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버멘시=아이는 아닐테니
자연스럽게 낙타,사자,아이 그 다음 단계로 위버멘시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위버멘시는 단계가 아님
그렇게 생각하면 그 3단계 정신의 변화는 모순덩어리의 하찮은 헛소리에 불과함
그렇잖아
낙타 사자 아이 모두에게 의무가 있고 의지가 있고 낙타는 낙타고 사자는 사자고 사람은 사람인데?
그 새끼들 다 어릴때 놀고 하는데 곧이곧대로 기계적으로 생각하고 등급 분류로 여기면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인거임
비유의 맥락을 보지 않고 잡는 트집이 아니라
니체 자신이 직선으로 가면 모순되는 배열을 잡은데 의도가 있다는거임
그냥 상식적으로 쉽게 생각하면 아주 쉬운 문제임
모두에게 끝없이 주어지는 의무가 있고
그걸 수행하는 방식에 의지가 들어가고 그 의지로 이미 완성해 놓은 삶의 방식(am)이 라는게
낙타에게도 사자에게도 있는거임
그리고 그 새끼들은 그 삶(am)을 배우기 위해서 새끼때 play를 하잖아
뭐 낙타는 그걸 사람이랑 어미의 젖을 나눠먹는 법이나 순종하는법을 배운다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원래의 습성에 따라 새끼들의 행동양식이 있을거임
사자도 새끼들이 놀이를 통해서 사냥이나 서열에 대해서 배우고 할테고
( 각 개체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섬세한 이해가 필요한 비유는 아님)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는거지
뭐가? 그 완성해 놓은 방식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거임
근데 항상 그런가 하면 항상 그렇진 않은거고 그래서 멈추는게 짐승의 길이라는거지
좀 더 비유 자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따져 보자면
아니 의무라는 개념을 짐승이 더 잘 알아서 거기에 더 묶여있겠냐? 그냥 내키는대로 사는게 짐승이지?
그런데 굳이 낙타의 의무에 대해서 왜 말하겠냐?
그런거에도 다 의도가 있는 비유인거임
낙타,사자,아이라는 각각의 개체에 대한 설명을 위해 한 관찰과 이해가 아니고
그걸 바탕으로 급을 나눈 분류도 아니며
그냥 인간의 정신의 변화단계를 설명하는 비유라고 애초에 말하잖아
나누고 각 상태에 주목하는게 아니라 연결에 의미가 있다고 미리 말한거임
그건 짐승도 공유하는 이라는 맥락의 의무에 대한 설명이며
그 의무를 대하는 의지의 성질에 대한 이야기인 거임
그래서 낙타는 의지가 없고 의무만 있고 사자에는 의지만 있고 이런식으로 분류해서 생각하면
그 생각은 아무것도 아닌 그냥 쓰레기라 이거지
그리고 정신변화의 단계인데 누구나 거치고 이미 지나온 어린시절을 왜 마지막 3단계로 놓았겠니?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거고 이미 경험했던 걸 지금은 잊고 있다는 말이기도 함
또 play 즉 목마르면 물을 마시는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행위를 마지막으로 놓는다는건
그냥 꼴리는대로 한다는 욕망에 충실하는 자연속의 짐승의 자유로운 삶 이라는 이미지를 마지막에 놓은것이니
자연스럽게 1단계의 짐승도 짊어져야하는 의무로 다시 연결이 되는거지
그럼 위버멘시는?
의무도 없고 의지도 없고 그냥 꼴리는대로 살면 저절로 그 의무가 초월이 되는 삶을 사는 사람?
같은 다음 단계의 분류의 사람일 수가 없는거임
그 3단계를 연결하고 순환시키는 존재인거지
그러니 결론은
끝없이 이어지는 의무를 약한 의지로도 따를 수 있는 규범이나 도덕을 수동적으로 따르며 수행하는 낙타의 삶
같은 "인간의 삶"은 그냥 1단계가 아니라 이미 3단계를 지나왔지만 거기서 정체되고 변화의 필요와 욕망을 잊은 삶인거임
거기에서 깨어나서 끝없는 의무에 맞게 끝없는 의지를 가져야한다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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