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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문학 공부에 다시 돌아온 이유는 몇 가지 물음에 답변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지...
그 중 하나를 다뤄보고자 해.
작품과 작가를 아예 분리 시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작가의 의도를 배제하고 작품을 읽는다는 게 이론적, 학술적인 가치가 있는 행위일까? 라는 의문은 나 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한 번쯤 해봤으리라 생각해. 문학 공부한다고 하거나 혹은 독서가 취미라고 하면 "예~전에 어떤 작가가~ 수능에 자기 지문 나온거 의도 틀렸다고 했다던데~ 문학 공부는 그럼 fundamentally faulty한거 아닌가요~" 라는 질문 받아본 적도 많고 말이지. 그래서 오늘은 (나름 휴일인데 논문 쓰기 싫은 김에) 작가와 글의 관계를 탐구하는 푸코의 에세이에 대한 내 개인적 견해들을 담아볼게!
아 근데 나도 잘 모르는 분야이니 재미로만 보길 바라.
Shklovsky나 Jacobson같은 Russian formalism과 미국 문학 이론에 큰 어그로를 불러왔던 New Criticism은 어느 부분에서 닮아있을까?
비록 두 시조가 작품의 property에서 강조하는 내용은 다르지만, 작품에 마지막 '.'이 찍히는 시점에서 작가의 손을 떠나 하나의 존재론적 실재로 보려는 태도는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듯 해. 20세기 초중반 이전의 문학 비평은 거의 대부분 작가나 작품이 등장한 역사적, 철학적 혹은 정치적 배경에 입각한 비평이 대부분이었고, 실제로 우리가 책을 구매 한다거나 독서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데 작가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기도 하지.
지금도 많은 마케터들이 노벨상 수상자 기획 같은 걸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누가 될지 예측하느라 바쁠 것 같고.. 그만큼 작가라는 존재가 가지는 존재론적 의의가 문학계에서 꽤 크다고 볼 수 있는데, 몇몇 철학자들 (이라지만 문학 이론에서 더 자주 다뤄지는..) 은 '글'을 하나의 존재론적 실재로 본다면, 작가의 역할은 무엇/어디까지 이며 작품을 해석함에 있어 어느 범위까지 (혹은 아예) 작가를 배제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에세이가 바르트와 푸코의 에세이라고 할 수 있어.
(소아 성착취 의혹이 사후에 제기된 대머리)
특별한 언급이 없다면 아래 스샷은 모두 푸코의 에세이 "What is an Author?" 에서 발췌했오.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작가는 무엇인가 서론에서 이미 푸코는 굉장히 중요한 물음들을 던지는데, 1) 어떻게 "작가"라는 개념이 중요한, 그리고 가치있는 (valorization) 개념이 되었는가? 2) 어떻게 소설의 주인공들보다 작가의 인생이 더 비평적으로 중요한 자료가 된걸까? 즉, 어떤 사회적 역사적 (경제적 정치적) 조건들이 "the man and his work" 라는 비평 카테고리를 시작하게 된걸까? 라는 질문들이야.
아쉽게도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이 에세이에서 다루지 않을 거라고 하니 (intellectually lazy한 푸코 특), 우리는 이번 글에서 푸코의 생각을 최대한 따라가보고, 각자 이 물음들에 대한 답변을 해보는게 목표가 되겠네
위 스샷에서 보이듯, 푸코는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해. 첫 번째는, 현대 (당대)의 글쓰기는 더 이상 표현의 필수성에 얽매이지 않는다인데, 이게 좀 난해하지?
이거는 조금 다르게 이야기하면, "글쓰기는 작가가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필요에서 벗어났다" 인데, 여기서 푸코가 말하고자 하는건 문학의 self-reference야. 문학의 Self-reference란, 쉽게 이야기하자면 예전처럼 3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화자가 아닌 직접 내러티브에 포함되어 있는 화자를 가령 예시로 들어 설명할 수 있을거야 (요거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은 Genette의 homodiegetic narrator를 참조하면 좋아). 돈 퀴호테같은 작품을 보면 돈퀴호테가 주인공이자 화자이며 내러티브 안에서 꾸준히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이런걸 Self-reference라고 해. 최소 푸코에게는 문학 작품이 더 이상 작가가 거리를 두며 글을 쓰는 행위가 아닌, 글이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 처해있기에 "necessity of expression (from the author's end)" 에서 벗어났다고 하는거야.
