 x축과 y축으로 이루어진 좌표계 속에 있는 점이 x축으로 1 움직일때마다(시간이 1초 흐를 때마다), y축으로도 1 움직이는 거지(내가 운동한다). 여기서 시간은 나에게 어떤 자각적 계기도 주지 않는 객관적 지평이야.
그러나 하이데거가 드는 예시들에서 알 수 있듯이, 죽음은 인간에게 주어지는 절대적 계기야. 죽음 앞에서 우리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세인들의 삶이 비본질적이라는 것과 우리 삶의 본질을 깨닫게 되지. 여기서 시간은 우리 삶과 관계없이 존재하는 객관적 지평이라기보다는 현존재의 주관적인 계기에 가깝지.
세인들이 객관적 지평(누적되는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는 다른 증거들. 우리는 오늘도 밥을 먹고 학교를 가고, 직장을 가지. 왜? 내일도 똑같은 하루가 반복될 거라는 예측을 하고 있으니까. 즉 우리는 우리 미래의 그래프를 이미 그려놓았어. 대충 40세까지는 이렇게하고, 50세에는 이렇게 하고..데카르트의 좌표계에 그어진 선과 같지. 그러나 만약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그딴 그래프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 당장 다 때려치우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겠지.
이런 이유에서 하이데거는 '시간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 단순한 누적적 시간에서 과거는 이미 흘러간 것,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지. 그러나 현존재의 시간성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지금 이 순간으로 집약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지.
내가 조금 걱정이 되는 건 너가 철학서적을 너무 철학서적으로서만 이해하는 것 같다는 거야. 칸트가 말한 것처럼 철학사를 배우는 건 쉽지만 철학함을 익히는 건 정말 어렵거든. 개념의 늪에 빠지지말고 좀 더 쉽게 현실 삶과 관련해서 이해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와 이렇게 길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도움이 많이 된고 같아요! 결국에는 하나의 관점에 매몰되지 않고 바라보는게 중요해보이네요. 읽다보니 하이데거라는 철학자의 철학이 점점 재미있어지네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