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뽈리트의 헤겔과 테일러의 헤겔 핀카드의 헤겔 코제브의 헤겔이 다 다르고
푈레스달의 후설과 드레이퍼스의 후설 매킨타이어의 후설도 다르고
(당시 니체 철학을 '해설' 하다시피 했던) 들뢰즈의 니체 하이데거의 니체가 다 다름.
2차 문헌은 그 철학자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그 철학자에 대한 해석임.
그 철학자에 대한 완전한 상(象)은 1차 문헌에서 "내보여지는" 것의 기체(基體), 즉 칸트의 Ding an sich처럼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이지, 우리의 독해와 다른 2차 문헌들은 그저 해석일 뿐임.
우리는 해석을 통해서만 텍스트를 인식할 수 있는데, 그러므로 우리는 텍스트 그 자체를 (원저자가 아닌 한)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함. 텍스트는 말의 체계이고 의미는 언어규범에 따라 읽으면서 부여되는 거임. 다만 개별 문장들의 연관을 통해서 내용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뿐임.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데리다)
다시 말해서 텍스트는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함.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2차 문헌이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라, 단지 2차 문헌이 절대적인 설명이 될 수는 없다는 걸 말하려고 하는 거임.
책 이야기: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민음사 번역 괜찮을까? 김상환 교수님 번역인데 알라딘 100자평 보니까 번역이 안 좋다고 하네.. 뭐가 안 좋은지, 뭐가 오역인지 말도 없어서 잘 모르겠음...
ㄹㅇ
지적 없이 오역이라고 하는 책들 대부분 보면 원서부터가 ㅈ같은 책들이던데
2차 문헌도 보나보면 수준차이 갈림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수준은 아님
매우 공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