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미술사 미술관)을 포함한 마로니에 북스에서 출간한 미술관 투어책을보면 거의대부분의 화가들이 9살 10살때부터 스승한테 개쳐맞아가면서 도제로 시작했다.
현대미술교육에서는 없는 일임 현대미술교육은 전공생과 비전공생을 나누고 전공했다고 해도 지나가는 아마추어 1보다 그림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기수일 정도로 의미가없음 특히 조각이나 공예쪽은 전공생보다 노가다 십장아저씨들이나 아줌마들이 압도적으로 잘만들어 졸작 대가수와 현직작가 작품들도 이들이 외주를 받는다.
즉 전공과 비전공의 의미가 없다.
하지만 미술시장은 전공생들 위주로 돌아간다. 적어도 미술시장에서 작가다 소리들을라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이상 미대 를 나와야만 한다. 이는 암묵적 조건이다. 이는 작가가 개념을 제시하고 기술자들은 기술만 빌려줬으므로 작가가 아니라는 취지다.
작가는 곧 예술가다. 예전 에는 기술자들도 예술가였으나 요즘 시절에는 작가만이 예술가다.
이는 기계가 더 정밀화되어 인간이 노려볼수조차 없는 상황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미술에서 제시하는 개념이 그렇게 새로운것인가? 하는 의문에 봉착한다. 개념이라는 것은 결국 외부 자극을 통해 만들어지니 우리 사회문화정치철학유행에 함몰될수 밖에없다.
이는 결국 사회안에 가치게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로써 미술은 현실을 능가할수가없다. 이로써 미술교과서에 흔하게있는 시대를 넘어서거나 앞선 선구자적 작가들은 더 이상 없다.
다른 예술은 어떠한가 생각해보자.
60년대이후로 문예창작과과 보편화되면서 수많은 문예창작 전공생들이 나왔다. 소설,시, 희곡,시나리오 등등 전방위적으로 수많은 전공생들이 매년나온다 그러나 대다수는 한편도 외부에 공개되지못한다.
주된이유는 아무도 이들의 돈주고 사지않기때문이다. 오히려 전공을 하지않른 사람들의 작품이 돈을 더 번다. 현재 웹소설 을 쓰는 인구 대다수는 전공과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전공한 자들이 웹소설에 오면 많은수가 망하고야 만다.
물론 돈버는 작품이 최고의 작품은 아니다가 문예창작의 기본이고 예술적 특이성이다. 하지만 문예창작 학과를 나온다고 해서 그사람들이 쓴 작품의 질이높은 것은 아니다.
독서갤러리 감상 파트만 봐도 쉽게알수가있다. 독갤에서 언급 되는 가들은 지망생이아닌 전문작가들인데도 그러하다. 특히나 한국은 전문작가대다수가 전공생인데도 그러하다. 이유는 무엇인가.
동아시아권에서는 귀족이라면 문예가 필수이며 관직을 얻을수있고 출세의 길이라 더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 나이를 먹든 어리든간에 비평과 비판의 대상이었다.
문체라고 하는 특유의 방법론은 수양의 원천이었는데 오늘날 쓰이는 문체와라는 뜻과 다르게 문체라는 것은 자기 자신 그자체다.
자신이 엉망이면 글도 엉망이된다. 그러다보니 수양을 할수밖에없다. 수양이라는 것은 공부이고 공부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이는 엄격해 대중 소설과 사대부 들이 쓴 문학을 분리시켰고 순문학과 장르 문학이라는 동아시아 특유의 문학문화를 만들어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문화는 상실되었다. 더이상 글을쓰는데 자신을 오롯이 보여줄 필요도없으며 무언가에 정통할 필요도 없고 식견을 보여줄 능력을 가지고있지않아도 된다.
작가와 작품이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이론인데 서양에서도 작품은 곧 작가였지만 이로인해 수많은 작가들이 글때문에 목숨을 잃어버리거나 처벌을 받고 인생나락으로가는 일이빈번해지자 결국 작가들은 작품을 포기하고 해석의 우월성을 인정해버렸다.
해석의우월성인정은 순문학의 죽음을 가져왔다. 생각이야말로 순문학의 원천이자 통속 문학의 재료인 여러 민담들과 자극위주의이야기 전설 기타등등과 동급이다. 하지만 해석이 중요해지면 작가가 무슨 생각을 하던 중요하지않다. 오로지 해석자의 의중만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러니 더이상 좋은 작가는 순문학에서는 나오지않는다.
통속 문학에서밖에 나올수없는데 통속 문학에서 작가의 존재감은 예전부터 워낙 옅기때문에 대문호는 나올수가없다. 인기작가 면 모를까. 이는 통속 문학을 낮게보는것이 아니라 인기라는 영역이 크게차지하는 것이 통속이기때문이다. 인기는 영원한것이 아니다.
