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혼자 써놓은건데
한번 올려봅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써서 좀 파편적임
글고 이 만화 안 본 사람은 뭔 소린지 이해 안 될수도?


결말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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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까지가 비-광기이고 어디부터가 광기인지 분간할 수 있는 존재일까? 마찬가지로 현실과 허상이 별개의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현실이 허상이고 허상이 현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세계는 태극처럼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섞여들어간다. 그러므로 이성은 양자의 우열과는 무관하다. 단지 인류가 개체를 초월해 형성해온 기호와 상징들의 힘이 광기를 억누르고 나아가 은폐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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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가는 완전한 광기에 다다르지 못한다. 그가 정신착란의 절정에 다다라 여름축제에서 스스로의 몸에 등유를 쏟아부을 때조차 그의 내면은 보들레르에게 사로잡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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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광기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탐미주의적으로 전유하는 논리-상징체계일 뿐이며 다른 이들의 환상을 대체하고 있는 카스가만의 또다른 환상이라는 점에서 나카무라의 가치탈각적 세계인식과 그 결을 완전히 달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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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가 분신하는 결정적 순간에 단상에서 그를 밀쳐낸것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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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향하고자 한 '저 너머(기호와 상징 너머)'는 살아서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마을'의 출구는 발견될 수 없으나, 카스가가 좇던 '저 너머'는 진정한 의미의 너머가 아니라 '마을'의 뒷면(기호와 상징의 갱신)'에 불과했으므로. 즉 카스가에게는 출구가 존재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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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카스가의 악의 꽃은 그가 유령*을 죽이고자하고 그것을 주제로 삼은 토키와의 소설(유령 살인사건)로 이행하면서 시들게 되며 이는 앞서 말했듯 해방이 아니라 갱신이다. 유령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애초에 죽이는 것이 가능하지 않으며 '유령 살인사건'은 또다른 내러티브일 뿐이다.

*라캉주의자 백상현은 유령이 "자아가 속해 있는 현실 세계의 존재 질서가 균열을 일으키면서 현시하는 비-존재의 출현", "삶의 한가운데로 출현하여 우리의 정체성에 균열을 일으키며 불안을 야기하는, 삶의 부조화라는 은폐된 진리로부터 출현하는 공백"이라고 정의내린다. (고독의 매뉴얼,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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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나카무라에게 변화는 불가능하다. 존재하지 않는 '저 너머'를 응시하는 그녀에게 지나간 과거는 구태여 기억할 가치도 없는 것이며 세계는 해가 뜨고 지듯 빙글빙글 반복되는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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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말해 카스가에게 찾아온 종류의 변화가 나카무라를 아무리 방문하더라도 세계는 본질적으로 영원히, 계속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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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죽지 않고 계속 살아가는 이유는 그 맹목적이고 가치탈각적인 광기가 역설적으로 죽음의 정당화 불가능성마저도 입증해주기 때문이다. 광기는 스스로가 가진 염세적 속성을 끝내 무화(無化)시킨다. 그래서 그녀는 무의미의 세계의 생성소멸 자체가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을 평온히 관조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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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오시마 슈지는 광기를 목도한 인간도 근본적으로는 보통인간일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인간은 조현병자가 아닌 한 자신을 규정하는 기호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작품의 말미에서 카스가와 사에키는 보통인간에게 교리와도 같은 것, 즉 가족을 꾸리게 된다. 제아무리 변태적인 인간도 무언가의 근처를 공전하고 종전의 것으로 회귀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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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카무라는 치바현 쵸시시의 어느 해안마을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이 터전을 이루고 살아가는 육지의 맨 가장자리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그녀의 존재를 모두가 잊고 살아가는 순간에도 조용하게. 그녀는 진정한 의미에서 광기와 공존하는 유일한 자이다.


결국 이 만화는 보통인간이 광기에 사로잡히고 그것에서 벗어나는(혹은 그것을 은폐하는 테크닉을 갖게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 와중에 언제나 숨겨진 곳에서 일렁이며 우리를 매혹하는 어떤 존재를 상기시켜준다. 파도가 치는 바다 앞에서 나카무라는 세계의 기호들을 횡단하며 과연 무엇을 목도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