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체제의 질서를 유지 보수하는 상층계급 - 인간

기존체제를 와해시켜 자신이 상층계급이 되고자하는 중간계급 - 돼지

모든 차별을 폐지하여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하층계급 - 쩌리동물들

이는 실제로

인간 사회의 현실이다.



조지오웰이 동물농장에서 말하는 것은

역사의 순환 과정에 대한 고찰 의식임.


자유와 정의라는 가치를 내세워 하층계급을 규합한 중간계급은 상층계급을 전복시킨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한 후 하층계급을 다시 노예 신분으로 전락시키고 스스로 상층계급이 된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 정의와 같은 올바름은 단순하게 그들이 상층계급이 되기 위한 투쟁의 수단이었음을 의미함.

하층계급의 입장에서 볼 때 역사적 변화란 그들의 주인이 바뀌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즉 역사를 순환 과정으로 인식하여 불평등을 인간 사회의 변하지 않는 부동의 법칙으로 해석하는 견해임.



다만 오웰의 위와 같은 고찰이

무엇을 목적으로 두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음.

그가 단순히 현실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불평등의 섭리를 주창ㅡ그러한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는ㅡ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불평등이라는 확고부동한 법칙을 무너트리고자 그 법칙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독자에게 심어주기 위함인지.

이건 각자 판단의 몫임.




다만 나는 오웰의 소설을 읽고 불평등이라는 부동의 법칙을 타파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자각함.

모두가 불평등을 기저로 살아간다. 평등을 주장하는 이들도 다를게 없다. 그들은 모순을 가질 뿐이다. 너는 다르다고 생각하나?

인간에 의해서 평생을 억압 속에 살아가는 가축의 입장에서 보았을때

평등을 주장하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들 간에 차이가 존재하는가? 무엇이 다르지?

동물들이 보기에는 모두가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런 동물들도 인간과 다르지 않다.

[열두 개의 화난 목소리들이 서로 맞고함질을 치고 있었고, 그 목소리들은 서로 똑같았다. 그래, 맞아,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창 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나의 삶은 반드시 누군가의 죽음을 불러온다.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자유의지는 무엇으로부터 도출되는가? 타인을 억압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모두가 억압받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자유를 실현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 사상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모두를 억압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 내가 살아가기에 타인이 죽는 것이다. 나는 살아가기에 죽는 것이다.

"길이라는 것이 무엇이건, 그것은 살인자다" [조국의 기록][내적 시평] (1875, VI, p.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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