두 번째는 (마치 바르트의 '작가의 죽음'에 영향 받았음을 알리고 싶어하듯), 글쓰기와 죽음의 관계야. 이를테면 그리스 신화에서 주인공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숭고함으로써 영원히 기억되기 때문이라고 하네. 어찌보면 하이데거가 죽음이 현존재의 완성이다 라고 말하듯, 비록 fictional 한 존재임에도 그런 근본적인 인간 조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걸 역설적으로 나타내는 듯 해. 다만 푸코에게는 이 글쓰기와 죽음의 관계가 현대 사회에 와서는 반대로 바뀌어서, 글쓰기를 통해 죽음을 초월한 불멸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닌, 글을 씀으로써 비로소 죽음에 도달하는 작가를 만날 수 있다고 하네. 글을 씀으로써 작가는 부재할 수 있고, 부재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역설을 말하고 있어. 사실 나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푸코는 더 나아가서 "작품" 이라는 개념과 "작가"라는 개념을 공격하기에 이르러. "작가" 라는 개념이 없다고 할 때 어떻게 "작품"을 선정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야. 푸코는 니체를 예로 들어서, 니체가 쓴 글을 '니체' 라는 "작가" 카테고리 아래에 두고 출판하려고 할 때, 니체가 살면서 남긴 모든 literary 그리고 textual 한 흔적들 중 어떤 것을 "작품"이라고 칭할 수 있냐 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어. 당연히 니체가 어렸을 때 문학 숙제로 낸 글이나, 자기 친구와의 약속 시간을 적어놓는 메모 등은 이에 해당되지 않겠지. 푸코가 여기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작가" 와 "작품" 이라는 두 개념 모두 굉장히 위태로운 지반 위에 세워진 개념들이라는 거야.
이거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반 고흐의 작품들이 그의 사후에 유명해졌다는 거는 너무 유명한 이야기지? 마찬가지로 아까 고등학생이 읽고 있다고 해서 놀란 불멸의 명작인 Moby-Dick 또한 허먼 멜빌 사후에 왠 박사학위 논문으로 쓸 작품을 찾던 박사생도에 의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을거야. 그럼 작가들 사후에 새로 '존재'가 드리워진 작품들은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그리고 더 나아가서, 카프카의 작품들처럼 작가 본인은 출판하기 싫어했고 불태워달라고 했지만 친구가 그냥 씹고 출판해버린 경우에는 어떤 작가의 작품으로 보아야할까? 그리고 진짜 마지막으로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서, 소쉬르의 General Linguistics Courses처럼 실제로 그가 쓴건 아니지만 그의 생전 강의들을 기반으로 정리된 작품에 소쉬르가 "작가" 라고 칭할 수 있을까?
*푸코는 "작가"라는 개념을 문제삼는 데 있어서 작가의 이름인 대명사가 언어학적으로 가지는 역할에 대한 비평도 하고 있지만, 이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넘길게. 또, Author function에 대해서도 조금 더 이야기할 게 남아있는데,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고 슬슬 카페인 약발이 떨어져서 여기까지만 할래.
비록 끝까지 다 소개하진 않았지만 이 에세이에 대한 내 견해를 살짝만 나누자면,
- 푸코가 문학에 있어서 전문성은 부족하나, 창조자와 창조물의 거리를 알아채고 그를 문학에 대입시켜 창조물의 autonomy를 promote 했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음
- 실제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는 "작가" 그리고 "작품" 에 대한 이론적인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음. 이걸 해결하는 것이 문학이론가들의 숙제임.
