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체제의 질서를 유지 보수하는 상층계급 - 인간
기존체제를 와해시켜 자신이 상층계급이 되고자하는 중간계급 - 돼지
모든 차별을 폐지하여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하층계급 - 쩌리동물들
이는 실제로
인간 사회의 현실이다.
조지오웰이 동물농장에서 말하는 것은
역사의 순환 과정에 대한 고찰 의식임.
자유와 정의라는 가치를 내세워 하층계급을 규합한 중간계급은 상층계급을 전복시킨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한 후 하층계급을 다시 노예 신분으로 전락시키고 스스로 상층계급이 된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 정의와 같은 올바름은 단순하게 그들이 상층계급이 되기 위한 투쟁의 수단이었음을 의미함.
하층계급의 입장에서 볼 때 역사적 변화란 그들의 주인이 바뀌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즉 역사를 순환 과정으로 인식하여 불평등을 인간 사회의 변하지 않는 부동의 법칙으로 해석하는 견해임.
다만 오웰의 위와 같은 고찰이
무엇을 목적으로 두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음.
그가 단순히 현실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불평등의 섭리를 주창ㅡ그러한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는ㅡ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불평등이라는 확고부동한 법칙을 무너트리고자 그 법칙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독자에게 심어주기 위함인지.
이건 각자 판단의 몫임.
다만 나는 오웰의 소설을 읽고 불평등이라는 부동의 법칙을 타파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자각함.
모두가 불평등을 기저로 살아간다. 평등을 주장하는 이들도 다를게 없다. 그들은 모순을 가질 뿐이다. 너는 다르다고 생각하나?
인간에 의해서 평생을 억압 속에 살아가는 가축의 입장에서 보았을때
평등을 주장하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들 간에 차이가 존재하는가? 무엇이 다르지?
동물들이 보기에는 모두가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런 동물들도 인간과 다르지 않다.
[열두 개의 화난 목소리들이 서로 맞고함질을 치고 있었고, 그 목소리들은 서로 똑같았다. 그래, 맞아,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창 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나의 삶은 반드시 누군가의 죽음을 불러온다.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자유의지는 무엇으로부터 도출되는가? 타인을 억압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모두가 억압받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자유를 실현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 사상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모두를 억압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 내가 살아가기에 타인이 죽는 것이다. 나는 살아가기에 죽는 것이다.
"길이라는 것이 무엇이건, 그것은 살인자다" [조국의 기록][내적 시평] (1875, VI, p. 262)
기존체제를 와해시켜 자신이 상층계급이 되고자하는 중간계급 - 돼지
모든 차별을 폐지하여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하층계급 - 쩌리동물들
이는 실제로
인간 사회의 현실이다.
조지오웰이 동물농장에서 말하는 것은
역사의 순환 과정에 대한 고찰 의식임.
자유와 정의라는 가치를 내세워 하층계급을 규합한 중간계급은 상층계급을 전복시킨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한 후 하층계급을 다시 노예 신분으로 전락시키고 스스로 상층계급이 된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 정의와 같은 올바름은 단순하게 그들이 상층계급이 되기 위한 투쟁의 수단이었음을 의미함.
하층계급의 입장에서 볼 때 역사적 변화란 그들의 주인이 바뀌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즉 역사를 순환 과정으로 인식하여 불평등을 인간 사회의 변하지 않는 부동의 법칙으로 해석하는 견해임.
다만 오웰의 위와 같은 고찰이
무엇을 목적으로 두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음.
그가 단순히 현실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불평등의 섭리를 주창ㅡ그러한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는ㅡ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불평등이라는 확고부동한 법칙을 무너트리고자 그 법칙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독자에게 심어주기 위함인지.
이건 각자 판단의 몫임.
다만 나는 오웰의 소설을 읽고 불평등이라는 부동의 법칙을 타파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자각함.
모두가 불평등을 기저로 살아간다. 평등을 주장하는 이들도 다를게 없다. 그들은 모순을 가질 뿐이다. 너는 다르다고 생각하나?
인간에 의해서 평생을 억압 속에 살아가는 가축의 입장에서 보았을때
평등을 주장하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들 간에 차이가 존재하는가? 무엇이 다르지?
동물들이 보기에는 모두가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런 동물들도 인간과 다르지 않다.
[열두 개의 화난 목소리들이 서로 맞고함질을 치고 있었고, 그 목소리들은 서로 똑같았다. 그래, 맞아,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창 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나의 삶은 반드시 누군가의 죽음을 불러온다.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자유의지는 무엇으로부터 도출되는가? 타인을 억압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모두가 억압받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자유를 실현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 사상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모두를 억압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 내가 살아가기에 타인이 죽는 것이다. 나는 살아가기에 죽는 것이다.
