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판소.

풀어서 양산형 판타지 소설.

이 장르의 가장 큰 특징은 정형화된 스토리 구조와 빠른 창작 속도,

그리고 표절이라는 말이 성립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관행처럼 성행하는 자기네들끼리의 복제겠지.


문체적 특징은 의성어, 의태어 등의 잦은 사용은 물론 말의 억양이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물결표, 화살표, 말줄임표, 이모티콘까지 사용된다는 것.


내용적 특징은 힘든 삶을 보내던 청년이 기연으로 인해 힘을 얻게되고 노력과 재치, 그리고 조력자의 도움으로 그 힘을 불려

이를 통해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고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고 좋은 친구들과 연인까지 얻게 되는 영웅의 일대기 구조를 취한다는 것.


그 외 최근 웹소설로 연재되는 양판소는 작가와 독자의 거의 실시간 대화가 이루어지며 이 소통이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한다는 특성도 있지.


나는 이 모든 양판소의 특징이 구비문학의 특징과 유사하다고 생각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 이전에 시작된 문학.

신화나 설화, 전설, 민담 같은 것. 판소리 같은 작품들도 여기에 포함되고.


이들 문학의 특징은 구연, 공동 창작, 보편성, 단순성, 민중성인데 양판소는 이런 특징들을 거의 완전히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여.

누군가의 작품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덧붙이고, 또 다른 사람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덧붙여 새 작품을 연재해가는 방식이 공동창작이나 다름없음은 양판소 좀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테고.

보편성이나 단순성, 민중성도 확연히 드러나는 편이라고 생각해.

그 외에도 누구나 창작가가 될 수 있으며 창작자층과 독자층이 일치한다는 점 등도 구비문학과의 유사성이지.

문제는 구연이라는 부분인데, 양판소가 문자로 기록되는 이상에는 구연을 충족하기는 힘들지. 대화상황에서 작품이 나타나는건 아니니까.

그렇지만 앞에서 언급한 양판소의 문체적 특징은 구어에서 나타나는 표현들을 문어로 옮기면서 나타난 특징으로, 양판소가 적어도 구어체에 가까운 표현을 쓰고 있다는건 틀림없어.

게다가 최근에는 양판소가 인터넷으로 장소를 옮겨 디지털문자화 되면서 더더욱 구어적인 상황이 나타나지.

작가와 독자간의 대화는 활발히 이루어지고, 이 대화를 통해 작가는 앞의 내용을 번복하고 내용을 수정한다던가, 독자들이 보고싶다고 요청하는 부분을 먼저 보여주기도 하니까 말이야.

이야기를 하는 중간중간에 오늘은 피곤하니까 여기까지 하겠다던가 자신도 등장인물 ㅇㅇ은 정말 나쁜놈이라고 생각한다던가 하는 내용을 적는건 정말 구연적으로 느껴지기도 해.

작품 내용에 대해 자기들끼리 수근거리는 댓글창은 구연자 앞에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하는 청론자들 같기도하고 말이야.


내가 언급을 안 한, 구비문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어.

그건 바로 구비문학이 당대의 사회상과 하층민의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내는 문학이라는거야.

실상 문자시대로 넘어간 이후에도 구비문학은 끝없이 창작되었어.

하층민들에게 문자는 지배자들의 전유물이었고, 감히 문자로 된 문학을 감상할만한 기반지식 따위는 당연히 없었을테니까 말이야.

그들이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가장 쉬운 수단은 그네들의 말이었겠지.

자신들의 소망을 담은 이야기를 지어내는거야.


양판소라고 대체 뭐가 다르겠어?

고전을 탐독할만한 교육도 받지 못했고 이를 감상하기 위한 시간여유를 내기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양판소만큼 쉬운게 뭐가 있을까.

맞춤법도 엉망이고 글 내용도 단순하다 못해 저열하다고 할지언정, 양판소는 그 어떤 현대소설보다도 생생하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인 것 같아.

그 글을 쓴 사람은 교육받고 자랐으며 문학적 기반이 탄탄하고 문단에 등단까지 성공한, 우리와는 다른 작가가 아니라

상사 눈치보는데 질린 직장인, 대학은 졸업했지만 취직도 못하고 하릴없이 시간만 버리는 백수, 고등학교를 빨리 탈출하고 싶은 야자 중인 학생이 쓴 글이니까.


그런 사람들이 쓴 글이기에 글에는 그런 사람들의 욕구와 생각이 깔려있어.

재밌는건 매 시대마다 수천개의 글이 거의 똑같은 트렌드를 유지하다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욕구가 변하면 글의 트렌드도 순식간에 바뀌어버린다는거야.


예컨데 예전엔 선한 주인공이 인기있었지만 지금은 모르는 이를 돕기보다는 제 주변사람 몇명만 챙기며 하고 싶은건 뭐든지 다하는 주인공이 인기야.

모르는 사람 도와봤자 이로울 것 하나 없다는 생각이 짙게 깔려있는거지.

또 요즘은 상태창이 나오지 않는 소설이 없어.

예전에는 의지로 강한 적을 물리친다는, 남들이 못할거라고 말하는 위업을 이루는 주인공이 경탄의 대상이었다면

요즘에는 명확히 평가받는 수치가 존재하고, 그 수치가 남들보다 높은 주인공이 경탄의 대상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그렇게 명확하게 자신의 수치를 알고 이를 바꿔나가고 싶다는 욕망일수도 있고.

가장 최근의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타인에게 인정받는 듯한 묘사가 눈에 띄게 늘었어.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우스갯소리로 주인공이 라면만 끓여도 라면을 맛있게 끓였다는 주변인물들의 경탄이 꼭 나와야하는게 요즘 판타지 소설이라고 말해.

그런 모든 것들에 굶주린 사화가 현대 사회인 거겠지.


길게 이야기를 끌었네. 결론을 말하자면, 양판소도 다른 모든 소설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쓸모가 있다는거야.

여기엔 고차원적인 정신적 깨달음이나 아름다운 운율, 잘 꾸며져서 감동을 주는 격식있는 문체따위는 없어.

그렇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이 박혀있지.

양판소도 그렇고 인소도 그렇고 어쩌면 일일 연속극이나 라노벨도 그래.

그 꿈이 저열하고 유치하다며 무시하기보다는, 한번쯤 같이 꿈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