- 가장 중요한 작가와 작품의 완전한 분리: 예를 들어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를 읽고 작중 배경이 미국 남부라는 이해를 포크너라는 작가의 배경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 그 작품에 대한 해석이 조금 달라질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봤어.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내 생각엔 작품 바이 작품이라는 답변을 해야될 것 같아. 소리와 분노같은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미국 남부 한 가문의 몰락을 그리고 있지만, 그 내러티브 아래에는 "인간이 경험하는 시간"과 "물리적인 시간"의 대비를 통한 인간 보편성의 고발을 그려내잖아? (물리적으로 흐르고 있는 시간이 시계를 통해 계속 등장하나, 주인공들의 의식은 꾸준히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포크너 소설을 관통하는 하나의 모티프인 '과거에 얽매여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의 몰락'을 그려내고 있지?) 그런 만큼, 얼만큼 인간 존재, 인간 조건에 있어 보편적이고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냐 따라 작가와 무관하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해.
독갤럼들이 이 글을 읽음으로써 얻어갔으면 하는 거는 크게 두 가지야.
1. 작품과 작가, 독자 간에 형성되어 있는 삼각 관계의 역학을 이해하고, 이 역학을 통해서 소설 (문학 작품)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한 이해를 하는 거! 작품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해하고, 작-내재적인 property만으로 문학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법을 배우는 것, 그리고
2. 문학 이론이라는 굉장히 난해하고 뜬구름 잡는 듯해 보이는 분야가 어떤 철학적 메커니즘에 기반해서 operate하는지를 살짝 알아가는 것! 그리고 그걸 통해서 내 스스로의 독서에 있어서 어떤 생각을 하며 읽어야 할지에 대한 개인적인 전략을 세우는 것이야.
가벼운 마음으로 쓰려고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에세이가 너무 길고 난해해서 내가 생각해도 정리 안된 뻘글만 된 것 같네. 흥미롭게 읽었을지 모르겠어. 여기까지 읽어줘서 고맙다!
참고문헌소스:
푸코 소아 성착취 범죄 인정됨?
댓글 설렜는데.. 사실 잘 모르겠네? 프랑스 지식계가 이런일 굉장히 쉬쉬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사실인지 아닌지가 밝혀질 일은 없을거고 밝혀진다해도 크게 영향이 있진 않을듯. 푸코가 내 기억엔 아동성애에 관한 찬성 법안? 이런거에 사인했던걸로 기억하는데
나무위키 검색해보니까 의혹을 제기한 기 소르망(Guy Sorman)의 증거에 오류가 있다고 했고, 기 소르망도 자기의 의견을 "문제되고 있는 증거가 (그것으로) 수렴한다 (convergence of troubling evidence)"라고 바꿨다 하더라고(이건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도 나옴.) 구글링 해봐도 작년 4월 즈음의 글 밖에 없어서 잘 몰랐거든..
그렇구나 사실 그냥 어그로 끌려고 나도 작년에 슥 지나가다 본 내용 적은거라. 다만 나랑 내 주변 지인들은 저 폭로 나왔을 때 약간 반응들이 다 "그럼 그렇지~ㅋㅋ" 였음
근데 좋은 지적인거 같아. 사실이 아닐수도 있으니 우선 본문 내용은 수정했어
이거에만 꽂혀서 글은 제대로 못봤네. 이점은 미안해. 글 읽어보고 있는데 잘 모르겠는거 질문해도 될까?
어우 아냐 뭘 미안까지.. 나도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어그로 끈거같아서 수정한거지 혹시라도 모르는게 있다면 질문해줘 최대한 답변해볼게! 고마워
고마워. 그럼 조금 질문해볼게. 첫번째 가능성을 다르게 이야기 한걸 보고 "현대에 와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 내에서 자기 서술(Self-reference)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로 이해했는데, 이게 좀 있다 이어지는 "문학 작품이 더 이상 작가가 거리를 두며 글을 쓰는 행위가 아닌, 글 안에 포함되어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 처해있기에~" 부분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제대로 이해가 안가네.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 처해있다면 결국 자기 서술을 한다는 말 아닌가?