"길이라는 것이 무엇이건, 그것은 살인자다" [조국의 기록][내적 시평] (1875, VI, p. 262)
한편으론 돼지마저 없어진 세상을 안 보여줘서 아쉽긴 함. 내 초딩시절 머리로는 그저 돼지(소수 인간)만 태생적으로 나쁜놈들이라고만 생각함
평등이란 존재할수없는것 소수의 매우 똑똑하거나 매우 멍청한 사람외에는 자유도 존재하지않는게 인간사회지 정의와 도덕도비슷한 맥락임 동물 짐승과 다를바가 없는게 사람인데
지배자계급인 인간을 돼지의 자리로 격하시켜 인간과 부르주아 혁명가계급 전부를 비판하는 작품임
그 작품을 이해하려면 작품의 시대상 역시 이해해야 하는데, 동물농장이 나온 1945년은 자본주의(대공황)든 사회주의(대숙청)든 간에 각자의 모순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혼란기였음. 오웰의 눈에는 어느쪽이든 좆같았을 거임
네 감상에서 문제의 해답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하는데, 시대상을 생각하면 당연함. 근데 그걸 가지고 타파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게, 그건 40년대 마인드이기 때문임. 실제로 소련은 내부의 모순으로 인해 붕괴했고, 자본주의는 수정되어서 좀 더 복지와 인권을 신경쓰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됨
다만 그렇다고 해서 불평등이 사라지는건 아니잖아? 복지가 지속적으로 향상되어도 완전한 평등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불평등은 계속되는 것임. 결국은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전과 다를게 없다는 것이고. 단순하게 전보다 더 나아졌으니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간단한 문제 였으면 애초에 본문과 같은 사고를 안했음.
완전한 평등은 이데아에서나 볼법한 공상임. 나아지고 나아가려고 생각해야지. 실제로 인류 사회는 오웰의 시대와 비교해서 엄청 발전함
나아진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거지? 실제로 나아지고 있는 것이 맞다고 생각함? 그 '나아짐'이라는 방향성 자체가 불변하는 진리라도 된다고 생각하냐 이 말임.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에서 그러한 형이상학적인 사고가 무슨 소용이 있는 거냐? 무엇이 나아짐이냐? 그것을 본질적으로 정의 할 수 있냐?
'나아짐'이라는 본질적 정의가 가능한 사고체계는 오로지 전체주의 체제 내에서만 가능하다. 개인이 개인이기를 포기하고 전체가 된다면 전체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존재하게 되며 전체주의는 불변의 존재가 된다. 그러한 불변의 체계내에서만 '나아짐'의 본질적 정의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한 불변한 체계가 기준이 되지 않는다면 나아짐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에 불과하다. 하층계급은 언제나 억압을 받는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하층계급의 입장에서 볼 때 역사적 변화란 그들의 주인이 바뀌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냥 원시시대에도 계급이 있고 지금도 계급이 있는데 '진짜로' 후자가 전자랑 같다고 생각하면 넌 그냥 멍청이임ㅋㅋ
그리고 어느 시대건 하급자와 상급자가 있었지만 상급자를 그저 핍박하는 존재, 하급자를 핍박당하는 존재만으로 해석한다면 진짜 단편적인 시각임. 사회계층은 유동적이고 언제나 상호작용함
당장 공자 맹자의 시대에도 하급자에 의한 반란이 존재했고 상급자는 하급자를 잘살게(굶주리지 않도록, 침략당하지 않도록, 교육받도록) 해야하는 지배자로서의 의무가 존재했음. 수천 년 동안 상급자가 이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사회는 내부적으로 반드시 문제가 생겼고 지배계층 자체가 바뀌기도 했음. 동물농장 역시 그걸 보여주고 있고
다시 동물농장으로 돌아가서... 나폴레옹이 결국 새로운 독재자가 되었다는게 현실을 반영하는 거라면, 소련이 몰락하고 소비에트 연방 구성국 대부분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 되돌아가는 '현실'도 반영해야 하지 않겠음? 거시적으로 볼 때 독재자는 항상 권력을 잃었고 교체되었음. 새로운 독재자가 나타날지 안나타날지는 그 국가의 남은 구성원, 국민에 달린 거임
내가 무슨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ㅋㅋ
내가 말하는건 불변하는 사고 체계가 아닌 이상 나아짐이라는 본질적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것임.
