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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시가, 서정시임에도 서사 비슷한 것을 빌려, 자신의 서정이 발한 그 시점에서만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서정이 발하기까지의 내력을 자세히 말하는, 그러면서 서사가 서정을 안에 두고, 서정이 서사를 포섭하는, 그러한 형태의 예술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설사 서사의 평이함이나 다급한 전개 등을 감안하고서라도, 걸작으로 불리기에 손색 없을 것이다.




 <오동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원나라의 잡극으로, 중국사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극이다. 



양귀비와 오동나무 아래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함-> 환락을 즐기다가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 도주-> 분노한 병사들의 요구로 양귀비가 죽음-> 이후 난이 진압된 후 양귀비를 그리워함이라는, 잡극의 4절이라는 형식에는 너무 긴 시간의 흐름을 다루고 있는지라, 급전개가 많고, 서사의 면에서는 딱히 특기할 만한 점이 없다.



굳이 꼽자면 현종과 양귀비의 낭만적 사랑을 다루면서도 작가가 암군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어느정도 유지한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안록산은 양귀비와 은밀한 관계에 있던 것으로 나오고, 양귀비를 그리워하는 현종의 노래도 온통 양귀비의 몸매 찬양 뿐 성격 얘기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작품에 스며있는 작가의 냉소를 엿보게 한다. 



여하간 내가 이 작품으로부터, 기다란 바늘침을 정수리에서부터 꽂아넣어, 척추까지 찌릿하게 만드는 듯한 전율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극의 내용상보다도 형식상에 있는 것이다.



전반부에서 우리는 현종의 노래에 대구법이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으레의 잡극들에서 사용되는 기흥이나 비유 같은 시적 표현들은 많이 드러나지 않는데, 그래서 초반부의 노래들은 산문적인 향취가 강하다.



부비흥으로 보면 직설적 서술인 부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서 대구법이 어우러지면서 극의 전반부는 상당히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미가 강조된다.



이러한 형식 속에서 양귀비와 현종은, 자기들을 견우 직녀에 빗대며 오동나무 아래에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2절이 끝날 때쯤 향락에 젖어 있던 현종이 안녹산의 난 소식을 그제야 접하고 수도를 도망치게 된다. 여기서 처음 향락에 젖어 있을 때 기흥하던 기러기가 끝부분에 다시 나와 현종을 배웅하는 부분이 일품이다. 암튼 여기서부터 이 대구법의 질서는 깨지게 된다.




그러나 이후 3절, 양귀비의 비극적 죽음 앞에서도 희곡의 표현들은 다른 작품들과도 같은 시적 표현을 남발하지 않고, 상당히 절제되어 있다. 보통 노래하는 부분은 각 등장인물들이 부르는 서정시에 가깝지만, <오동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상당한 노래의 분량이 담백하게 상황만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4절.





난은 끝났다. 현종은 수도에 돌아오지만 홀로 수도권에 남아 저항하던 태자에게 이미 민심은 옮겨갔고, 현종은 이미 골방의 상황 신세다. 그는 아직도 양귀비의 초상화를 걸어다 놓고 슬퍼한다. 심지어 궁의 시녀들과 내시들이 비웃는다는 언급마저 있다.





어느 날 현종은 꿈에서 양귀비를 만난다. 평소대로 잔치를 준비해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꿈은 갑자기 깨어진다. 빗소리 때문에.




그와 양귀비가, 은하수를 바라보며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던 그곳에서, 그 오동나무, "오동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 때문에.




그제서야 현종은, 자신의 서정시를 노래한다. 




여기서 난무하는 아름다운 표현들은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그 쏟아지는 빗 속에서 절규하듯 노래하는 오동나무의 시. 현종의 그 모든 과거가 담담하게 우리의 마음 속에 쌓인 끝에 이 서정은 폭발하는 것이다.





앞서 백박이 현종에 대한 어느정도 비판적 거리를 뒀다고 말했다. 사실 그렇기에 이 마지막 노래는 더욱 우리에게 깊이 남는다. 우린 그의 사랑을 마냥 낭만적인 것으로 긍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향락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현종의 절규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우리에게 남긴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오래 남는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깊숙이에 있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