음 내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가 조금 불투명했나봐 현대의 글들이 Self-reference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작가가 스스로를 표현할 필요에서 벗어난다 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 즉 작가와 별개로 글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내러티브를 이야기하려고 했던거야
으음... 잘 모르겠네.. 일단 관련 글을 검색해가면서 본 것은, 전통적 해석학의 경우 "저자의 의도(mens auctoris)만이 해석의 시비를 가를 수 있는 단 하나의 척도"라고 결론을 지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작품은 작품의 구조나 내적 관계속에서 작품을 분석해야한다."라는 말이 나왔다고 하거든... 즉 작품이 자기 자신의 서술(Self-reference)을 하고 비평은 그것만을 가지고 해석을 하고 있으므로 저자가 작품 내에서 의도를 나타낼 필요가 없다는 건가?
http://web-facstaff.sas.upenn.edu/~cavitch/pdf-library/Foucault_Author.pdf
요
링크로 원문 다시 한번 확인해볼래?! 요기가 번역이 조금 더 precise하게 되어있는 듯 해.
위 링크를 참조하면 지금 게이가 한 질문들이 조금씩 답변이 될거같아. 우선 내 답변은 1. authorial intent로만 작품의 해석을 결정짓는다 라는거는 Christian concept고, 그게 사라진 시대 그리고 signifier와 signified의 차이에서 비롯된 언어가 지칭하고자 하는 현상과 언어의 간격에 대해 논하는 탈구조주의세대 철학자들한테는 작가라는 존재의 중요성을 상정하는 merit 자체가 없어졌다 라고 나는 해석하고 있어. 2. 작품이 작품의 구조나 내적 관계속에서만 이해되어야한다는거는 본문에 나왔듯 Russian formalist랑 New criticism의 주장 중 하나인데, 지금 본문에서 나온 푸코 이야기와 어느정도 접점은 있지만 완전히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을거같아
푸코의 글의 요지는 비평 이론에 있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기 보다는, 작가라는 존재와 작품이라는 개념이 어떤 precarious ground 위에 세워져 있고, 그로 인해서 비평은 그동안 어떤걸 놓치고 있었냐에 조금 더 가깝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venture 해볼게! 너무 좋은 질문 고맙고, 윗댓 링크가 내가 본문에 링크한 번역본보다 전반적으로 더 깔끔하게 되어있어서 혹시라도 오해가 있었다면 새 링크도 다시 한번 읽어보는게 어떨까!
아 그리고 근대든 현대든 비평이 self-reference만을 가지고 이루어진다는 주장은 아닌걸로 봐야할것같아. 실제로 그렇게 주장하기 굉장히 어렵기도 하고. 다만 이러이러한 특징을 가진 글들이 기존에 비해 늘어났고, 우리가 literary language외에 언어 전반적인 이해가 늘어남에 따라서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글이 완성된 시점에서 글은 그 자체로 존재론적 의의를 가지기 때문에 그것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에 가까운 주장이라고 해석이 되네
좋은 글 고마워. 일단 느낀점으로는... 1. 일단 보그체가 심하다. 학문적 정확성을 위한 건지는 몰라도 중간중간 해석해야되서 알아듣기가 힘듬. 2. 저자란 무엇인가 부분 번역에서 '제가 던졌던 물음은 다음과 같은 물음이었습니다. 작가 혹은 저자가 사라질 때의 규칙은 과연 무엇을 발견하게끔 하는가? 이 규칙은 기능-저자의 유희를 발견하게 해줍니다.' 라고 하니 네가 한 말이 맞는거 같긴 한데 해석학에 문외한이여서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진 않았던거 같음.
ㅇㅇ 내가 한국말을 너무 못해서.. 난 공부도 다 영어로 했고 논문도 영어로 쓰고있다보니;; 한국온지도 얼마안됐고 여기 눈팅하면서 천천히 배워가야지
ㅇㅇ... 좋은 글 써줘서 고마워. 즐거운 독서하길 바랄게.
