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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오늘은 논문 쓰기 싫어서 온 게 아니라 내 논문 챕터 하나 써내려 가기 전에 내 머리 속을 좀 정리하려고 잠깐 들렀어. 저번처럼 용두사미스럽게 거창하게 시작하겠지만 중간에 아마 온갖 핑계를 대며 그만둘거야. 여튼, 악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거고, 문학과는 어떻게 연관을 지어야 하는지도 시간이 허용한다면 다뤄볼게!


저번 글에서 나타났듯이 내가 교육도 다 외국에서 받고 한글로 글을 읽지도 쓰지도 않아서 한글 필력이 굉장히 안 좋은 편이라 미리 양해 부탁할게. per_17.gif?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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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에 앞서 악이라는 단어에 대한 철학적 규명을 조금 할 필요가 있어. 내가 석사 논문 쓰면서 해두었던 윤리학, 서양 철학사 공부가 여기서 빛을 발하겠군!

"악"에 대한 의미론적 이해는 (조금 유식하게 쓰면 kakology 라고 함) Evil이라는 단어와 wicked, cruel, malevolent, inhuman, monstrous, harmful,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bad 와 같은 단어들과의 '나쁨의 정도'를 가리려는 목적이 있고, 악(=Evil)이라는 관념이 언어가 진화하면서 같이 진화했는지도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분야야. 아직 세간에 크게 소개되진 않은 듯 해.. 어쩌면 내가 pioneer일지도..!?



악이라는 단어를 우리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아마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갤럼들은 지금부터 잠깐 할 이야기는 재미없을 수도 있어. 내 생각엔 한국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나진 않거든.


Evil이라는 단어는 영미 문화권에서 다양한 용례가 발견돼.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나쁘고 부도덕한 행위의 스펙트럼에서 최 극단에 위치하는 걸 Evil이라고 부르는 건 윤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만의 이야기이고, 조지 부쉬의 유명한 'axis of evil' 드립처럼 정치적 상대를 악마화 시키기 위한 사용도 자주 눈에 띄고, an evil cat처럼 단순히 수식받는 명사의 나쁨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어. 마지막 경우가 쬐끔 흥미롭지?? 형용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 하나는 예를 들면 a blue cat 같이 명사를 수식하는데 있어서 별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경우야. 이 경우에는 그냥 파란색 고양이이구나~ 하고 거기서 검토가 끝나는데, an evil cat이라고 하면 어떤 면에서 악한지, 어떤 나쁜 행위를 했는지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이 있어야겠지?


그래서 몇몇 현대 철학자들은 악 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자 고군분투해왔어. 어떤 현상을 일컬어야 할지, 존재론적으로 실질적인 관념으로 이해해야 할지 (ontologically substantive), 종교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지 등등 말이야. 간단히 요약하면, 현대 철학에서 (그리고 무신론자 기준) 악은 나쁨의 최상단에 위치해야만 하는 개념으로써 세속적인 성격을 띄고, 정의를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보자면 악한 행동은 너무 나쁜 행동이라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행위자의 입장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 할 행동이고 (예: 나치의 유대인 학살), 악한 사람이나 기관, 단체 등은 그런 행동을 알면서 용인하고 지휘하는 경우를 말해. 옆 사람을 꼬집는다던가 책을 불태운다던가 하는 행위들은 나쁠 수는 있지만, 악하지는 않다는 거지. 그리고 유대인들을 온갖 비인륜적인 행위로 학살해서 아예 멸종을 시키려는 의도로 자행된 홀로코스트는 단순 나쁨을 뛰어넘은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악하다고 불러야 한다는 거고. 대충 이해됐지?




악에 대한 연구 분야는 크게 악의 문제 (The Problem of Evil)와 악의 관념 (The Concept of Evil)로 분류된다고 보면 될거야. 그 중에서 전자를 다룰 건데, 간단하게만 소개할게.


악의 문제는 역사적으로 두 가지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있었어. 첫 번째는 1755년의 리스본 대지진이고, 두 번째는 홀로코스트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철학자들마다 의견이 조금 분분한데, 거의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1번과 2번을 인정하되, 몇몇 사람들은 세 번째로 9/11을 뽑기도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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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5년의 리스본 대지진은 마침 All Saints' Day 라는 종교 휴일에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던 도중에 교회가 씹창나고 무너지면서 그걸 피하기 위해서 바닷가로 갔다가 몰려온 쓰나미에 2차 피해를 당한 사건이야. 덕분에 도시는 완전히 곱창이 나버렸지. 대략 6만명의 사망자를 냈고 도시를 아예 박살내버렸으니 (여담이지만, 그래서 온전히 보전된 다른 유럽의 역사적 대도시들은 실제로 가보면 구불구불하고 정신없게 설계가 되어있어서 복잡한데 반해, 리스본은 한번 곱창나고 새로 도시 설계를 해서 굉장히 깔끔하게 되어있어) 이 사건이 유럽 전역에서 큰 관심을 받은 건 당연한건데, 어떤 관심을 받았느냐면..


