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리처드 파인만이 1963년 워싱턴 대학교에서 강연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전반적인 내용은 책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과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과학이 다른 사회 분야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에 대한 내용이다. 이 것들을 다루기 위해서 파인만이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요소는 '과학의 불확실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의 불확실성이란 쉽게 말해서 과학적 지식이란 반증되지 않고 아직까지 살아남아있는 잠정적인 결론이며, 불확실함은 피할 수 없으니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추측을 할 뿐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난 처음 이 소리를 듣고 '이론으로만 남아있는 과학적 지식은 그렇다해도 관찰을 통해 밝혀낸 지식은 확실한 진실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지만 이에 관해서 파인만은 이어서 설명한다. 규칙은 관찰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틀릴 수 있으며, 관찰이라는 실험 과정은 항상 부정확하다. 규칙은 그저 추측된 법칙이며 외삽의 결과일 뿐, 관찰에 잘 부합한다고 그 규칙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관찰이라는 그물망에 걸러지지 않은 추측이라도 그물망의 코가 점차 작아지면 그 추측도 그물망에 걸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예시로 회전하는 팽이와 정지하고 있는 팽이의 무게를 드는데, 과거 관찰의 정도가 덜 정밀했을 때 - 팽이의 무게를 10억 분의 1 그램처럼 매우 낮은 소수점 아래까지 측정할 수 없었을 때 - 에는 회전하는 팽이와 정지하고 있는 팽이의 무게가 동일하다고 여겨져 왔지만 이제 우리는 회전하는 팽이가 정지해있는 팽이보다 10억분의 1보다도 작은 크기만큼 무게가 더 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니면 회전하는 팽이의 그 회전하는 속도가 매우 빨라 빛의 속도에 근접하게 된다면 그 결과를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관찰의 결과라도 관찰의 정확도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우리가 알고있던 규칙마저 그물망에 걸릴 수 있다.

그렇다면 '사실', '법칙', '지식' 이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제대로 알지 못하는 체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그것은 당연한 것' 이다. 우리는 언제나 제대로 모르는 상태로 살아오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알아가게 되는가'에 대한 답이다. 위 예시를 현재의 사람들이 보면 정말 비과학적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파인만은 이러한 외삽을 통해 나온 법칙들은 전혀 비과학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이러한 추측조차 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비과학적 행동이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파인만은 이러한 과학적 불확실성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우리는 반드시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옳다고 생각한 것들 또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해답을 법칙이라고 굳게 믿는 다면, 영영 문제를 못 풀수도 있기에.


불확실성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 반대로 확실성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가져다 준다. 완벽함을 이루기 위한 바람때문인걸까, 사람들은 언제나 확실함을 쫓는다. 자료를 조사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의 이론을 만든다. 그러나 '그 이론이 확실한가?' 라는 질문에는 확답을 하지 못하겠다.

이 의문이 처음 생겨난 것은 몇년 전 뉴스에서 가짜뉴스에 대한 경고를 하는 보도를 보았을 때 부터였다. 인터넷에 노출되어 있는 글과 영상에는 가짜, 그러니깐 거짓된 정보가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인터넷에서 뉴스에 오보가 내보내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혼란에 빠졌다. 나는 무엇을 믿어야하는걸까? 어떻게 하면 난 진실을 찾을 수 있지? 조사한 자료가 정확한지 어떻게 알지?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이 정직한지는, 그 사람이 제대로 알고 있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애초에 내가 무엇을 직접 보았다 해도 그것을 정확히 해석을 할 수 있을까? 점차 확신은 사라지고, 의심만이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 분명한 법칙이라고 생각했던 과학적 지식이 '불확실'하다라는 말은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분명한 관찰을 통해서, 훨씬 논리적으로 만들어낸 이론들이 틀릴 수 있다는 소리는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또 하나의 분명함이 사라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파인만의 태도는 정말 새로운 모습이었다.

"만약 새로운 길을 탐색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면, 또 만약 우리가 더 이상 의심하지 않거나 무지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 . 지금 우리가 '과학적 지식' 이라 부르는 것들은 '확실한 정도가 제각기 다른 여러 진술들의 집합체' 라고 볼 수 있다. 그중에 어떤 것들은 매우 불확실하며 또 거의 확실한 것들도 있긴 하겠지만, 그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완전히 확실하지는 않다. " p 43



무엇이든 구체적인 주장을 하되 확신을 하지 않는 편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다.

이 말이 참 좋았다. 나름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진 느낌이었다. 이 책에서(정확히는 강연에서) 파인만이 이러한 접근 방식일 과학을 벗어나 다른 분야에서도 매우 유용한 것이라고 믿는다는 말에 상당히 동의한다. 확증편향이란게 존재하듯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근거를 왜곡하고 추론을 왜곡한다. 나 또한 그러했었고, 그렇기에 더욱 와닿은게 아닌가 싶다.



내가 설명한 내용은 <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의 1부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1부는 과학의 불확실성에 대해 이야기 했다면, 2부는 과학적인 관점이 정치적인 이슈에 미친 영향, 3장은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주로 리처드 파인만 본인)이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과 과학적 방식이 사회적인 문제에 어떤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상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내용은 상식적인 내용 (편차가 있을 순 있지만 다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알고 있는 내용) 이고 쪽수는 160쪽 정도 되니 상당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가볍고 상식적인 수준이라도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느냐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제시하는가에 따라 그 가치도 각각 달라진다고 믿는다. 그게 예술의 가치고 일반적인 강연 그리고 책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이미 이러한 관점을 알고 있더라도 한번쯤은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이 책을 통해 또 나름 성찰하게 된 부분이 있다면, 나는 생각보다 더 과학을 종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거. 나는 중-고등학생때 부터 종교에 매우 부정적이고 과학에 매우 긍적적이었음.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과학을 받아들이는 방식 -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이며, 수단적인 방식 - 은 이 책에서 말하는 '과학적인 방식' 보다는 오히려 '종교적인 방식' 이더라. 내가 비판하던 것이 정작 내가 긍정하던거였다는게 참 모순적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