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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원래 자기계발서를 잘 안읽는다.


일단 별로 재미도 없고... 사실 어차피 읽으나마나 뻔한 소리 아닌가. 자계서에서 떠들어대는 말들을 누가 몰라서 못하나? 아는데 못하는 거지.


물론 자계서가 동기부여를 줄 수는 있겠지만 시험기간에 에너지드링크를 마시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짜 효율을 높여준다기보단 잠깐 펌핑된 기분만 느끼게 해주는.


그래서 책을 읽는다면서 자계서만 읽는다는 사람들을 보면 개인적으로 좀 의아하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항상 흔들리는 존재고, 맘먹은 대로 일이 항상 잘 풀리는건 아니기 때문에, 가끔씩 다잡아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뭣보다 원래 안다고 생각했던 것도 다른 사람이 고민하고 고심하면서 써놓은 글로 읽으면 다르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물론 여기서 전제는 저자가 열심히 고민하고 고심하면서 쓴 글이어야 한다는 거고.


'부모를 실망시키는 기술'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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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미하엘 보르트는 예수회 신부라고 하는데 뮌헨철학대학 학장도 지냈단다. 보다시피 머리가 시원하게 벗겨졌는데도 만면에 미소를 띠고 계신 게 마음씀씀이가 참 너그러운 신부님일 것 같다. 탈모 가지고 놀려도 허허 웃으면서 받아줄 것 같은 인상이다. 무교인데도 저절로 고해성사가 하고 싶어진달까.


위키피디아를 보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희랍철학을 전공한 학자라고 한다. 비트겐슈타인과 언어철학도 공부하신 것 같은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연구만 하기보다는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는 학자인 것 같다.


'부모를 실망시키는 기술'도 무슨 기업인을 대상으로 하는 리더십강의에서 시작한 책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강연록 같은 느낌도 있다. 읽기 쉽다는 뜻이다. 알라딘에서는 자기계발 > 성공학으로 분류되어 있고 예24에서는 자기계발 > 처세술/삶의 자세로 분류되어 있다. 교보문고는 가정/육아 > 자녀교육으로 분류해놓았더라.


다 맞는 말이다. 부모가 읽으면 자녀교육 책이고, 자녀가 읽으면 자기계발서라고 볼 수 있다. (성공학으로 분류해놓은건 좀 애매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사짜냄새 진하게 나는 그런 종류의 싸구려 자계서는 아니다. 딱 선하고 수더분한 독일인 아저씨가 썼을 법한 인상인데, 단조롭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책이다. 누가 전공이 고대희랍철학 아니랄까봐 자기수양 분위기가 물씬 난다. 스토아철학 같기도 하고.


이렇게 들으면 무지 재미없는 책일거 같은데... 전혀 아니라고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읽어볼만은 하다.


왜냐면 세상 어느 천지에도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책이 짧아서 금방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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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번장에서 퍼옴)


사실 제목 때문에 읽게 된 책이다. 나는 부모님과 그럭저럭 관계가 원만한 편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부모님과 있을 때 완전히 편안하지는 않다. 뭐 딱히 특이한 건 아니지 않나? 청소년기를 지난 자녀라면 대부분 그렇지 않나 싶다.


이 책의 원제는 Die Kunst, die Eltern zu enttäuschen다. 굳이 원제를 언급하는 까닭은 Kunst가 독어로 예술이니 어쩌니, 옛날옛적 그리스에선 예술과 기술이 같은 말이었느니 하는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고, enttäuschen라는 단어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enttäuschen는 독어로 '실망시키다'는 뜻이다. ent는 '제거한다'는 뉘앙스의 접두사고, täuschen는 재귀동사로 쓰면 '오해하다, 착각하다'라는 뜻이다. 요컨대 독일어로 '실망시킨다'는 것은 '착각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대강 이 책이 무슨 내용인지는 대충 다들 눈치챘으리라 믿는다. 왜, 자식을 가장 모르는 사람이 부모라고 하지 않던가. 꼭 부모에게만 국한시킬 것도 없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다 '나'를 잘 모른다. 그리고 때로는 나조차도 나 자신을 잘 모르기도 한다. 인간은 착각의 동물이다.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아마 저자는 인지주의 심리학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실망이 야기하는 감정의 문제에 집중하고,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갈망과 필요를 차분히 검토할 것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권고한다.


저자는 "스스로 한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이미 도달했거나 한번 경험했다고 해서 다시 잃어버리지 않는 부동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부모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조건 대립하는 관계뿐만 아니라, 겉보기에 무난해 보이는 관계라고 해도 실은 부모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고도 말한다. 갈등을 외면하는 것도 물론 지양해야 한다. 저자는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용기를 준다. 우리가 우리 삶을 제대로 꾸려가기 위해서는 "화해한 마음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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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추석만 되면 큰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면서 정작 부모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덕광후 만화가 떠오른다. 나 자신도 어릴 때 그런 적이 있을뿐더러, 한국사회에서 가족이라는 것의 함의가 복잡하다 보니 꽤나 보편적인 명절 풍경이 아닌가 싶어서다. '부모를 실망시키는 기술'은 이처럼 가족이 뭔가 불편하게 느껴지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곤란함을 겪을 때 한 번쯤 읽어보면 어떨까 싶은 책이다. 그런다고 문제가 술술 풀리지는 않겠지만, 문제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추신) 특히 부모와의 관계를 잘못 형성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노아 바움백의 영화 '오징어와 고래', '마이어로위츠 이야기'도 같이 볼 것을 추천한다. 짧고 재미있는 영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