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ceb8475b1866cf73bef9ee75f9f2e2d544eeb0a0c4e842eff6cb19d

지금 게시판 난장 나서 조금 써봄...






1. 하이데거가 본 니체

니체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다지 철학자로 보지 않았음.
평론 같은 것이나, 시인 같은 것과 많이 엮어졌음.

예를 들어서 례프 셰스토브같은 사람은 니체와 비슷한 면이 있음.
"철학은 그저 그 사람이 고통을 느껴 적은 것 뿐"이라고 하면서 반철학을 주도했는데,
결국 그 면 때문에 굉장히 상대주의(관점주의)적인 면과 모순되는 면을 많이 보여줬지.
(지금은 례프 셰스토브도 철학자로 봄)

그리고 니체의 친구였던 바그너 있잖아. 이 사람도 글 썼음.
글 어마어마하게 썼음. 독일에서 전집이 15권임.
똑같이 아포리즘을 썼고, 이론보다는 예술적인 문체도 니체와 똑같음.


하이데거가 니체에게 한 가장 큰 업적은
"니체를 제대로 된 철학자로 만든 것"임.
정말 이 사람에게 일관적인 면모가 있고,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 덴 하이데거의 공이 큼.
(근데 하이데거만 그랬던 건 또 아니고, 바타유 같은 사람처럼 니체 르네상스 전에 도움 준 사람 있음)

하이데거가 유고집에서 한 해석은 문제가 있음.
물론 여동생이 왜곡한 게 있지만, 그게 아니어도 좀 논란이 많은 면이 있대.
하지만 하이데거가 니체를 비판한 점은 확실히 볼만 함.
"서양 형이상학의 완성자"나 "의지의 의지" 같은 개념은 진짜 귀기울여볼만 한 이야기임.




2. 데리다가 본 니체

이제 하이데거와 들뢰즈가 니체를 복구하고 난 뒤에.
60년대와 70년대 프랑스에서 아마 똑같이 니체 가지고 난장판이 났던 것 같음.
누구는 이렇게 해석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해석하고...

여기서 데리다가 자신의 탈구축 개념을 활용, 굉장히 좋은 이론을 펼침.
니체에 대한 논문 한 30페이지쯤 되는 걸 썼음. (번역 안됨)

데리다에 따르면 사실 우리는 잘못 생각했다는 것임.


철학의 사유의 본성 자체가 이 니체 논쟁 같다는 것임.


데리다는 상대주의가 아님. 그의 탈구축 철학을 요약하면 바로 이거임.
"해석을 종결할 수 있는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석에 대한 우리 생각과는 다르게, 진짜 좋은 책, 진짜 위대한 텍스트는 해석이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텍스트들일수록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게 열어준다."

성경이 정확한 예지.
성경의 그 수많은 모순들, 해석 충돌, 이것으로 일어난 난장판들은 사실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대한 사유의 본성 중 하나이며, 이런 해석의 충돌을 메꾸기보다 오히려 더 열어놓고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임.

인류사에 남은 그 수많은 명언들이 사실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생각해봐. 그것 또한 데리다는 위대한 사유의 본성 중 하나이며, 이 모순과 차이들을 그대로 포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임.

니체도 역시 똑같이 그런 예시인 것임.
안티크라이스트라고 하니까 기독교는 비판하는데, 예수는 비판 안하네?
그런데 예수를 옹호했다? 고 하니까 또 다른 논박이 나와서 예수를 그래도 옹호한 건 아니라고 하네?
니체가 불교를 옹호했다? 고 하는데 또다른 곳에선 비판했다고 하네?

니체가 스토아주의 하나만큼은 진짜 싫어했을 거 같지?
내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인가 니체의 어떤 책에서 에픽테토스를 추앙하는 걸 봤음... 니체가 진짜 이럼.

데리다는 니체의 해석의 충돌이야말로 니체가 위대한 철학자임을 증명한다고 하고, 이 다차원적이고 차연으로 가득찬 그의 말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음.




3. 가다머가 본 니체

하지만 가다머는 그것에 회의를 표했음.
가다머는 언어에 대해 정말 깊이 탐구한 사람임.
데리다도 언어에 대해 탐구했지만, 가다머는 아주 차분하게 대했음.
데리다는 아주 체계적인 철학이론을 공부했지. 아무리 체계적인 이론도 문제가 생기는 걸 보고, 언어의 해석은 언제나 두 갈래로 나뉜다고 말했지.
하지만 가다머는 가장 원시적인 상태에서의 언어를 생각해본 것임.

원시인들이 왜 언어를 썼을까?
뭔가 정보를 전달하려고 했겠지.
물론 이 정보는 왜곡되어 전달되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쨌든 그게 전달되었다는 것.

가다머는 데리다에게 이렇게 비판했음. "만일 아무도 이해하려고 들지 않는다면, 누구도 말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데리다의 해체철학이 가장 극단으로 갔을 때, "해석이 너무도 달라서 서로가 서로를 전혀 이해할 수 없을 때"에 대한 비판인 것임.
가다머는 정말 반형이상학적이려고 노력했음에도 최소한의 면에서 형이상학적인 것을 도입했고, 그것이 바로 "언어의 이해 가능성"이었음.


이에 따라 가다머가 보는 니체의 철학은 이렇게 됨.
니체의 철학은 모순되고, 해석이 충돌된다는 것은 인정한다는 것임.
하지만, 결국 어떤 형태로든 니체에 대한 통합된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임.
이것은 "해야 한다", "통합된 해석을 해야 한다"가 아님.
"한다"임. "우리는 결국 통합된 해석을 할 수밖에 없다"인 거임.

우리가 아무리 해체를 하고 해석의 충돌을 받아들인다고 한들, 최소한의 면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니체의 명언을 일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고, 니체라는 사람의 철학을 통합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임.

니체를 읽는 정확한 길이 없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우리는 니체를 어떤 식으로든 읽을 수밖에 없다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