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중 좋아하는 시 <10월> 이다. 1997년에 산 시집이니 21년 동안 내가 끌고 다닌 시집인 셈이다.
이십대 초반에는 시집들이 자체로 경전이었던 것 같다. 가만히 열어보면 군데군데로 낙서들이 있는데 물끄러미 저 글자들을 쓰다듬어 볼 때가 있다. 무슨 결기로 시집에, 볼펜으로, 저렇게나 낙서들을 많이 했을까.
어떤 페이지에서는 어떤 기억들이 고스란히 피부로 온다. 이를테면 그런 피부의 기억이 내가 아는 시의 힘이다. 머리로 오는 것이 아니라 피부로, 바로 오는 어떤 기억들이 있다.
이상한 나의 이십대 초반은 새벽에 중얼중얼 소리내어 시들을 낭송하곤 했었다. 공황과 발작의 밤, 그렇게 시 수십 편을 낭송하고 나면 지쳐서 겨우겨우 잠들 수 있었다.
그러니까 시집은 내게 교회이고 전쟁터이고 밥상이었던 것 같다. 기도하고 싸우고 밥 먹는 곳.
나는 이제 더 이상 시를 낭송하지 않고 나는 이제 기형도를 잘 읽지 않는다.
보내줄 것을 보내줘야 할 때라고 되뇌이며 아끼는 시집 몇 권을 지인들께 드렸다. 이건 왜요, 어떤 사람이 물었다. 당신이 가졌으면 좋겠다고 그냥 씨익 웃었다. 애인은 멀리에 있고 모든 게 낯설게 느껴지는 토요일 오전이다. 어디 먼 데로 가서 조용히 울고 와야겠다. 불면과 불면과 당신과 당신과 폭염과 폭염.
시인들도, 당신도, 내겐 언제나 이상기후다. 이상기후를 견디고 있다. 당신도 아마 그럴 것이다. 잘 가라, 내 것이 아닌 것들아. 가서 다른 삶을 살으렴.
그리고 언제나 나의 손은 시집 아래에 있다. 그리고 언제나 나의 발은 당신 아래에 있다.
우엑;; 메모는 싫어ㅜ
저도 좋아해서 시집 전부를 베껴 썼어요
디시에 비해 넘나 수준 높은 글인 거시다...
기형도하면 '빈집' 밖에 몰랐는데 ㅎㅎ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ㅎ
여윾시 프로는 감성의 농도가 다르냥 나같은 범인은 범접불가네 ㅋㅋ
굿!
필기는 좀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