@ㅇㅇ(58.229) 대공황은 사실 자본주의 문제가 아니지만
소련 까는 책이잖아 소련 건국부터 2차대전까지 거의 역사책 급으로 써놓은 책
특히 기억에 남는게 레닌박제 돌려까기하고 소련국가 돌려까기 ㅋㅋ
그 정도로 단순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함. 조지오웰의 작품이 고평가를 받는 이유는 그런 간단한 이유에서가 아니라고 생각함. 생각보다 사고에 대한 통찰력이 상당히 요구되는 어려운 작품이고 그만큼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 문학을 넘어선 상당히 철학적인 작품임
단순한 책 맞을걸? 오웰은 사상가도 아니었고 오히려 저널리스트였음 게다가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니가 말하는 불평등의 부동성? 그런 건 주장할 턱이 없지.. 자신이 사랑하는 마르크스주의를 왜곡하고 망쳐버린 소련 특히 스탈린에 대한 비판의 마음을 통렬한 풍자로 드러낸 작품이지.. 솔직히 이게 주류 해석인데 네 해석을 갖고 오려면 오웰이 그런
식으로 불평등을 부동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저작물이 발견돼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고.. 책을 읽고 나서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지만 오웰의 생각이 그렇다고 예단하는 건 너무 경솔하지
나의 해석이 아니라 조지오웰의 작품 자체가 불평등을 주창하고 있는게 사실이니 그런거지. 애초에 조지오웰이 사회주의자든 머든 간에 소설속에서 그는 평등을 논한 적이 단 한번도 없음. 오히려 불평등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만을 담고 있을 뿐이지. 불평등을 부동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저작물? 넌 도대체 뭔 책을 읽은거냐?
조지오웰은 소설속에서 불평등 만을 논하고 있음
아 님 글 잘못 읽었네 ㅈㅅㅈㅅ
사회주의자인 그의 입장에 의하면 그의 목적이 불평등에 대한 혐오감을 조성하는 행위인 것은 인지한다. 다만 목적이 어떠하든 간에 그가 소설속에서 주장하는 것은 불평등이였지 평등이 아니였음. 누구든 그의 소설을 보고 불평등에 대한 혐오감을 느낄 수는 있어도 그러한 불평등의 해결책을 깨달을 수는 없음.
1. 중간계층이 상층계층을 전복시킨다고 볼 수는 없음. 동물농장에서 혁명의 주체는 명백히 하층계급이고 돼지는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음. 2. 불평등이 불변의 원칙이라고 주장한다고 볼 수없음.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을 쓰기 전 사회주의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카탈루냐 찬가를 쓴 사람임. 3. 동물농장의 결말은 순환이 아니라 역사발전의 종말로 해석해야함. 즉 카드게임하다가 싸우는 것은 소련이 사회주의를 왜곡함으로서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영구적인 전쟁으로 돌입한다고 해석하는게 옳음. 4. 무엇보다 조지 오웰은 미공개 서문하고 우크라이나어판 서문에서 역사발전따위는 전혀 언급안하고 볼셰비키의 죽음... 사회주의의 구원... 만 주구줄창만 언급하고 있음.
유사 이래, 아니 신석기시대 말기 이후로 지구상에는 상 중 하라는 세 계급의 사람들이 살아왔다. 그들은 다시 여러 갈래로 나뉘어졌고, 저마다 이름이 다른 수많은 후손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그들 상호 간의 인구수와 함께 그들 상호간이 태도도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했다.
그러나 사회의 본질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엄청난 격변과 결정적인 변란이 일어난 후에도 마치 팽이가 이리 맞고 저리 맞아도 언제나 균형을 되찾는 것처럼 동일한 사회의 양상이 재현되어 왔다.
이들 세 집단의 목표는 그야말로 제각각이다. 상층계급의 목표는 현재의 상태를 고수하는 것이고, 중간계습의 목표는 상층계급으로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하층계급이 목표를 가졌다면ㅡ이들은 대부분 단조롭고 고된 일에 지친 나머지 일상생활 외의 다른 어떤 것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ㅡ그것은 모든 차별을 폐지하여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유사 이래 본질적으로 똑같은 투쟁이 끊임없이 반복해서 일어났던 것은 바로 이처럼 저마다의 목표가 상충되었기 때문이다. 상층계급은 오랜 기간 권력을 안정하게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만간 신뢰나 효율적인 통치 능력 중 한 가지를 잃거나 두 가지를 다 잃어버리는 순간이 그들에게 닥친다.