최근에 저자로서의 인류학을 읽는데 푸코의 문학비평을 끌어다 써서 이쪽 주제에 관심이 가더라고. 읽어보려고 했는데 이해하기 쉽게 이렇게 정리해줘서 고마워
그게 전신이긴 하지! 나도 읽어봤는데 예전이라 기억은 잘 안난다.. 푸코 글 특징이 지나고 보면 센트럴한 개념만 딱 기억에 남는거같아. 번역본을 읽어서 그런건지.. 원체 elusive한 양반이라 그런건지
ㅋㅋㅋㅋ 다 느끼는게 비슷한 듯. 나도 도식하고 개념들만 기억에 남네
독갤 념글 10페이지에 준하는 양질의 글... 삭제 ㄴㄴㄴ
반응이 나쁘지 않으니 나중에 다른 주제로 또 올려볼게@_@ 내 주변에 문학도가 없어서 심심했는데 잘됐다
일단 선개추 후감상
막 배운 건데, 하이데거가 죽음을 통해 적극적인 능동성을 강조할 때 블랑쇼는 죽음을 원래 죽음 - 능동적 죽음과 사라짐 - 수동적 죽음으로 나눴다고 하고, 블랑쇼는 이 마치 원피스 명언마냥 결정지어지고 사라지는 수동적 죽음이 더 큰 문제라 생각했다 함.
푸코가 말한 건 그러니까 블랑쇼같은 거일거야. 그리스 신화의 별자리 죽음와 대응되는 아라비안 나이트는 계속 이어지는 것이 되지만, 오히려 근대에 저자란 개념이 생기면서부터 이건 저자 꺼다라고 결정지어지고, 저자란 개념에 의해서 점차 소멸되가는 걸 뜻할 거 같아.
신빙성있는 주장이야! 나도 동의해 블랑쇼는 읽기 싫어서 오랫동안 방치해두고있었는데 이제 슬슬 접해봐야겠다 나도..
한국어 써라
난 한국어가 너무 어렵다
갈!!!!!
허미이... 독갤이 독서 커뮤니티의 중심이 돼가고 있어요! 다음에도 종종 이런 좋은 글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사와요. 참고로 독갤에 여러 좋은 연재글 있는데, 이거는 특히 관심이 많을 듯. - dc App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340934?page=1&s_pos=-339074&s_type=name&serval=jhaloff
- dc App
분리되기 싫으면 걍 무인도 가서 혼자 작품쓰고 끌어안고 죽으라 그래.
그림체 스토리 연출 전부 완벽한 망가가 있는데 그걸 그린 작가가 극우혐한이라면 읽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왜 중간중간 영어 섞으면서 말하나 했더니 한국 온지 얼마 안된거였구나ㅋㅋㅋㅋ 더 좋은글 많이 보여줘!! - dc App
이건 뭔 ㅋㅋㅋ 언제적 논의를 끌고오는 거야..걍 사이드가 말한 것처럼 작품은 항상 어느 정도는 현실지시적이야. 만약 작품이 그 자체로 완결된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개체들이 현실연관으로부터 풀려나오는 것처럼 보이게끔 만드는 자본주의 체제의 힘 때문인거고..
뭔 철지난 떡밥을 들고와서 난리를 치는 거임 프레드릭 제임슨이나 하다 못해 지젝 정도만 읽어봐도 거들떠도 안 볼 내용인데
논문 운운하는 게 하도 가짢아서 댓글 달아봄 ㅋㅋ 학자가 할 말이 있으면 논문으로 해야지 이건 뭔 ㅋㅋ
?? ㅋㅋ 그냥 한번 쓱 훑어본거를 무슨 논문 운운하네 학자가 할말이 있으면 논문을 발표하라네 라는 답글을 달지?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고도 명시해뒀고 나도 그냥 푸코 에세이 읽어가면서 감상평을 적은거일 뿐인데. 뭐가 또 그렇게 같잖고 거들떠도 안 볼 내용이라고 폄하하냐 ㅋㅋ
그리고 지금 제임슨 얘기가 나와서 예전에 읽던거 다시 한번 펴봤는데 어쨌건 내가 글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작가와 작품사이의 연결성이랑은 좀 다른 이야기 아니야? 제임슨 어떤 저서 어떤 부분 말하고 싶은거야? 마르크스비평가로서의 제임슨이야 포스트모더니스트로서의 제임슨이야? 지젝이랑 묶은거보면 전자같은데, 그럼 작가와 작품간의 관계에서 제임슨의 어떤 부분이 본문 내용을 거들떠도 안볼 내용으로 만드는거야? 난 이쪽 진짜로 잘 몰라서 물어보는건데
이 쿨찐은 뭐냐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