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라일락 나무 밑에는 라일락 나무의 고요가 있다
바람이 나무 밑에서 그림자를 흔들어도 고요는 고요하다
비비추 밑에는 비비추의 고요가 쌓여 있고
때죽나무 밑에는 개미들이 줄을 지어
때죽나무의 고요를 밟으며 가고 있다
창 앞의 장미 한 송이는 위의 고요에서 아래의
고요로 지고 있다
- 오규원, 시집 『두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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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오규원 시인의 사후에 출간된 시집 『두두』에 실린 시입니다. 시인이 말년에 쓴 시입니다. 대가들의 시에서는 어떤 경지가 느껴집니다. 쉽게 쓰여진 듯한 구절 어디에서도 가벼움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음이 소란할 때 저는 이 시를 꺼내 읽어보곤 하는데 “고요”라는 단어가 정말 고요하게 읽힙니다. “라일락 나무 밑에는 라일락 나무의 고요가 있다”. 정말 그렇습니다. “고요는 고요하다”는 구절이나 “고요를 밟으며 가고 있다”는 구절이나 “고요”라는 관념이 어떤 물질처럼 느껴집니다. 이 시의 백미는 마지막 부분의 문장이라고 해야겠는데 “장미 한 송이는 위의 고요에서 아래의/ 고요로 지고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고요의 부피감과 높이 같은 것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위의 고요에서 아래의 고요로 지고 있는 장미 한 송이의 절대 적막. 짧은 시이지만 결코 짧지 않은 내력을 닮고 있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관념을 물질로 바꿔내는 것, 그것이 또한 시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막 하루하루 시상이 떠올라요?
ㄴ 직업이니까요. 그게 또 힘들기도 하고요. 감정 노동이라서. 직업병이기도 하죠.
님 외국시인 소개좀 해주새요 - dc App
ㄴ 외국 시인. 제 취향이 대체로 다 음울하고 그래서 조심스럽네요.
블레이크 좋아합니가?? - dc App
ㄴ 좋아하지요.
노트북 쿨러 소리와 창밖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주말 아침을 즐기던 중에 이 시를 만나니 창밖의 풍경을 더 자세히 바라보게 되네요. 바라보고 있다 보니 이 풍경들을 짧은 글로 옮겨 놓는 시인들이 더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오규원 시인 10주기 전시회 갔다왔는데 그게벌써 2년이 다돼가네 - dc App
박진성씨 여기 문학갤러리 아닙니다. 물 흐리지 말고 문학갤러리 가서 올리세요
윗놈 말 무시하시고 여기 오래 계셔서 좋은 시 많이 소개해주세요. 너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