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들뢰즈의 "안티오이디푸스"의 요약은 이거임.
자본주의에 있는 지금 세계는 사람 하나를 탈영토화하려고 하고, 과도하게 논리적으로 만든다. 이 사회에서 우리는 마치 기계와 같다.
프로이트-라캉이 한 리비도 분석과 억압을 다시 설명해야 한다.
억압은 하나가 아닌 두 가지가 있고, 각각 우리를 경제적으로 만들려는 사회적 억압과, 오이디푸스적으로 만들려는 심리적 억압이 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이 두 억압에 대항하는 제 3의 길이고, 순수히 욕망을 추구하는 기계, 욕망-기계이다...
몰라 이거도 틀릴지도 모름.
아무튼. 거기 나오는 수많은 전문 과학 용어들은 대체 뭐임...
아니 사실 이거도 논쟁거리다.
아예 과학용어에 철학적 함의를 주지 않으라는 계산주의부터, 조금은 줘야 하는데 들뢰즈는 과잉이다부터, 들뢰즈의 모든 용어사용은 비유라는 말로 옹호될 수 있다로 논쟁이 있지만...
이거를 말하려는 거도 아니고,
아무튼, "정신분열"이란 용어가 현재 조현병을 뜻하는 건 아니라는 것 만큼은 맞는거지?
이것 때문에 번역 조현병 되었을때 그냥 정신분열로 놔둔거고.
이거 하나만큼은 확답 가능한 거 맞지?
아무튼 들뢰즈 개새끼
야 너 그래도 철학 공부 좀 했나보다 그거 읽을정도면
들뢰즈 개새끼 해봐
근데 사람을 탈영토화한다는게 무슨 의미냐
여기서 영토는 진짜 영토라기보다는 자기를 정의하는 것들, 영역들 같은 것에 가까움. tree와 진짜 tree를 기표와 기의라고 하잖아. 자본주의는 기표를 계속 몰아내서 자기 자신이라는 기의를 몰아낸다고 보는 거임
앞에는 알아먹었는데 기표를 계속 몰아내서 자신이라는 기의까지 몰아낸다는건 잘 모르겠다 걍 나도 서동욱 들뢰즈의 철학 읽어봄ㅋㅋ
한 개인의 수많은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 나도 그리 잘 알지는 않지만, 자본주의의 분열증은 개인의 욕망을 자본화하여 개인의 시뮬라크르를 그쪽 방면으로 형성하게끔 유도한다... - dc App
분석철학에 쏠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무튼 참고한 서적이라도 있음? 난 서동욱 들뢰즈의 철학 읽고 대강 이렇던데. 물론 내 해석이라 솔직히 정확하지는 않음. - dc App
클로소프스키는 인간에게서 시뮬라크르를 썼긴 했는데, 들뢰즈는 시뮬라크르를 인간에다 쓰지 않았던 거 같음. 내가 알기론 의미의 논리에서 사본만 인간과 관련되어 있고 사본의 사본은 의미에만 부여된 거로 아는데...
서동욱 들뢰즈의 철학에선 시뮬라크르를 인간에다가 지칭해서 설명했나... 난 들뢰즈 괴물의 사유랑 사변적 실재론이랑
https://www.pomoculture.org/2013/09/25/dynamic-and-thermodynamic-tropes-of-the-subject-in-freud-and-in-deleuze-and-guattari/
여기
시뮬라크르 개념을 인간에다 적용될 여지를 남겨두었다는 표현이 맞는 듯. 그런데 개념 적용의 범주가 확실치 않으면 코걸이 귀걸이 꼴 나다 보니... 만만치 않다... - dc App
이번에 나온 일본 정신과 의사가 쓴 <창조와 광기의 역사> 보면 도움 될지도
첫 줄부터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자면, '탈영토화'는 뭔가 적합한 자리에 쑤셔박는 그런 게 아님. 오히려 들뢰즈가 추구한 건 영토화-탈영토화-재영토화 이걸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거임. 굳이 쉽게 설명하자면 영토화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니까 어떤 역할을 갖고 있겠지. 탈영토화는 그걸 박차고 나가서 새로운 자리를 찾아가는 거임. 그래서 노마드, 노마드 하는 거고, 재영토화는 박차고 나가서 새로운 자리를 만드는 건데, 이것도 오랫동안 거기 박히면 또 그게 매너리즘에 빠진다는 거지. 그래서 다시 박차고 나가야 하는 거고.
