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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역사에는 미묘한 매력이 있다. 그럴 수도 있지와 이게 이렇게까지 되는 건가, 하는 중간 선상에서 우리가 익히 아는 현재를 재료로 삼아서 또 하나의 대안적인 사회 현실을 만들어내는 매력. 보통 이를 위한 전제로 하나의 역사적 질문을 던지곤 하는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현실에서는 예, 이고 소설 속에서는 아니오, 가 된다. 익히 알려진 대체역사 소설인 <당신들의 조국>이나 <높은 성의 사나이>에서는 '나치가 패배했는가?', <비명을 찾아서>에서는 마찬가지로 '일제가 패망했는가?', <비잔티움의 첩자>에서는 '비잔티움이 쇠퇴했는가?' 등등. 최근 소설 중에서는 스티븐 킹의 <11/22/63>에서 'JFK가 암살당했는가?'를 예시로 들 수 있겠다.
<유대인>에서는 흥미로우면서도 사람들이 곧잘 생각해보진 못했을 질문을 던진다.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면?' 물론, 피신일 뿐이다. 애석하게도 이 소설에서조차 유대인 정착지인 알래스카의 싯카는, 퀘벡만큼의 지위는 물론이고 하다못해 원주민 보호구역보다도 못한 위치를 가진다. 한 때는 세계박람회까지 개최할 수 있을 정도로 부흥했지만, 미국의 퇴거 요구에 곧바로 다시 이곳을 떠나 다른 어딘가에 영주권을 신청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실제 역사보다는 낫지만, 이 역시 기구하기 짝이 없다.
그러한 배경에서 <유대인>은 판타지와 현실 사이를 대범하게 넘나든다. 역사적 가정을 제외한다면 다분히 현실적인 요소들만 가득한 배경에서 탐정 주인공이 이 대안적인 현실의 온갖 사회상을 쑤시고 다니게 만들다가, 정작 이 모든 갈등의 중심에 있었던 한 사내에게는 비현실적인 베일을 드리워준다. 물론 그런 종류의 신화적 뻔뻔함이 유대인 문화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다른 모든 사실들처럼 사실의 목록에 자연스럽게 얼굴을 들이밀 수 있는 메시아의 존재 말이다.
흥미롭게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이 하나 있는데, 대체역사 소설 장르에서는 대체로 (그러니까, 웹소설의 대리만족형 대체역사를 제외하고) 일종의 탐정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윗문단에서 말했듯 변화한 사회상을 마음대로 쑤시고 돌아다니면서 이 세상의 금기를 파헤칠 수 있도록 하기에 편하기 때문일지, 아니면 탐정 소설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잘 받아들여지는 대표적인 장르 소설이기에 그 틀을 적당히 빌려다 추진체로 삼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일지?
P. S. 책 표지에 띠지처럼 써 있는 문구의 '코엔 형제 영화화 결정!'은 과연 언제나 현실이 될지 참 궁금할 따름이다. 아마 지금은 맥베스 영화를 찍고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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