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전에 당신에게 말해둘 것이 있다. 이 글은 왜곡되었다. 이 이야기의 모티브는 현실 세계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영감을 받은 이 이야기를 현실에서 그대로 말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반대로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들도 그대로 말이나 글로 옮길 수 없다. 이게 무슨 소린가? 이야기는 현실을 그대로 시뮬레이션해서 본뜨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꾼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한 번 필터링하고 간결하게 압축한 것이다.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필터가 이야기꾼의 필터와 얼마나 차이가 심한지에 따라 왜곡되는 정도가 달라진다. 당신이 이 이야기를 꾸린 이야기꾼의 필터와 많은 차이가 있다면, 아마 줄거리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만 덮어버릴 것이다. 당신이 이 이야기꾼의 필터와 비슷하다면, 내용의 절반 정도는 격히 공감하고 동의할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역시 왜곡되어 설령 당신이 맞장구를 치더라도 그것은 당신이 당신 주관으로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임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이야기로 간추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야기꾼의 주관으로 세계를 해석했다는 뜻이고, 거기에 얹어 이 이야기가 또 한 번 당신에 의해 해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 세계는 이 세계가 아니라 그 세계이고, 당신이 나의 시선을 통해 본 세계는 그 세계가 아니라 저 세계다. 이 글은 왜곡된 언어로 쓰였다. 방금 전의 문장에서 "이"와 "그"와 "저"가 쓰였는데, 만약에 내가 쓰는 언어에 이런 지시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는 저것과 똑같은 의미의 말을 좀더 복잡하게 썼거나 아예 다른 표현으로 나타냈을 것이다. 언어는 우리의 생각을 나타내는 도구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생각도 언어의 한계에 종속된다. 서체는 그 문자가 음소문자인 알파벳인지, 표의문자인 한자인지, 조합문자인 한글인지에 따라 변형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 문체, 말투도 마찬가지로 이 말이 영어인지, 중국어인지, 한국어인지에 따라 표현할 수 있는 자유도가 다르다. 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어의 문장 구조와 한국의 문화에 어쩔 수 없이 묶여있을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의 말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어로 표현한 말은 말하는 사람의 생각과는 거리가 있다. 구술한 것 그대로 글로 옮기면 문장이 성립되지 않는다. 순간의 분위기, 문맥을 상대방이 읽어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그걸 생략해버리고 말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문장 구성에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거의 대부분의 말을 문장으로 그대로 옮기면 비문이 된다. 상황 자체를 말뿐만 아니라 시각과 청각, 직감으로 읽는 경향이 큰 한국어에서 스물 여덟자의 문자로밖에 구사할 수밖에 없는 문학은, 얼마나 생활에서 동떨어지는 것일까? 평소에 잘 쓰지 않았던 부가적인 정보들을 일일이 추가하고, 문맥을 알아채도록 힌트를 여기저기 넣다보면 어느새 한국어는 인공어가 되어있다. 인공어의 특성이 섞인 한국어를 현실에서 유려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이 나라에 몇 명이나 될까?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작가가 되는 것일테다. 나는 여기서 유려한 언어로 문장을 쓰지 않을 것이고, 그럴 능력도 "안 된다". ("되지 않는다"라고 부정어를 동사 뒤로 빼서 쓰는게 비문학에서는 바람직하지만 여긴 문학이니까.) 문장에서 추가적인 정보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말하지만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이지 않은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라도 완벽하게 이해가 어려울 것이다. 언어가 왜곡되어 있고, 나조차도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걸 감안하고 읽어줬으면 좋겠다. 얘기는 이쯤 해두고, 서사로 넘어가자.
[일반] 『머릿말』
익명(118.235)
2022-09-09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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