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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과 엮어서 저자는 집단주의를 혐오했음은 자명하다. 대충 책의 테마도 개인주의 vs 집단주의로 붙여서 집단주의의 열등함에 대해 침을 뱉는 것에 가깝다. 파시즘과 집단주의는 거의 유사하게 표현되는데, 집단주의의 특성은 책임질 사람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개개인이 독립 없이 책임도 없고 그저 집단의 위세에 얻어타서 권익은 누리고 싶어 하는 심보가 있다. 마치 흑인 미성년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어서 가게 하나 터는 현상과 같이 난폭하다. 거의 메뚜기떼를 방불케 한다. 그래서 집단주의는 복종심의 표현으로 해석하였다. 그래서 파시즘이든 사회주의든 독재로 빠지기 쉽다. 다수를 위한 하나, 하나(김정일)를 위한 다수 이런 표어로 요약되고, 중국 강령에도 대놓고 소수는 다수에 복종하고 하부는 상부에 복종하라고 되어 있다. 그 최상부에는 시진핑을 비롯하여 상무위원 7명의 과두정식으로 굴러간다.


왜 극우파시즘이나 극좌사회주의나 왜 집단주의는 독재로 귀결되기 쉬울까? 국가대사적 문제에서 더이상 메뚜기떼처럼 행동하기엔 부담이 크고 누군가 책임을 져야하고, 계획이 있어야하고 그래야 체계가 잡힌다. 두명도 안되는 최고책임자가 필요하다. 그러면 의견 달라지고 감정싸움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고 효율이 떨어지기 십상이다. 내분이 없어야하고 그래야 일치단결하여 일을 추진할 수 있다. 


저자는 집단주의에서 관용이 없고, 반대자에게 가차 없이 억압하는 게 문제라고 보았다. 그 당시 파시스트나 스탈린이 하는 짓 보면 그것은 관찰이 가능하다. 하부 구조에서 집단에 일치단결하고 하부구조는 다시 상부구조에 일치단결 하는 식이다. 이 구조에서도 상부구조에서 하나 혹은 소수가 계획하고 정책을 결정한다. 하부구조일수록 다수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적 구조에서도 지배하는 자는 개인주의적이고, 복종하는 자는 집단주의적인 것을 알수 있다. 집단주의자들이 관용이 없는 것은 그들이 태생적으로 앞잡이에 가까워서 그렇다. 권력의 핵심에 붙은 자들이 자신들의 권위에 대해 선전하고, 반대하면 억압하는 건 흔한 현상이다. 앞잡이들은 권력의 변두리에 붙어서 똑같이 그런다. 그게 그들에게 핵심이권이기 때문이다.


조선족들이 중국 정부에 충성하고 앞잡이 노릇한다고 싫어한다. 대신 한국인들은 미국 줄에 서서 솔직히 말해서 그 쪽 앞잡이 노릇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집단주의자들은 앞잡이 근성이 있는 한 진보는 불가능한게 지네 편이 절대선이라고 정권이 프로파간다 하는 것에 그대로 세뇌가 당하여 비판과 개선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앞잡이들이니까 계획경제가 어울린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지를 못한다. 즉 스스로 비전도 없고 주관도 없고 믿는바도 없다. 남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 결국 남의 희망사항이고, 남의 이권이다. 너는 결국 자신의 희망을 팔아서 보잘것 없는 넝마 같은 것을 얻는 것이다. 위에 놈들이 정말 도덕적으로 순결해서 공리를 우선시 여긴다고 믿는가?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인권과 자유를 나눠주고, 최소한도로 규제할 것이다. 온갖 규제로 달달 볶지 않고,


요즘은 학교란 곳이 파시즘적이고 계획경제식으로 굴러가는데, 온갖 과제니 시험이니 할당량과 의무로 달달 볶는다. 그리고 집단에게 복종하라고 파시즘적으로 강요한다. 그래서 전국민 입시지옥, 취업지옥 테크를 타다니보니 입시에서 실패하면 미래 희망을 상실해서 저출산으로 접어들었고, 집단자살사회로 간다. 솔직히 저출산 단초는 잘못된 교육에 있는 걸 인정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