그러면 중간계급은 자유와 정의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여 하층계급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상층계급을 전복시킨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하층계급을 다시 옛날의 노예 신분으로 전락시키고 스스로 상층계급이 된다.
이때 새로운 중간계급는 다른 두 계급 중 하나에서 분리되거나 양쪽 계급에서 분리되어 나오는데, 이로 인해 투쟁이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이 세 계급 중에서 하층계급만이 단 한순간도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하층계급의 입장에서 볼 때 역사적 변화란 그들의 주인이 바뀌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니가 말한 1. 2. 3은 내 의견이 아니라 조지오웰의 의견임. 위 댓글은 1984내용을 발췌한 것이고, 거기에 맞춰서 동물농장에 대입 시킨 것 뿐임.
그리고 조지오웰이 사회주의자이든 머든간에 그의 작품속에서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것은 찾을 수 없는 것이 사실임. 단지 불평등이라는 사회구조를 적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독자로 하여금 불평등에 대한 혐오감을 조성하는 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것이지. 오웰은 사회주의자로서 평등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불평등을 주장함으로써 현실을 타개하고자 한 것 뿐임.
그는 평등을 주장한 적이 없음. 그는 작품속에서 불평등만을 논한다. 그렇기에 현실적인 것임.
그의 작품을 통해 독자가 '불평등은 나쁜 것이며, 평등이야 말로 좋은 것이다.' 라고 느낄 수는 있어도, '평등이 실현 가능한 사상이다'라고 느낄만한 구석은 단 한 군데도 존재하지 않는다.
1. 작중 등장하는 <과두정치적 집단주의의 이론과 실제>는 오브라이언이 집필에 참가한 의견일뿐이지 확고부동한 의견이 아님. 그 논리대로라면 미래 사회에서 개인의 존재는 무의미하다는 허무주의적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1984의 주된 해석이 그게 아니라는건 잘 알고 있을거임. 2. 오히려 오웰은 절대 다수의 작품에서 사회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모든 이의 평등을 주창하고 있는데 뭔 소리하고있는거임. 첫 작품인 런던과 파리의 밑바닥 생활부터 자신이 노숙자 생활해보고 그들을 대변하는 작품인데 무슨.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읽어보고 쓴 거임? "사회주의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기에 아직까지도 사회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3. 사회주의를 주장한 적 없다고? 1941년 발표한 <사자와 유니콘: 사회주의와 영국의 특질> 이 있는데? 4. 동물농장의 목적은 애초에 볼셰비키가 혁명을 변질시킨걸 왜곡하는게 주요 목적이라니까 그러네. 도데체 저자 본인이 적어놓은 서문까지 외면하고 본인의 주장만 말하는 이유가 뭐임?
카탈루냐 찬가 1장만 봐도 오웰이 얼마나 평등이라는 가치를 중시했는지 나오는데 불평등만 중시했다고 뭐라고 하다니. "혁명과 미래에 대한 믿음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대로 한 순간에 들어선 느낌이 있었다. 인간은 자본주의 기게에 맞물린 톱니가 아니라 진짜 인간답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이래도 못믿을까봐 우크라이나어본 서문 한 토막 더 "내가 강조하는 것은 서유럽 사람들이 소비에트 정권의 실체를 간파해야한다는 것이다. 1930년 이래 소련은 우리가 믿는 진정한 사회주의를 향해 발전해 가는 징표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반대로 날로 위계적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과두적 집단주의의 이론과 실제>의 내용은 끝까지 반박당하지 못한채로 끝이 난다.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불평등에 기초한 위 논문의 이론ㅡ소설 속에서 공개된 내용에 한하여ㅡ은 타파해야할 논지의 소지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오웰은 이에 대해서 전혀 반박하지 않고 있음. 심지어 주인공인 윈스턴은 그 내용을 인정하고 있으며 자신의 생각과 동일시 하는 경향을 보인다.
웃긴점이 뭔지 아냐? 애초에 '골드스타인의' 이 책이 당에 반대하여 계급의 타파를 목적으로 작성된 사회주의적 책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계급을 타파하는 평등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과 그 과정에 대한 내용들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타당한 것 아니냐? 왜 조지오웰은 그러한 부분은 전부 스킵하고 현실세계 속의 불평등을 다루는 내용들만 강조하여 보여줬을까? 소설에서는 평등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실현방안과 과정을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 오로지 불평등만을 논한다.
