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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력이 막 가슴이 웅장해지고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그런 느낌은 없고 글빨 자체는 라노벨과 순수소설의 중간 같은 가벼움인데 읽다보면 자연스레 눈물 한방울 찔끔 나오는 내 마음을 훔쳐가는 소설임.
사실 세상의 순리에 역행하는 육신은 그 자체론 저주가 아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타자의 시선(남들 뿐만 아니라 본인의 마음 또한)이 주인공을 안쓰럽게 만들었을 따름이지만, 한편으론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그만한 서글픔을 남긴채 죽는것 아닐까 생각해보면 주인공이 정말로 세상에서 제일 불행했기에 눈물이 나는건 아니고 오히려 우리 주변 누군가의 순간들이었다 생각되는 지점이 이 작품의 묘미라 하겠다. 그의 인생 또한 희노애락이었지 노와 애(분노와 슬픔)만 있었던건 아니었다. 가령 유년기에는 80대의 육신과 정신이었기에 조부와 친구가 될수 있었고, 청년기에는 60대의 육신과 정신이어서 부친과 친구가 될수 있었던건 그만이 누리던 복이 아니었을까.
타인 또한 그에게 매정했지만 주인공 또한 마찬가지로 타인에게 매정했다. 한때는 장작불 같은 사랑이었던 아내가 점점 늙어가고 성냥불처럼 되가는데 반해, 본인은 젊어지니 아예 그녀를 내팽겨치고 청춘을 즐겼다.
한때는 공을 세운 전쟁영웅이었다고, 수십년이 지나 초등학생이 된 몸으로 일등병에게 명령을 내리는 대목은 그냥 주제파악을 못한거다.
중학생의 몸이 되었을땐 5, 60살인 아들에게 '나잇값 하라고' 혼이 나는 신세가 되었지만, 이게 과연 아들만 싹퉁바가지 없었던 걸까. 본인도 남들만큼 육신의 늙고 젊음에만 민감했을 뿐, 그걸 뛰어넘는 정신을 존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냥 세상이 그를 억까한게 아니라 그 또한 세상을 억까했는데, 누가 잘했네 못했네의 가치판단도 죽음에 가까워지면 그저 슬퍼질 따름이다. '그땐 왜 그랬냐 개새끼야' 에서 '그땐 이랬으면 좋았을텐데.' 의 한으로 남는다. 비범한 삶이 아니라 오히려 범용한 삶을 그려냈기에 가슴에 남는 작품이었다.
사실 세상의 순리에 역행하는 육신은 그 자체론 저주가 아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타자의 시선(남들 뿐만 아니라 본인의 마음 또한)이 주인공을 안쓰럽게 만들었을 따름이지만, 한편으론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그만한 서글픔을 남긴채 죽는것 아닐까 생각해보면 주인공이 정말로 세상에서 제일 불행했기에 눈물이 나는건 아니고 오히려 우리 주변 누군가의 순간들이었다 생각되는 지점이 이 작품의 묘미라 하겠다. 그의 인생 또한 희노애락이었지 노와 애(분노와 슬픔)만 있었던건 아니었다. 가령 유년기에는 80대의 육신과 정신이었기에 조부와 친구가 될수 있었고, 청년기에는 60대의 육신과 정신이어서 부친과 친구가 될수 있었던건 그만이 누리던 복이 아니었을까.
타인 또한 그에게 매정했지만 주인공 또한 마찬가지로 타인에게 매정했다. 한때는 장작불 같은 사랑이었던 아내가 점점 늙어가고 성냥불처럼 되가는데 반해, 본인은 젊어지니 아예 그녀를 내팽겨치고 청춘을 즐겼다.
한때는 공을 세운 전쟁영웅이었다고, 수십년이 지나 초등학생이 된 몸으로 일등병에게 명령을 내리는 대목은 그냥 주제파악을 못한거다.
중학생의 몸이 되었을땐 5, 60살인 아들에게 '나잇값 하라고' 혼이 나는 신세가 되었지만, 이게 과연 아들만 싹퉁바가지 없었던 걸까. 본인도 남들만큼 육신의 늙고 젊음에만 민감했을 뿐, 그걸 뛰어넘는 정신을 존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냥 세상이 그를 억까한게 아니라 그 또한 세상을 억까했는데, 누가 잘했네 못했네의 가치판단도 죽음에 가까워지면 그저 슬퍼질 따름이다. '그땐 왜 그랬냐 개새끼야' 에서 '그땐 이랬으면 좋았을텐데.' 의 한으로 남는다. 비범한 삶이 아니라 오히려 범용한 삶을 그려냈기에 가슴에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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