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읽으면서 '그래, 재밌잖아? 이 정도면 잘쓴거지 뭐' 하면서 나보코프에게 세뇌된 과거를 반성하다가


뭔가 허전해서 안카 펼쳐서 읽으니깐 눈이 번쩍 뜨이네


같은 호소, 같은 심리분석, 같은 호소에 대한 부정된 반응이지만 안카랑은 비교가 안됨


라스콜리니코프가 술집에서 술주정뱅이한테 설교 듣는 장면이랑 비교해보셈


장장 14페이지 동안 비슷한 얘기를 포인트없이 주절거리는데 안카는 딱 한문단 분량으로 인물의 행동거지를 뇌리에 각인시키면서 기가막히게 끝내버림


그리고 뭣보다 그 '심리'도 안카가 훨씬 복합적임


["돌리, 내게 무슨 할말이 있겠소? ...다만 한 가지, 용서를 빌 뿐이오... 용서해줘요...

다시 생각해봐요, 9년간의 결혼 생활이 과연 순간의, 단 몇 분 동안의 잘못도 보상할 수 없단 말이오...?"

그녀는 시선을 떨어뜨리고 그가 무슨 말을 할까 하고 기대를 걸면서 듣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그가 어떻게 해서든 그녀의 의심을 풀어주기를 진정으로 비는 모습 같았다.

"그 일시적인, 넋을 빼앗긴...!" 그는 말을 계속하려 했는데,

이 한마디를 듣자마자 그녀의 입술은 마치 육체적인 고통을 받은 것처럼 다물어졌고 또다시 오른쪽 뺨의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