왜 인지 아냐고? 내가 답해줄까? 평등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 존재하지 않는 백일몽에 지나지 않기 때문임. 애초에 평등은 불가한 사상이다. 그렇기에 그것에 대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 것임. 따라서 조지오웰은 평등이 아닌 불평등을 논하면서 그의 목적을 실현하고자 했다. 실제로 1984는 마지막 까지 윈스턴이 오브라이언에게 반박하지 못한채로 종결된다. 심지어 윈스턴은 당에게 굴복한 채, 빅브라더를 사랑한채, 총살 당한다. 이는 억압에 의한 결과가 아닌 순전히 원스턴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한 결과였음을 책은 강조한다.
[개인의 존재는 무의미하다는 허무주의적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1984의 주된 해석이 그게 아니라는건 잘 알고 있을거임.] 난 너의 의견에 전혀 동의하지 못하겠는데? 1984가 뭐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 같음? 허무주의적 결론이 아니면 도대체 뭐가 1984의 주된 결말이라는 것이지? 소설 상에서 윈스턴이 오브라이언의 견해에 관하여 반박에 성공한 장면이 존재하긴 하냐? 1984만 10번 이상 돌려본 입장에서 그런 장면은 전혀 찾을 수 없었는데? 니가 한번 찾아와볼래? 독자들이 1984에서 얻을 수 있는 희망이 어디에 존재하지? 윈스턴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산계급의 혁명이 성공할 것이다라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오브라이언에게 맞섰다. 다만 윈스턴은 아무 입증도 하지 못한다. 그렇게 소설이 막을 내린다.
개인은 언제나 패배한다는 공식에 알맞게 윈스턴은 증발했다. 이것이 허무주의적 결론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라는 거임? 니가 주장하는 주된 견해라는 것은 2차 창작물에 해당함? 소설은 꿈도 희망도 없이 끝났다. 이것이 사실이다.
물론 조지오웰이 사회주의자라는 점에 근거하여 '1984는 불평등을 적실하게 보여줌으로써 그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목적을 가진다'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겠지. 다만 조지오웰은 평등을 주장함으로써 사회주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불평등을 주장함으로써 현실을 타개하고자 한 것 뿐이다. 니가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은 그가 주장한 것은 엄연히 불평등이라는 확고부동한 섭리였다는 점임. 그가 소설 속에서 주장한 것은 평등이 아니였음.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소설에서" 불평등을 주장함으로써 "평등"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난 지금 조지오웰이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게 아님. 그가 사회주의자다 아니다를 떠나서, 그는 작품속에서 평등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과 그 과정에 관하여 자세히 논하고 있지 않다. 그는 섭리로써의 불평등만을 논한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임. 누가 조지오웰이 사회주의자가 아니래? 내가 그랬음? 언제 그랬지? 조지오웰이 평등을 목적으로 소설을 작성 했다 라는 사실을 내가 부인했음? 난 그런적이 없다.
동물농장이야기하는데 1984로 몰아가지마라. 네 의견은 하나로 반박 가능한데 조지 오웰 소설에서 부조리나 모순에 개인이 저항하려다가 포기하는건 오웰의 첫 소설인 버마 시절에서부터 목사의 딸, 엽란을 날려라, 숨쉬러 나가다 등등 공통임. 1984에만 한정된게 아니라는거임. 동물농장과 1984는 언듯보기에 비슷해보이지만 주요한 차이점이 있는데 전자는 이미 글러먹은 러시아에 대한 고발이라면 후자는 영국이 러시아와 같은 전체주의 사회가 도래했을때 어떻게 되냐에 대한 경고임. 불평등은 권위주의 사회가 도래했을때의 부속물일뿐 절대 주요한 소재가 아님. 차라리 까고싶으면 "프롤이 당에 반란을 일으키는 일은 천년이 지나도 없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프롤이 불평등에 순응하는 장면을 인용하던가 해야지.
난독이냐? 이해를 못하고 엄한 소리나 싸지르고 있네ㅋㅋ
본인이 뜬금포 1984로 동물농장 대입하려는 시도하면서 상대방보고 난독이라는거 보소. 선생같은 사람 덕분에 오웰이 "누군가의 작품에 대해서 알려면 먼저 그 사람의 삶에 대해서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듯.
인간 사회는 어떤 체제건 본질적으로 불평등에 의해 돌아간다. 그것이 고대부터 지금까지의 인류사다. 그리고 자유란 것도 절대적인게 아니라 상대적인 불평등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애초에 인간 자체가 타고나길 자유로우며 불평등한 존재다. 자유와 평등이란 말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인간 혹은 동물의 삶은 곧 불평등이요 죽음만이 모두에게 평등하다
반공소설을 이렇게도 읽을 수 있네. 의견 잘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