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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미스터리하고 불가해한지 마침내 우리가 깨닫게 된 오늘날, 한 인생의 이야기 혹은 그러한 이야기의 기록은 우리를 현실 가장 가까이로 데려다줍니다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우리가 공산주의 하면 떠올리는 것들은 보통 추위, 굶주림, 피로 얼룩진 혁명 등이다. 사실 우리는 바로 위에 있는 한 불량 국가 덕분에 생각보다 공산주의에 대해 잘 아는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받아온 교육, TV 다큐멘터리, 군대 정신교육에서 들었던 탈북자의 생생한 증언 등.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어딘가에서 한 번쯤은 실상을 들어보게 된다.


폴란드나 동독, 체코같이 서구권에서 공산주의였던 나라도 마찬가지다. 이들 국가의 민주화로 인해 밝혀진 공산주의의 실체는 수많은 반면교사 사례가 되어 우리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정치적, 교훈적 목적으로 뒤덮인 자료의 표면을 한 꺼풀 걷어내고 그 안을 들여다본다면 어떨까?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게 바로 그런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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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는 작가 마르제나 소바가 어린 시절(주로 80년대의) 공산주의 폴란드에서 겪은 일을 회고하는 만화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당시 소시민들의 생활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 ‘페르세폴리스팔레스타인처럼 현실 고발적인 요소는 별로 없다.


따라서 위에 언급된 두 만화보다는 비교적 가볍게 볼 수 있는 편이다. 공산주의 일상물이라고나 할까. 당시의 시대상을 자세히 알고자 한 독자들은 살짝 실망할 수도 있다.


사실 이것은 주인공인 화자가 어린 소녀라는 점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부모의 심각한 고민도, 나라의 위태로운 정치적 상황도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보이는 그대로 알쏭달쏭하게 표현된다. 마르지의 이야기는 주로 가족 이야기, 친구랑 놀았던 일 등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본 경험 위주로 진행되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당시 폴란드의 상황으로 발생하는 이질적인 분위기를 살펴보는 것이 하나의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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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를 보는 목적이자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주인공 마르지다. 만화는 마르지의 일기장 같은 형식으로 쓰여있는데, 어린이다운 천진난만함과 귀여운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회색빛의 칙칙한 색으로 칠해진 배경과 마르지의 붉은 머리는 완벽한 대비를 이룬다. 그림 작가 실뱅 사부아는 일본 망가의 영향을 받은 듯한 둥글둥글하고 역동적인 그림체로 이를 표현한다.


마르지는 마치 스파이 패밀리에 나오는 아냐처럼 이쁜 딸내미 하나 키우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가졌다. 물론 두 캐릭터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긴 하다. 이쪽은 어른들에게 유치한 장난을 치거나 사소한 일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는 그야말로 애다. 그리고 나는 이런 현실적인 모습이 더 마음에 든다. 이렇듯 어딘가에 있었음직한 캐릭터를 잘 살려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도 이 만화의 확실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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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분위기가 항상 밝은 것만은 아니다. 이야기의 중간중간 전쟁이나 체르노빌 사고같이 무거운 현실이 닥쳐오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작품은 어디까지나 마르지의 눈높이에서 진행되므로 마르지가 보고 느끼고 체험한 모든 것들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한계 때문에 당시의 주요 사건들이 그리 깊게는 다뤄지지 않는다. 마르지가 성인이 된 후에는 자유 진영인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고, 그 이후로는 공산주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기록들이 무의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를 기록한다는 건 뭘까? 우리는 일에 치여서, 혹은 먹고살기 바빠서 이런 역사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살다가 몇십 년 후에야 그때가 좋았지하면서 한탄하곤 할 것이다.


현재에 놓인 우리도 마르지의 어린 시절과 다를 바 없다. 공산주의 이야기라고 해서 꼭 혁명, 굶주림, 투쟁 같은 이야기만 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공산주의를 옹호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이 만화의 주제도 결국엔 반공으로 귀결된다) 우리처럼 평범하게 살아온 소시민의 삶이 그들에게도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신선하지 않을까? 물론 그 시선이 마르지처럼 귀여운 아이의 관점이라면 더 좋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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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1,2권에 이어 3권, 4권이 나올 예정이었던것 같은데 판매량이 저조해서인지 2권 이후로 더 나오지 않았다. 정말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