현대미술교육에서는 없는 일임 현대미술교육은 전공생과 비전공생을 나누고 전공했다고 해도 지나가는 아마추어 1보다 그림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기수일 정도로 의미가없음 특히 조각이나 공예쪽은 전공생보다 노가다 십장아저씨들이나 아줌마들이 압도적으로 잘만들어 졸작 대가수와 현직작가 작품들도 이들이 외주를 받는다.
즉 전공과 비전공의 의미가 없다.
하지만 미술시장은 전공생들 위주로 돌아간다. 적어도 미술시장에서 작가다 소리들을라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이상 미대 를 나와야만 한다. 이는 암묵적 조건이다. 이는 작가가 개념을 제시하고 기술자들은 기술만 빌려줬으므로 작가가 아니라는 취지다.
작가는 곧 예술가다. 예전 에는 기술자들도 예술가였으나 요즘 시절에는 작가만이 예술가다.
이는 기계가 더 정밀화되어 인간이 노려볼수조차 없는 상황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미술에서 제시하는 개념이 그렇게 새로운것인가? 하는 의문에 봉착한다. 개념이라는 것은 결국 외부 자극을 통해 만들어지니 우리 사회문화정치철학유행에 함몰될수 밖에없다.
이는 결국 사회안에 가치게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로써 미술은 현실을 능가할수가없다. 이로써 미술교과서에 흔하게있는 시대를 넘어서거나 앞선 선구자적 작가들은 더 이상 없다.
다른 예술은 어떠한가 생각해보자.
60년대이후로 문예창작과과 보편화되면서 수많은 문예창작 전공생들이 나왔다. 소설,시, 희곡,시나리오 등등 전방위적으로 수많은 전공생들이 매년나온다 그러나 대다수는 한편도 외부에 공개되지못한다.
주된이유는 아무도 이들의 돈주고 사지않기때문이다. 오히려 전공을 하지않른 사람들의 작품이 돈을 더 번다. 현재 웹소설 을 쓰는 인구 대다수는 전공과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전공한 자들이 웹소설에 오면 많은수가 망하고야 만다.
물론 돈버는 작품이 최고의 작품은 아니다가 문예창작의 기본이고 예술적 특이성이다. 하지만 문예창작 학과를 나온다고 해서 그사람들이 쓴 작품의 질이높은 것은 아니다.
독서갤러리 감상 파트만 봐도 쉽게알수가있다. 독갤에서 언급 되는 가들은 지망생이아닌 전문작가들인데도 그러하다. 특히나 한국은 전문작가대다수가 전공생인데도 그러하다. 이유는 무엇인가.
동아시아권에서는 귀족이라면 문예가 필수이며 관직을 얻을수있고 출세의 길이라 더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 나이를 먹든 어리든간에 비평과 비판의 대상이었다.
문체라고 하는 특유의 방법론은 수양의 원천이었는데 오늘날 쓰이는 문체와라는 뜻과 다르게 문체라는 것은 자기 자신 그자체다.
자신이 엉망이면 글도 엉망이된다. 그러다보니 수양을 할수밖에없다. 수양이라는 것은 공부이고 공부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이는 엄격해 대중 소설과 사대부 들이 쓴 문학을 분리시켰고 순문학과 장르 문학이라는 동아시아 특유의 문학문화를 만들어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문화는 상실되었다. 더이상 글을쓰는데 자신을 오롯이 보여줄 필요도없으며 무언가에 정통할 필요도 없고 식견을 보여줄 능력을 가지고있지않아도 된다.
작가와 작품이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이론인데 서양에서도 작품은 곧 작가였지만 이로인해 수많은 작가들이 글때문에 목숨을 잃어버리거나 처벌을 받고 인생나락으로가는 일이빈번해지자 결국 작가들은 작품을 포기하고 해석의 우월성을 인정해버렸다.
해석의우월성인정은 순문학의 죽음을 가져왔다. 생각이야말로 순문학의 원천이자 통속 문학의 재료인 여러 민담들과 자극위주의이야기 전설 기타등등과 동급이다. 하지만 해석이 중요해지면 작가가 무슨 생각을 하던 중요하지않다. 오로지 해석자의 의중만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러니 더이상 좋은 작가는 순문학에서는 나오지않는다.
통속 문학에서밖에 나올수없는데 통속 문학에서 작가의 존재감은 예전부터 워낙 옅기때문에 대문호는 나올수가없다. 인기작가 면 모를까. 이는 통속 문학을 낮게보는것이 아니라 인기라는 영역이 크게차지하는 것이 통속이기때문이다. 인기는 영원한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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