'마치 기계와 같다.' 이 말도 틀리게 이해한 건데, 자본주의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가 공장처럼 사람 갈아넣고 톱니바퀴처럼 돌리는 거니까 기계화 되는 건가? 하고 이해했나본데, 들뢰즈는 오히려 '기계'인 걸 발견한 거임. 그리고 들뢰즈가 강조하고 싶은 건 '기계'라서 문제가 아니라 그 기계의 '배치'의 문제야. 그래서 '기관 없는 신체' 소리가 나오는 건데. 원래 기관은 그 목적이 정해져 있다고 보잖아. 들뢰즈가 본 건 오히려 기관이 아니라 만능 기계처럼 입의 역할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말하고 있으면 말하는 기계인 거고, 밥을 먹고 있으면 씹고 있는 기계인 거고. 이런 식으로 애초에 목적성이 있는 게 아니라 활동을 하면서 그 역할을 찾아나간다고 보는 거야.
그러면 위 두 코멘트를 종합해보면, 들뢰즈가 하려던 이야기를 알 수 있지. 사람은 활동에 의해서 그 역할이 부여되는 거지, 그 반대로 이미 목적성이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역할을 찾아나가는 게 바로 '탈영토화'인 거야. 그리고 '재영토화'되면서 지 자리가 생길 거잖아. 이게 바로 '배치'인 거야.
그러면 들뢰즈가 왜 '분열분석'이라는 말을 가져왔느냐. 이건 '정신분석'을 까기 위해서 그 반대편 용어를 만든 거야. 프로이트-라캉 이론에서 리비도라는 게 우리 몸에 흐르는 에너지 같은 건데, 이게 쾌락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목적성을 갖고 있다고 보면서 리비도경제학 뭐 이런 말을 쓰지. 정신분석에서는 아예 이 쾌락의 원인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고 보고. 들뢰즈/가타리가 문제 삼는 건 이 부분인 거야. 욕망의 원인을 한 곳에 집중하고 그 목적만을 찾으러 가는 게 이게 문제다. 그러면 왜 욕망-기계라는 말을 썼는지 앞의 코멘트랑 이어서 보면 이해가 되겠지? 욕망도 원인이 있는 게 아니라 기계처럼 배치를 하면 역할을 맡는 거지, 그 반대가 아니란 말이야.
그래서 한 곳으로 집중되지 않는 욕망이라는 뜻에서 분열증이라고 하는 거야. 이게 현대 의학에서 쓰는 그 '조현병'이 아니라는 거지. 이제 이해가 되겠나? 들뢰즈는 기본적으로 합목적성이 없다고 본다, 이걸 전제로 생각하고 읽으면 돼.
전문가가 보기에는 내 설명도 틀린 부분이 있겠지만, 일단 아예 잘못 이해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쉽게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함.
덧붙이자면, 내 설명 읽고 나면 '시뮬라크르'를 왜 강조했는지도 알겠지?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목적이 있다고 봐서 시뮬라크르는 목적에 맞지 않는, 원본에서 멀어진 거니까 잘못된 거잖아. 근데 목적성이 문제라고 보는 들뢰즈에게는 오히려 시뮬라크르가 좋은 거겠지.
그리고 사변적실재론은 들뢰즈의 후대 해석인 거지. 들뢰즈가 애초에 하려던 이야기는 아니야. 들뢰즈와 사변적실재론 어쩌구 소리 전공자 앞에서 하면 욕 먹는다. 걍 응용 분야라고 생각해야 돼. 들뢰즈가 읽는 니체, 스피노자, 칸트 이게 들뢰즈의 해석이지 정설인 건 아닌 것처럼. 물론, 나는 전공자도 아니고 걍 독자라서 오히려 이렇게 여러가지로 활용하는 게 더 재밋음ㅋㅋ
나는 "기계"는 잘 알고 있었음. 우리가 기계이고 그건 잘못된 게 없다는 것은 알았음. 탈영토화도 똑같이 그런줄은 몰랐네.
그렇다면 CCRU에서의 해석이 꽤나 옳았다는 거 같네? 상품화를 계속 건너라. 탈영토화를 계속 하도록 놔두고 자본주의를 옹호하라. 자본주의를 극한으로 견디면 그때 해결책이 나온다...
내가 탈영토화를 하는 거도 있지만, 자본주의도 똑같이 탈영토화하는 게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