'왜 신을 믿는 좋은 사람들이 저렇게 목숨을 잃어야 했을까?' 하는 물음이 장전된 관심을 받은거야. 이 물음의 근간은 Pierre Bayle, 더 나아가면 Epicurus같은 학자들한테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쉽게 요약하면 "신이 존재하는데 왜 악도 같이 존재할까?"로, 대부분의 단일신 종교 세계관에서는 문제로 드러나는 부분이야. 그래서 악의 문제라고 부르는거구. 신이 보통은 전지전능하고 선하기만 한 존재로 표현되는데, 전지하면 악이 언제 발생할지 알거고, 어떻게 없앨지도 알거고, 전능하면 그걸 없앨 능력이 있는거고, 선하기만 한 존재면 악을 당연히 없애야 하는건데, 우리가 사는 세상엔 아프리카에서 에이즈 걸려서 죽는 아이들도 있고, 천인공노할 범죄자들도 있고, 펩시도 있잖아. 단일신 종교, 특히 기독교에서는 이걸 꼭 해결해야 될 문제로 직면하게 된 거지.


그 관심을 준 사람들 중에 가장 유명한 두 사람은 바로 독일의 라이프니츠와 프랑스의 볼테르야. 라이프니츠야 철학을 조금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Theodicy 라는 책을 씀으로써 이 물음에 답하려고 노력했어. *라이프니츠의 답변은 리스본 대지진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건 아님. 이전에 나온 책이야* 아주 유명한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모든 세계 중 가장 좋은 세계이다" (the best of all possible worlds) 주장을 남겼고 악의 현실성이라는 시험대에 놓인 신의 관념을 최대한 변호하고자 노력했지. 볼테르 또한,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Candide라는 소설을 씀으로써 이를 전면적으로 비판해. 그 어떤 악을 당해도 Pangloss라는 등장인물 (누가봐도 라이프니츠임)은 이 세계가 가능한 모든 세계 중 가장 좋은 세계니까! 라는 대사만 읊다가 결국 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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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로 환유될 수 있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관심을 크게 받았지?

이 맥락이란, 어째서 세상에 악이 존재하고 우리는 왜 고통받아야 할까? 인거야. 내 논문에서 나는 라이프니츠의 신정론에 영향을 받은 칸트에 와서야 악의 관념이 비로소 진정한 윤리적 대안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하는데 (이거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은 궁금한 사람들 있으면 따로 댓글 달면 알려줄게. 글이 너어무 길어질거같다) 아우슈비츠와 이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에 의해서 악의 개념은 새로운 방향성을 갖게 돼. 이 부분도 나중에 다른 글로 새로 써보도록 할게 :D



즉, 악의 문제는 근대 계몽주의 이전에는 신학의 영역이었다면, 18세기 중후반 전후로는 조금씩 세속적인 평가를 받아왔고, 아우슈비츠에 이르러서는 그 무엇도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심연을 보여주고 있었어. 따라서, 아주 간단히 악의 문제를 요약하자면 "왜 좋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받지 않아도 될 피해가 가는가?" (Why is there undeserved suffering?) 인거지. 이렇게 악의 문제를 환원하고 나니.. 문학에서 이런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작가들이 마구마구 떠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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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은 부도덕하고 타락한 아버지를 보며 그를 사랑해야만 하는 시험에 꾸준히 빠져. 형제들은 제각기 다른 성격을 지녔기에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모두가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할까, 그리고 더 나아가서 왜 신은 악을 허용할까? 라는 딜레마에 빠져있어. 도스토예프스키의 악에 문제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은 사람들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꼭 읽어보길 바라. 길지만 가치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악의 문제 외에도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지만, 악의 문제에 있어서는 꽤나 직설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과 악의 문제라는 테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 아닐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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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임 버넷의 소설 His Bloody Project (번역본이 나와있는지 모르겠어 ㅠ.ㅠ) 에서도 우리는 믿을 수 없는 화자인 주인공 로디 매크래의 내러티브를 따라가면서, 그가 저지른 악에 대한 당위성을 객관적으로 묘사받는 듯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가 믿을 수 없는 화자임이 드러나면서 그의 악 또한 악을 행하기 위해 행한 것임이 밝혀지는 내용의 소설인데, 여기서도 악의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주인공이 또 다른 악을 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이 책은 영어로 읽을 때 굉장히 가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문체가 굉장히 수준 높고 당시 스코틀랜드 식 언어를 보는 재미가 있어) 영어가 가능하다면 한번 추천해볼게. 나는 교보인가 예스24에서 주문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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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각색된 모습


페널티킥을 맞은 골키퍼의 불안 이라는 페테르 핸케의 소설에서도 악 이라고 불릴 만한 행위가 등장하고, 그에 대한 물음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어. 이제 배고파서 그만 쓸래..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악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고, 악의 관념을 다루는 작품도, 악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도 무궁무진하게 많아. 더불어 나는 악을 연구하는 데에 있어서 윤리학의 한계를 문학이 넘어줄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 첫 소절에서 말하듯이 모든 인간 행위가 어떠한 선을 향해있다는 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야. 난 오히려 예술은 우리 삶의 악을 고발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그리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여튼, 철학적으로 악에 대한 정리가 조금 되고 나서 문학을 접하고 읽다 보면 어느새 그런 단서들을 찾아가고 분석하며 작가가 나름대로 내놓은 답변에 대한 공감 혹은 반박을 하고 있는 너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을까!