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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출신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 교수 이야기가 한동안 화제였다.

<학문의 즐거움>은 허준이 교수를 필즈상으로 이끈 책이다.

허준이의 스승이자 역시 필즈상 수상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에세이다.

인간의 두뇌는 과거에 습득한 것의 극히 일부밖에 기억해 내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왜 사람은 고생해서 배우고,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가?

나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배워 나가는 과정에서 지혜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8페이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과 대답이다.

여기에 작가가 강조하는 주제를 하나 덧붙이면 '창조하는 인생'이다.

지혜창조.

이 두 덕목(?)이 작가가 중요시하는 테마다.

영리한 독자는 여기에서 책을 덮어도 될지 모르겠다.

나는 한 분야의 경지에 오른 이가 쓴 글이 궁금했기에 계속 읽어나갔다.

주어진 조건을 모두 자기에게 유리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 씨였다고 생각되는데 그는 언젠가 "호황도 좋고 불황도 좋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인생에 적용하면 "행운도 좋고 역경도 좋다."라는 뜻이다.

148페이지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일본의 전설적인 경영자다.

불우함과 역경을 딛고 자수성가하는 성공신화의 대표격인 인물이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도 유명하다.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수학자 버전의 마쓰시타 고노스케다.

그는 부모님, 학창시절 친구들, 교사들에게 많은 걸 배운다.

사실 우리 주위에도 있을 법한 평범한 이들이다.

그러나 그는 늘 배우는 자세로, 오픈마인드로, 긍정적으로 임한다.

그에겐 모든 것이 학문이었다.

쉽고 재밌는 에세이다.

일본 소년 만화의 주인공처럼 그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수학자로서 성장해간다.

무엇보다 끈기 노력을 중시하는 진부한 캐릭터지만 어쨌거나 그는 뚜벅뚜벅 필즈상까지 향한다.

계속되는 그의 발명에 약간 싫증이 난 친구는 "도대체 그렇게 유치한 것을 만드는 게 뭐가 대단하며, 무슨 소용이 있나?"라고 말했다. 그러자 프랭클린은 옆에 누워 있던 갓난아이를 가리키며 이렇게 반문하였다. "그렇다면 이 아기는 무슨 쓸 데가 있는가?"

90페이지

가끔 기초학문의 필요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다.

이 책에 등장하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일화는(진위 여부는 모르겠다.) 논쟁에 대한 비유적인 대답이 될 듯하다.

인상 깊어서 발췌했다.

나는 물체의 본질과 그 그림자와의 관계가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가 사는 세계와 사람이 사는 세계의 관계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

부처의 세계는 어떤가? 부처의 세계에서는 이런 번뇌가 모두 해소되어 있다. 현세의 온갖 부조리한 모습이 그곳에서 보면 부조리하게 보이지 않고 하나의 거대한 인과 법칙에 의한 현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19~20페이지

내게는 가장 인상깊은 대목이었다.

그가 대수기하학의 특이점 해소 문제(???)를 풀어갈 때 떠올린 발상이라고 한다.

거대한 롤러코스터 시설의 그림자를 떠올려 보자.

인간의 머리론 해독하기 어려운 아주 흉악한 무늬가 그려질 것이다.

그러나 실제 롤러코스터의 궤도는 받아들일 만하다.

복잡한 난제가 특이점이 해소되면 명쾌하게 이해가 가능하다는 비유이다.(그렇구나...하고 넘어갔다.)

수학은 우주의 비밀을 푸는 가장 유용한 체계다.

이 대목에서 나는 과장 좀 보태서 우주의 비밀을 살짝 엿본 느낌이었다.

수학자들은 우주의 비밀 바로 앞, 인류 지식의 최전선에서 노는 이들이 아닌가.

수학자들이 마치 화엄 세계의 앞을 거니는 보살들 같았다.

현세의 부조리와 의문과 번뇌와 고통이 말소된 절대적인 세계, 바로 그 부처의 세계를 엿보는 수학자들의 삶은 복되다고 생각했다.

책을 덮으니 거인의 어깨에 올라 광막한 지식의 바다를 잠깐 보고 내려온 기분이었다.

최근에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그리고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을 읽었다.

공교롭게도 다 일본인들의 책이다.

심지어 세 권 다 인상깊게 잘 읽었다.

이는 어쩌면 인간의 머리론 알 수 없는 부처 세계의 인연(因緣)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세 권 다 추천하며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